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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접촉(觸)

기자명 법보신문

안팎 대상과의 접촉 의미
희로애락 반응도 뒤따라
새로운 경험세계 출발점

 

접촉이란 무엇인가. 무명으로부터 시작되는 십이연기의 지분들 가운데 6번째에 해당하는 항목이다. 접촉은 느낌(受)의 조건이 되며 또한 그 자체는 여섯 영역(六入)을 조건으로 발생한다. 일반적으로 접촉이란 눈 따위의 여섯 감관(根)과 그들에 대응하는 외부의 대상(境) 그리고 그들 각각을 식별하는 의식(識)이 만나 이루어지는 것으로 풀이된다. 따라서 접촉은 다음의 여섯으로 분류된다. “접촉에는 6가지가 있다. 눈에 의한 접촉, 귀에 의한 접촉, 코에 의한 접촉, 혀에 의한 접촉, 몸에 의한 접촉, 마음에 의한 접촉이다(SN. II. 3).”


접촉이란 말 그대로 안팎의 대상과의 접촉을 의미한다. 이것을 조건으로 즐겁거나 괴로운 느낌 따위의 정서적 반응이 뒤따르게 된다. 또한 구체적인 내용을 지닌 인식활동이 전개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것은 새로운 경험세계가 펼쳐지는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사의 희로애락은 그때그때 발생하는 접촉을 통해 펼쳐지는 한바탕 놀이인 것이다. “괴로움이란 조건적으로 발생한 것이라고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무엇을 조건으로 하는가. 접촉이다(SN. II. 33).”


접촉이란 외부 대상과의 무미건조한 만남이 아니라는 사실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접촉이란 번뇌를 지닌 것으로 집착을 낳는다(Ps. I. 22).”라는 경전의 가르침이 그것이다. 이것은 이미 접촉의 단계에서부터 주관적인 편견과 왜곡이 개입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관련하여 다음을 예로 들 수 있다. 인간을 비롯한 영장류 동물들은 뱀 따위의 파충류 동물을 본능적으로 혐오한다고 한다. 덩치 큰 고릴라도 갑자기 뱀을 만나면 소스라치게 놀란다고 한다. 이것은 수백만 년 전부터 누적시켜 온 영장류 고유의 성향에 따른 것이다.


이렇듯 눈이나 귀로 안팎의 현상을 접촉하는 최초의 순간부터 알게 모르게 누적시켜온 습관과 성향이 작동한다. 눈으로 보든 귀로 듣든 무언가를 마주하는 그 순간부터 저마다의 성향에 따른 고유의 반응들이 전개된다. 이미 자신들만의 색안경을 쓰고 있기 때문에 각자가 경험하는 색감은 다를 수밖에 없다. 동일한 현상에 대해 서로 다른 감정들을 갖게 되는 근원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따라서 경험세계에서 완전무결하게 객관적인 사물을 기대할 수 없는 문제이다.


한편 접촉은 정신·물질현상(名色)으로부터 발생한다고 언급되는 경우도 있다(Sn. 872게송). 특히 그때의 접촉은 언어적 접촉(命名觸)과 신체적 접촉(有對觸)으로 나뉜다. 전자는 개념적 사고에 의한 정신적 접촉을 가리키고 후자는 눈·귀·코·혀·몸이라는 다섯 감관에 의한 물질적 접촉을 가리킨다. 이러한 2가지는 접촉을 조건으로 발생하는 느낌(受)과 갈애(愛) 따위가 정신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으로 대별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해준다. 또한 경전에는 무명과의 접촉(無明觸)이라는 용례도 나타난다(SN. III. 46). 이것은 무지로 인해 그릇된 견해를 품게 되거나 혹은 잘못된 세계관에 빠지는 경로를 밝히기 위한 용도로 이해된다.

 

접촉의 다양한 용례는 경험세계 전반에 걸쳐 이 개념이 지니는 중요성을 나타낸다. 접촉은 느낌과 갈애와 집착과 있음이라는 십이연기의 나머지 지분들을 길러 내는 자양분에 해당한다.

 

▲임승택 교수

따라서 접촉을 꿰뚫어 아는 것은 태어남과 늙음·죽음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이 될 수 있다. “비구들이여, 접촉이라는 자양분을 두루 알게 되면 즐겁거나 괴롭거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세 가지 느낌에 대해서도 두루 알게 된다. 고귀한 제자가 세 가지 느낌에 대해 두루 알게 되면 그에게는 더 이상 해야 할 일이 없다고 나는 말한다(SN. II. 99).”


임승택 경북대 철학과 교수 sati@k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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