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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도와 학은 다르다

기자명 법보신문

도는 마음 밖에 있어 본적 없는 자기 모습
마음 밖서 배우고 익혀 아는 것은 학일 뿐

“배우는 사람이 잘 알지 못하고 수행하나니, 참으로 도적을 아들로 삼는 것이로다.”


도를 증득하는 마음은 지식을 배워서 아는 학의 길과는 다르다. 전자는 도를 객관적으로 대상화해서 지식으로 아는 길과는 달리, 내 마음이 도에 녹아서 도와 일체를 형성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도와 마음이 분리되지 않고 한 몸을 형성하는 것을 말한다. 본디 도와 마음은 각각 따로 노니는 것이 아니라, 도는 마음 밖에 있어 본 적이 없는 마음의 자기 모습인데, 사람들이 도를 잘 알지 못해서 도가 마음 밖에 있는 어떤 손님인 양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마음 밖에 있는 손님이 바로 도적과 다른 것이 아니다. 마음 밖에 있는 손님을 내가 점잖게 부른 것이지만, 기실 그것은 내 안에 들어와서 내 마음을 해코지 하는 강도나 도적과 다름이 없다. 사람들은 도가 내 마음의 바깥에 올연히 서 있는 고귀한 손님으로 여기지만, 도는 절대로 그렇게 바깥에서 나를 부담스럽게 하는 고귀한 신분의 어떤 실체를 가진 존재자가 아니다.


모든 도적은 다 바깥에서 안으로 들어오는 행동을 하지만, 도는 도적처럼 그렇게 바깥에서 안으로 틈입하는 것이 아니다. 도는 내 마음 안에 본디 있어 온 내 마음의 맑은 샘터로서 내 마음을 늘 한 결 같이 해맑게 해주는 청량제 역할을 하지만, 도는 어떤 실체가 있는 존재자처럼 그렇게 부피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니다. 도는 텅 빈 맑은 허공처럼 거기서 만물이 노닐고 흘러가고 움직이면서 자유스럽게 유영한다. 도는 어떤 실체를 가진 존재자로서 부피와 면적을 갖고 있지 않으므로 공이라 부를 수밖에 없다.


절대로 도는 마음의 바깥에 실재하는 어떤 것이 아니다. 그런 것은 그것이 어떤 고귀한 신분의 것이라 할지라도, 우리의 마음을 압박하는 귀찮은 존재자일 것이다. 도는 우리 마음의 바깥에서 우리를 부자유스럽게 하는 무게를 지니지 않고, 우리의 마음을 오히려 안에서부터 경안(輕安)하게 해주는 활력소와 같다 하겠다. 도는 우리의 마음이 본디 스스로 분비하는 활력소이므로 결코 바깥에서 안으로 들어 온 외적 요인이 아니다. 노자가 도는 집밖으로 쳐다보는 구경거리가 아니고, 바깥 풍경을 구경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고 언질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러나 가끔 배우는 사람이 큰 착각을 자주 범하는 것이 밖에 있는 도를 배워서 익히는 것으로 안다는 것이다. 바깥에 있는 것을 익히는 것은 학(學)이지 도(道)가 아니다. 만약에 도가 바깥에 있는 것을 알고 그것을 그렇게 익히는 것은 학보다 더 낮은 단계의 술(術)에 불과하다. 오늘날 우리가 학교에서 익히는 것은 거의 전부 학술적인 것에 불과하다. 학술적인 것은 도를 배우고 익히는 과정의 일과 멀리 떨어져 있다. 학술적인 것은 모두 과학의 길로 통한다. 과학은 결코 도를 배우는 수련이 아니다. 과학은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외적 도구적 지식을 익히는 것을 가리킨다.

 

도의 증득은 과학의 습득과 길이 다르다. 과학은 경험과 논리의 길에 따라서 우리가 외부에서 습득해야 하는 지식의 체계를 말한다. 그러나 도는 그런 지식의 축적이 아니다. 도는 지식 습득처럼 그렇게 이루어진다고 착각한다면, 그 때에 그 도는 이미 도도 아니려니와, 또한 도구상의 필요한 지식도 되지 못하는 세상의 독이 된다. 도의 증득은 내가 탐욕의 마음을 버림으로써 얻어지는 마음의 지혜스런 자기 선물이다.

 

▲김형효 교수

그 선물은 자기 자신에게도 이익이 될 뿐만 아니라, 또한 많은 타인들에게도 이익이 되는 자양의 비와 같다. 의상대사가 ‘법성게’에서 가르치신 바를 상기해 보자.


김형효 서강대 석좌교수 kihyhy@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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