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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삼조사(三祖寺)-下

기자명 법보신문

활발발한 자기 부처 거룩한 자성을 보다

삼조사 삼조동굴 입구
승찬대사 신심명 새겨
이름을 딴 정자도 있어

 

 

▲삼조 승찬대사 열반 뒤 140년 지나 세워진 각적탑. 승찬대사 무덤 자리에 선 이 탑엔 다비하고 나온 사리 300과 가운데 100과를 봉안했다고 한다.

 

 

중국의 안휘성 천주산 삼조사. 이곳의 삼조동굴은 그렇게 넓지도 깊지도 않았다. 혼자 기거하기에 좋을만한 바위굴인데 후대에 누군가가 문 입구를 거창하게 세운 것 같다. 안내문에 삼조 승찬대사가 신심명(信心銘)을 이 바위굴에서 쓰셨다니 필자는 감회가 새롭다. 신심명(信心銘)!


내용이 하도 좋아서 자주 읽기도 하지만 한국불교대학 大관음사에서 최근 5년 동안 동안거 해제 기념으로 선방에서 나오자마자 두 달씩 특강한 일이 있었기 때문에 그 관심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신심명은 절밥을 조금이라도 먹은 사람이라면 그 제목만큼은 익히 들어 다 안다. 총 584자의 한자로 이루어져 있는데 사언절구(四言絶句) 형식을 빌리고 있다. 내용을 보면 승찬 스님께서 선, 교에 두루 능통했음을 알 수 있다. 수많은 경전 말씀과 그의 스승 혜가대사, 그리고 스승의 스승이신 달마대사의 가르침을 아주 간결하면서도 명료하게 정리하고 있다. 그러니까, 신심명을 잘 보면 불교의 대의를 파악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지겹지 않고 저절로 신심이 생긴다.


삼조동(三祖洞)을 살피면서 흔히 말하는 신심을 생각해보았다. 신심명의 본문에서 언급되는 것처럼 신심불이(信心不) 불이신심(不二信心)이 개념 정립의 열쇠이다. 믿는 마음이 둘이 아니요, 둘이 아닌 것이 믿는 마음이다. 즉, 신심(信心)은 깨달음의 본체요, 자성자리를 말한다.


삼조선사(三祖禪寺)의 경내를 다니다 보면 자성시불(自性是佛)이란 글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자성시불의 자리가 바로 신심의 자리이다. 자기 부처님이 활발하게 살아 움직이는 인격체, 그런 인격은 어디서 비롯되느냐? 바로 신심이다. 그래서 그 거룩한 자성자리를 새겨두라는 말씀이 곧 신심명이다.

 

지도무난(至道無難)이요 유혐간택(唯嫌揀擇)이니
단막증애(但莫憎愛)하면 통연명백(洞然明白)이로다.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네 오직 간택함을 꺼릴 뿐.
미워하고 애착하지 않으면 통연히 명백하니라.

호리유차(毫釐有差)하면 천지현격(天地懸隔)하나니
욕득현전(欲得現前)이든 막존순역(莫存順逆)하라.
털끝만큼이라도 차이가 있으면 하늘과 땅 사이로 벌어지니라.
진리가 앞에 나타나길 바라거든 따름과 거스름을 두지 말지라.

위순상쟁(違順相爭)이 시위심병(是爲心病)이니
불식현지(不識玄旨)하고 도로염정(徒勞念靜)이로다.
어긋남과 따름이 서로 다툼은 이는 마음의 병이 됨이니라.
현묘한 뜻을 알지 못하고 공연히 생각만 고요히 하려 하도다(이하 생략).

 

 

▲삼조동굴 지나 언덕길 오르면 신심명서 이름 빌린 신심정이 나온다.

 

 

삼조동굴을 지나서 언덕길을 오르다 보면 신심명에서 이름을 빌린 신심정(信心亭)이 나타난다. 몇 발자국을 더 움직이면 해박정(解縛亭)을 지나치게 되는데 해박정은 삼조 승찬대사가 제 4조가 될 도신 스님과의 만남을 기념하기 위한 정자다. 이야기는 이러하다.

 

도신 스님이 승찬대사를 찾아와 법을 물었다.


“큰스님, 저를 속박에서 풀어주십시오.”


그때 승찬대사가 단 한마디로 일격을 가했다.


“누가 너를 묶었더냐!”


여기서 도신은 결박된 자기 마음을 스스로 풀었다. 즉, 해박한 것이다.

 

산꼭대기의 조사전에 오르기 위해서는 이 두 정자를 반드시 거치게 되는데 이 정자가 있어서 잠시 쉴 수도 있고 소나기도 피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니 사찰 관리자의 세심한 배려에 고마움이 든다.

 

 

▲삼조 승찬대사 열반 뒤 140년 지나 세워진 각적탑. 승찬대사 무덤 자리에 선 이 탑엔 다비하고 나온 사리 300과 가운데 100과를 봉안했다고 한다.

 


지친 발걸음을 떼면서 타박타박 걷다보면 저 멀리서도 우람하게 보이던 큰 보탑을 친견하게 된다. 이름하여 각적탑(覺寂塔)이다. 삼조탑이라고도 하는데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 불쑥 솟은 위용이 더욱 대단하다. 각적탑은 삼조 승찬대사가 열반하신 후 140년 쯤 지나서 세워진 것으로 보고 있다.


606년 80세이던 삼조 승찬대사는 나무 아래서 법문 중에 “세상 사람들은 다들 누워서 죽는다고 하는데 나는 서서 열반에 들것이다”하고는 대중이 보는 앞에서 합장한 뒤, 한 손을 뻗어 나뭇가지를 쥔 채 그냥 눈을 감았다. 그러자 제자 도신은 스승의 그 거룩한 법의 흔적을 기리기 위해 바로 그 자리에 땅을 파고 스승을 모셨다.


많은 세월이 흘러 745년에 당나라의 신심 있었던 관리 ‘이상’이라는 사람이 삼조사 뒤에 삼조 승찬대사의 무덤이 있다는 얘기를 어디서 듣고는 당시에 유명했던 육조 혜능스님의 제자 하택신회(荷澤神會)를 찾아가 간청하였다.


“삼조사 뒤에 삼조 승찬대사의 묘가 있다고 하는데 좀 가르쳐 주시오.”


하택신회가 묘의 내력에 대해 소상히 말해 주었는데 ‘이상’이 현장에 가서 발굴해보니 과연 삼조 승찬대사의 법구가 나왔다.


그래서 다비를 하니 사리가 300과나 나왔다고 했다. 그래서 100과는 대사의 고향에 탑을 세워 모시고 100과는 조정에 보내고 100과는 그 자리에 탑을 세워 모셨다 한다. 나중에 당 대종 ‘이예’라는 황제가 772년 승찬대사에게 ‘감지선사(鑑智禪師)’라는 시호를 내리고 승찬대사의 탑을 각적탑(覺寂塔)이라 불렀다.


이러한 역사적인 사실을 살펴보면 삼조 승찬대사는 당대보다 훗날 시간이 지나서 그 덕망의 위력이 점점 더 했음을 알 수 있다.

 

승찬, 해박정 자리에서
제자 도신의 속박 풀어
사자상승 미덕의 도량


나이 40이 넘어 출가한 늦깎이가, 육체적 지병도 이겨내고 조사가 되는 기적적인 성취를 보여주더니 정말 믿기지 않는 불가사의한 영험이 시공을 초월해서 진행되어 온 것이다. 그러한 사실을 뒷받침이라도 하듯 탑에 기댈 듯 서있는 히말라야시다의 푸른 기상이 순례자로 하여금 힘 불끈 솟게 하고, 바로 옆 오래 굵은 백일홍 나무는 붉은 빛을 허공 가득 발산하며 찾는 이의 마음을 아름답게 장엄하고 있다.

 

 

▲조사전. 주존 보리달마 좌우엔 이조 혜가와 삼조 승찬이 모셔져 있다.

 


각적탑보다 더 위에 올라앉은 조사전은 삼조사 전체 도량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오후 4시경 한 스님이 나무판자 같은 법구를 들고 ‘툭툭’ 목탁 치듯 도량석을 하니 30여명의 스님들이 조사전에 운집하여 예불을 드린다. 이러한 모습을 보노라니 조사전이 어떤 곳인지 알 것도 같다.


조사전에는 가운데 주존으로 보리달마가, 좌측에는 이조 혜가가, 우측에는 삼조 승찬이 모셔져 있다. 삼조사 절이면 당연히 삼조 승찬 대사가 주존으로 모셔질 법 한데 그렇지 않은 것을 보면 사자상승(師資相承)의 승가 가풍과 미덕이 잘 보존되어 있는 도량임을 알 수 있다.


조사전을 참배하는데 너무 감개무량하여 깊은 법열이 한참동안 이어졌다. 조사전의 위용만큼 순간이나마 내 마음이 커져있음을 느꼈다. 조사전 내부를 지키고 있는 스님에게 부탁했다.


“나는 신심명을 좋아하고 강의까지 하는 법사입니다. 삼조 승찬 스님을 늘 흠모해왔는데 이곳 조사전에서 큰스님을 뵈오니 너무 가슴이 벅찹니다. 꼭 사진 한 컷만 찍게 해 주십시오.”


내 얘기를 듣던 스님은 슬쩍 자리를 피해 밖으로 나갔다. 얼른 찍으라는 눈치이다. 사진을 찍고 문턱을 넘어서서 왼쪽 표지판을 보니 아뿔싸 거기에 문짝만큼 큰 글자로 ‘사진 촬영 금지’가 씌어져 있었다.

 

 

▲오후 4시경 스님이 법구를 치니 30여명의 스님들이 조사전에 모여 예불을 드렸다.

 


서릿발 같은 규율을 깨고 이방인에게 인간적으로 배려를 해준 스님의 마음이 오래오래 남았다. 히말라야시다 같은 엄격함과 백일홍 같은 따뜻함이 함께 공조하는 현실을 체험하고 있다.


어느 하나를 고집하지 않는 삼조 승찬대사의 융통성과 자비가 도량 구석구석 널널함을 보면서 이 또한 큰스님의 법력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절 구경을 하는데 어느 전각의 한쪽 벽면에 인쇄 글자로 써진 순치황제 출가시가 눈에 띄었다. 출가하는 행자에게 필자가 가끔 읽어주는 글이라 반가웠다.

 

도처에 수행처요 쌓인 것은 밥이거니
발우 들고 가는 곳에 밥 세 그릇 걱정하랴.
황금과 백옥만이 귀한 줄 알지 마소
가사장삼 얻어 입기 무엇보다 어렵다오.
내 자신이 이 국토에 주인노릇 하느라고
나라와 백성 걱정 마음 더욱 시끄러웠네.
이 몸을 받기 전에 무엇이 내 몸이며
세상에 태어난 뒤 내가 과연 누구던가?
자라서 성인됨에 잠깐 동안 나라더니
눈 한번 감은 뒤에 내가 또한 누구던가?
백 년의 세상에는 하룻밤 꿈과 같고
수만리 산과 들은 한 판의 바둑판이라.
날 적에는 기뻐하고 갈 적에는 슬퍼하나
덧없는 인간 세상 한 바퀴 도는 것 뿐.
애당초 안 왔다면 갈 일조차 없는 것을
기쁠 것이 없는데 슬픈 것이 또 있겠는가?
내 이제 손을 털고 부처님 도량으로 들어가니
천만 가지 근심 걱정 아랑곳 할 것 없구나. (출가시 일부 발췌)

 

나오는 길에 일주문 밖 화장실을 들렀는데 별을 세 개나 붙여 놓았다. 호텔에 등급을 표시하듯이 화장실도 격이 다르다는 것이다. 이 사람들의 기준으로 본다면 우리나라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은 7성급 정도가 될 것이니 독자들은 3성급의 수준을 미루어 짐작하기 바란다.


우학 스님 한국불교대학 大관음사 회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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