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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병실서 쓸쓸하게 눈감은 보살님

기자명 법보신문

췌장암 말기진단에 치료포기
집에서 마지막 맞길 바랐지만
가족 없이 병원서 세상 떠나

 

새벽이다. 바람소리는 커지고 가을은 깊어간다. 지난해 6월 착공한 자재병원은 아직도 60% 공정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언제 입원이 가능한지를 묻기 위해 현장을 찾는 환자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리다. 정토마을 전 직원들이 모금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모금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 병원건립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절실하게 느낀다. 그래도 최선을 다 할 것이다.


자재병원 완공을 기다리시던 보살님이 며칠 전 세상을 떠났다. 보살님은 지난 7월, 처음 자재병원 현장을 찾아왔다. 까맣게 변해가는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이기 싫어 모자를 쓸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얼굴에 슬픔이 깃들어 있었다.


“스님, 저 병원은 언제쯤 환자를 받을 수 있나요? 많이 아파요. 4개월 전에 통증으로 병원을 찾았다가 췌장암 말기진단을 받았습니다. 고작해야 석 달 살 수 있다고 했는데 지금 한 달 더 살았네요.”


보살님은 올해 수능을 치르는 아들, 중학교 3학년 딸, 그리고 회사원인 남편과 행복한 삶을 살아왔다고 했다. 현대의학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말을 듣고 어디로 가야하는지 고민했던 보살님은 인터넷에서 ‘섭섭하게 그러나 아주 이별이지는 않게’ 책을 보고 자재병원 건축현장을 찾아왔다.


“스님, 사람이 어떻게 죽나요? 죽을 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요? 한 번도 사람이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본 적이 없어요. 내가 이렇게 죽으리라는 것도 생각해본 적 없고요. 언제 죽을지는 모르지만 살아왔던 집에서, 가족들 곁에서 죽고 싶어요. 죽자마자 몸이 차가운 냉장고에 담긴다는 것이 너무 싫어요. 그런데 스님, 진짜 죽는 건가요? 제가….”


보살님은 힘들 때 꼭 곁에서 기도해달라고, 그리고 만약 잘못돼 의식이 없는 상황이 오면 집에서 마지막을 맞을 수 있도록 남편에게 말해달라고 내게 부탁했다. 아직 콘크리트 덩어리일 뿐인 자재병원에 눈을 떼지 못하던 보살님은 그렇게 건축현장을 떠났다.


그리고 2주가 지나 보살님은 중환자실에 입원을 했다. 가족들은 면회시간을 제외하고는 보살님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임종 전, 13년 동안 살아왔던 아파트로 가기를 원했지만 통증 등 여러 가지 이유로 그러지 못하고 남편·자식들과 깊은 이야기도 나눠보지 못한 채 늦은 밤, 5인실 병상에서 쓸쓸히 떠나고 말았다. 가족들이 병원으로 달려오던 중이었다.


보살님은 곧바로 영안실로 옮겨졌다. 가족들은 보살님의 모습을 입관할 때 잠시 볼 수 있었을 뿐이었다. 그게 전부였다. 그리고 한줌 재가 되어 멍하니 서있는 아들 품에 안겼다. 울지도 못하는 18살 아들과 15살 딸. 이 작은 통속 엄마의 유골이 어떤 의미인지, 도대체 납득이 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서 있었다. 그러다 딸아이가 아빠에게 매달려 운다. 왜 아무도 엄마가 이토록 빨리 가실 것이라고 말해주지 않았느냐고. 남편은 아내의 상태를 아이들에게 정확히 알려주지 않았던 것이다. 엄마를 잃어버린 저 큰 상실감을 안고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될까. 엄마의 따스한 가슴에 기대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하지 못한 채 떠나보내야 했던 아이들. 너무나 안타깝고 마음이 아팠다.

우리사회는 죽음의 고귀한 가치가 상실된 사회다. 죽음이 의미를 상실하면 삶의 가치와 의미가 상실되고 그럴수록 개인과 사회는 오직 생존을 위한 노력에만 집중할 것이다. 불과 15년 전만해도 객사를 피하고 집에서 임종을 맞는 문화가 존재했고 임종 후에도 적어도 하루는 곡도 하지 않고 문상도 받지 않은 채 머물던 방, 병풍가리개 뒤에서 편히 쉴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가족들은 애도의 시간을 가지고 경건한 마음으로 장례준비를 하곤 했다.

그러나 요즘에는 조부모가 돌아가셔도 자식들에게 상복을 입히지 않음은 물론 절만하고 집으로 돌아가게 하는 부모가 많다. 아이에게 험한 꼴 보여주고 싶지 않다는 것이 이유다.

 

▲능행 스님

죽음이 기계적으로 물건 하나를 불태워 치워버리는 것처럼 보여지는 현재 장례문화에 대해 깊이 숙고해볼 필요가 있다.  


능행 스님 정토마을 이사장 jungtoh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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