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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아잔타 탑당굴에 밀려온 불상의 파도

진리 상징한 스투파에 부처님 모시다

타지마할보다 위대한
세계문화유산 아잔타
암벽굴 29개 나란히
석굴 변화가 한눈에

 

▲1. 물돌이 개천 암벽의 아잔타 전경.

 

 

아잔타 석굴은 인도 대표 건축 타지마할보다 더 위대한, 꼭 가 보아야 할 세계문화유산이다. 2006년 12월21일 산치를 보고나서 저녁 보팔에서 만원 기차에 올라타고 새벽 1시 잘가온에서 내렸다. ‘론리 플래닛’ 안내서에 소개된 자그맣고 아담한 여관에서 하룻밤 잘 자고 일어나 아침 아잔타 행 첫 버스에 올랐다. 아잔타로는 남, 북 두 곳에서 들어가는 길이 있다. 북쪽은 잘가온에서 60km, 남쪽은 그 2년 후 두 번째 간 아우랑가바드에서 105km 떨어져 있다.


아잔타 석굴은 와고르 개천의 물돌이 말굽형으로 에워싼 암벽에 일렬로 총 29개 굴이 죽 파져있다(그림1). B.C. 1세기에서 A.D. 1세기 간의 초기 몇 개의 석굴, 즉 한 가운데의 9굴 10굴 탑당굴과 8굴, 12굴, 13굴 승원굴로부터 시작되었다. 그 후 300년을 잠잠하던 아잔타는 갑자기 대승불교 불상의 파도가 밀려오며 난리가 났다. 초기 석굴 좌우로 죽 이어서 나머지 굴 전부를 팠는데, 벽화와 조각과 문양으로 화려함의 극치를 이루며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평생 아잔타를 연구한 W.스핑크 박사에 의하면 462~478년 불과 16년 기간 동안 바카타카 왕국 석굴 조성 시기를 딱 짚어낸다. 그 시기는 신라에 불교가 들어온 직후인 자비왕 시절에 해당한다. 탑당굴은 초기 두 굴과 후기 16굴, 26굴, 두 굴 단 네 굴뿐이다. 죽 말해왔듯이 인도불교사원은 탑당 예배굴 하나에 거주 승원굴 여럿으로 구성된다. 중간에 보는 분을 위하여 기초 용어를 안내하면, ‘스투파=인도탑’이고, 차이탸는 스투파를 모신 예배굴 즉 ‘차이탸=탑당굴’이고, ‘비하라=승원굴’이다.

 

 

▲2. 초기 탑당굴의 스투파. 9굴, 10굴. 단순 추상 입방체.

 


아잔타 석굴은 초기 소승 불교 시대와 후기 대승 불교 불상 시대의 극명한 대비가 되는 인도 불교 변화를 그대로 보여주는 모델하우스다. 필자도 처음에는 멋모르고 그냥 갔었는데, 그것만은 꼭 알고 보아야 한다. 초기 탑당굴 9굴 10굴 스투파는 늘 보던 대로 원통 대좌에 둥근 불란(佛卵)과 꼭대기 천상 궁전과 층단 역 피라미드가 있는, 전체적으로 단순 추상적 입방체로 엄숙하게 잘 표현되어있다(그림2). 그런데 문제의 후기 두 탑당굴, 19굴부터 보면 스투파 둥근 불란을 지붕삼아 두 기둥으로 내려와 부처님이 서있는 상을 아예 집처럼 속에 모시고 있다(그림3). 꼭대기 3층 양산도 단순 원반이 아니라 각 층을 네 인물상이 받치고 있다. 주위를 잘 보면 기둥 위 주두와 상부 벽에 온통 불상 조각이 그득하게 열지어 조각되어있다. 26굴도 마찬가지로 스투파 원통 대좌 앞은 아예 궁전이 되어 부처님이 두 기둥 사이에 무릎세워 앉아 계시다. 온 사방 기둥, 벽과 마찬가지로 스투파 뒤 원통 대좌에 뺑 둘러 휘감아 불상이 줄줄이 조각되어있다(그림4). 이제 스투파는 불상과 하나로 합쳐졌다.

 

 

▲3. 후기 탑당굴의 불상과 결합한 스투파. 19굴, 26굴. 주두와 상부 벽면 그득히 돌아가며 조각된 불상.

 


자 여기서 ‘초기 추상 단순 스투파’와 ‘후기 불상 합체 스투파’가 왜 다르게 표현되었는지를 보자. 초기 정통 제자들은 부처님 알 사리를 묻은 상징적 스투파를 경배함으로써 부처님의 힘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대승불교가 떠안고 가는 생각이 짧은 대중들에게 추상적 상징은 와 닿지 않으므로 보다 구체적 부처님 인물 형상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4. 스투파 뺑 둘러 휘감은 불상. 26굴.

 


불교 내용 자체로 좀 들어가 보자. 석가모니 불교는 무색의 철학적 사색 종교다. 당시 절대자 신에게 제물을 놓고 복을 비는 힌두교의 전신 바라문교에 대하여 개혁의 깃발을 들었던 것이 석가모니다. 대승 불교가 되면서 인간이었던 스승 석가모니를 점점 신으로 받들어 하늘로 밀어 올렸다. 불상을 만들면서 점차 힌두교에서 우상을 숭배하는 것과 같아지며 힌두화 된 불교, 곧 밀교가 되다가 드디어 힌두에 흡수되고 말아 인도대륙에서 사라진다. 힌두화 된 불교를 보려면 아잔타 입구 도시, 규모는 좀 작아 덜 알려진 아우랑가바드 석굴에 가면 된다. 우리에게 알려진 타라 보살과 마찬가지로 우주의 여성 성력을 강조하는 힌두 샥티 사상에서 나온 벌거벗은 육감적 여인상들이 부처님을 지킨다. 주술과 도상의 힘으로 경지에 도달하고자 하는 불교는 석가모니 처음 불교와는 멀어졌다.


몇 년 전 아프간 이슬람 극단주의자 탈레반들이 세계적 불교 유적 바미얀 석불을 대포를 쏘아 파괴해 버렸다. 역사적으로 인도를 여러 차례 침공하였던 이슬람은 철저히 우상을 배격한다. 아잔타가 오늘날 온전히 남아있는 이유는 불과 200년 전 영국군 장교가 호랑이를 쫓다가 우연히 발견하였기 때문이다. 당시 인도전역은 밀림으로 덮여있었고 아잔타 입구 산등성이가 가로막아 드러나지 않았었다. 만약 이슬람에게 진작 노출되었다면 다른 곳처럼 불상의 목은 다 잘려나갔을 것이고 벽화고 뭐고 다 훼손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불교에서 불상은 우상인가? 중국에서 선종 불교의 단하소불(丹霞燒佛), 즉 불상을 불태워버린 이야기는 유명하다. 단하 천연(天然) 선사가 추운 어느 날 불당에서 불상을 끌어내어 도끼로 패서 불을 일궈 쬐었다. 당연히 절에서 난리가 났다. 붙잡아서 추궁하자 “사리가 나오는가 보려고” 했단다. “이놈아 나무 불상에서 뭔 사리가 나오는가?” 하고 질책하니 “사리도 안 나오는 것을 뭘 모시고 그래?” 선종 특유의 허를 찌르는 역설의 예로 들지만 필자 생각에는 역설이 아니라 그 자체가 맞는 이야기다.


경제가 급속히 발전하여 잘 살게 되면서 현재 방방곡곡 한국불교 사찰에서 큰 불사를 일으키고 있다. 심심치 않게 동양 최대의 불상이니 하면서 엄청나게 큰 불상을 조성하면서 산과 강과 바다 풍광을 가로막으며 천년을 이어온 선조들의 전통과 자연의 질서를 깨뜨려 버린다. 원래 석가모니 불교는 형상을 배격하는 무색의 종교다. 그런데 현대 다수의 불자들이 하듯 상을 만들고 그 앞에서 복을 빌며 절하다보면 불교 근본정신은 사라지고 곧 힌두화되어 소멸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이희봉 교수

그렇다면 불상 조각을 만들고 불화를 그려온 대승불교 불교예술은 다 무어란 말인가? 팔정도(八正道)의 정견(正見) 정사유(正思惟)의 혜안(慧眼)으로 형상을 꿰뚫고 본질을 보아야 할 것이라 생각된다. 석가모니 본래의 불심으로 돌아가자면 우상의 껍질을 깨고 보이지 않는 정신, 무영탑을 만든 백제 장인 아사달의 지극한 정성을 보아야 할 것이다. 불상의 크기에 집착하면 우상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며 이제는 우상과 본질 사이의 고민을 하여야 할 것이라 본다.


이희봉 중앙대 건축학부 교수 hblee@ca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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