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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양육에 따른 스트레스-上

기자명 법보신문

“스트레스를 아이 탓으로 돌리지 말라”

기분이 나쁜 상태일 경우
아이 다그치는 부모 많아


일상적인 명상 수행으로
스스로의 감정 잘 살펴야

 

 

▲부모는 자신이 받는 스트레스를 자녀의 행동 탓으로 돌리곤 한다. 하지만 부모의 태도가 스트레스의 진짜 원인이다. 사진은 수미런던 법사와 아이들.

 

 

자녀 양육은 정말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일이다. 이 점에 대해 굳이 내가 다시 언급할 필요는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삶에 대해 직접적으로 책임을 지게 된다. 단순히 그들의 생존을 안정적으로 보호해주는 차원을 넘어 선량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여러 면에서 보살핌을 주어야 한다. 여기에 어찌 중압감이 없을 수 있겠는가.


엄마로서의 역할을 하면서 나는 자녀양육과 관련된 스트레스 원인을 네 가지 정도로 구분하게 되었다. 그 각각에 대해 이를 경감시킬 수 있는 불교적인 방법을 발견했다.

 

▶ 스트레스 1 : 이미 벌어진 일을 어떻게 관련지어 받아들이는가?
우리는 종종 스트레스의 원인을 특정한 사람과 사건 또는 환경 탓으로 돌리는 실수를 범하곤 한다. “일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어” 혹은 “오늘은 교통체증에 짜증이 난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지 맑은 눈으로 관찰해보면 스트레스의 원인은 특정 사람과 사건, 환경 자체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곧 깨닫게 된다. 오히려 그것은 우리가 벌어지는 일을 어떻게 관련 지어 받아들이느냐에 달려있다.


자녀 양육과 관련해 우리는 우리가 받는 스트레스를 자녀의 행동 탓으로 돌리곤 한다. 우리 스스로가 기분 좋은 상태인 경우 비록 아이들이 좀 어질러 놓거나 옷을 더럽히더라도 우리는 그다지 귀찮아하지 않는다는 점을 우리는 스스로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기분 나쁜 상태인 경우라면 우리는 매우 짜증을 내게 되고 아이들을 다그치기 시작한다. “먹을 때는 턱을 접시 위쪽으로 오게 하라고 도대체 몇 번을 말 했니! 아니 셔츠를 얼룩지게 만들었잖아. 그 얼룩은 도무지 빠질 것 같지 않은데.”


아이들 자체가 아니라 바로 우리의 태도가 스트레스의 진짜 원인이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가장 직접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은 우리가 스트레스를 받을 때 스스로에게 이렇게 자문해 보자.


“이 문제를 좀 다른 방법으로 해석하고 받아들일 수는 없을까? 좀 더 긍정적인 태도를 취할 수는 없을까?”
얼마 전에 아이들과 함께 우리 부부는 호수를 향해 운전해 가고 있었는데 타이어에 펑크가 났다. 수리를 하기 위해서 차를 세웠고 나를 포함해서 우리 모두는 곧 심사가 언짢아졌다. 그러한 나를 자제하면서 이런 상황에서는 어떤 이점이 있는지 찾아보기로 했다. 따스한 햇살, 평온한 풀밭, 우리 모두가 함께 있고, 안전하다는 점, 이러한 상황은 결코 재앙이 아니다. 이건 단지 일정의 변동이고 새로운 경험에 대한 탐험일 뿐이다. 나의 어린 자녀들은 내가 지도하는 대로 따라왔고 마침내 새로운 경험에 대해 흥분했다. 결국 펑크 난 타이어는 유쾌한 경험이 되었다.


하지만 때론 의지력만으로 우리의 태도를 바꾸는 것이 불가능할 때가 있다. 잠재된 성향에 대해 좀 더 심도 있는 방법으로 대처해야만 할 때가 있다. 바로 여기에서 일상적인 명상 수행이 그 효력을 발휘하게 된다. 명상을 할 때 명상수행 그 자체를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이고 있는지, 또 호흡에 대해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신중히 관찰해 보라. 명상에 빠져들 때, 명상에 대해 불평을 하고 있는가? 멍해져 있는가? 욕망을 추구하고 있는가? 호흡 관찰을 놓치거나 공안 참구를 놓치는 경우 서투른 명상 수행자라고 스스로를 비난하고 있지는 않은가? 만약 그렇다면 불안함, 짜증, 부정적 태도에 대해 이를 인식하고 이에 대해 개방된 태도를 취하는 것을 포함해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그대로 수용하고, 부드럽게 대함으로써 명상에 대한 자신의 관계 설정에 전환을 시도해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자신의 마음이 좀 더 친절하고 좀 더 참을성 있는 반응을 보이도록 재훈련 시킬 수 있게 되며 이에 대한 충분한 수련을 통해 우리는 이를 우리의 일상 속에서 구현할 수 있게 된다.


▶ 스트레스 2 : 멀티태스킹
내가 처음 엄마가 되었을 때 나는 좀 더 많은 손이 있었으면, 심지어 또 다른 나의 분신을 가졌으면 하고 바랐다. 나는 8개 혹은 그 이상의 손을 가진 힌두 여신을 생각해 냈다. 그러면서 “그들은 그걸 제대로 가지고 있네”라고 생각했다. 집안 살림을 꾸려나가고 자녀를 기르는 것은 정말로 엄청나게 많은 양의 일거리였고 때론 동시에 두 가지 일을, 심지어 세 가지 일을 동시에 하지 않으면 도무지 끝낼 수 없을 것처럼 느껴졌다. 귀와 어깨 사이에 휴대 전화를 끼운 채로, 당근을 쓸면서, “저리 가서 놀아라. 엄마는 전화 받고 있어. 지금은 관두고”라고 속삭이면서 아이들을 가리키는 순간들이 있었다. 이런 모습은 스트레스를 주게 된다고 상상하면서 말이다. 불행히도 현대의 부모들은 전자공학 때문에 이전 세대에 비해서 더 많이 멀티태스킹을 하게 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라디오와 TV, 다림질, 휴대전화, MP3, 태블릿PC, 페이스북, 문자 메시지 등.


하지만 실상에 있어서 인간 두뇌는 두 가지 일을 동시에 수행하도록 만들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멀티태스킹은 우리의 스트레스 감(感)을 급격히 증가시킨다. 어떤 사람이 멀티태스킹을 하고 있다고 느끼는 경우 실제로는 두 가지 활동을 빠르게 오가면서 처리하고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두뇌를 연구한 결과 확인할 수 있었다.


하나의 실험 과정으로써 최근에 나는 아이들이 잠자리에 들었거나 집으로부터 혹은 나로부터 떨어져 있을 경우에만 나의 휴대 전화를 인터넷 연결(이메일 확인, 뉴스 보기, 문자 메시지 보내기) 및 컴퓨터를 사용하기로 결심했다. 저녁 식사 후 가족들에게 등을 돌리고 앉아서 페이스북 업데이트를 하느라 랩탑 컴퓨터를 사용하지도 않았다. 아주 흥미 있는 일이 벌어졌다. 나 스스로가 훨씬 더 행복해지고 스트레스를 덜 받게 되었다. 내가 아이들과 있을 때는 오로지 그들과 함께 있었다. 내가 집안 청소를 할 때는 단지 그 일을 할 뿐이었다. 이메일을 보낼 때는 단지 이메일을 보낼 뿐이었다. 한 번에 한가지씩만.


하지만 그것은 무척이나 힘든 일이었다. 나는 너무 많은 시간을 인터넷 사용에 할애했다. 나는 여러 차례 나 스스로를 억제할 수가 없었다. 한 번은 채소 가게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나의 휴대전화의 유혹에 넘어가서 이메일을 확인했다. 엄청난 양의 이메일이 쌓여 있었다. 내가 내용을 읽어 내려가자 나의 스트레스 수치가 확 올라갔다.


“이런, 집에 돌아가면 이 사람에게 문서를 보내야 되겠고 그 서류에 서명을 하는 것을 잊지 않아야 돼. 나는 무엇 무엇을 해야 해.”

 

정신적으로 해야 할 일들에 대한 목록이 늘어났다. 대조적으로 정해진 업무시간 중 이메일 작업을 하는 경우 각각의 요구사항에 대해 곧바로 대응할 수 있었다. 해야 할 일 목록 따위는 존재하지도 않는 상태에서. 다시금 불교식 명상법은 우리의 멀티태스킹 또는 과도한 몰아치기 버릇을 재교육시키는 방법을 우리에게 제시해준다.

▲수미런던
우리가 호흡 관찰법을 배우는 것은 실상 어떻게 한 번에 한 가지 일만 하는지를, 우리의 관심을 어떻게 집중하게 하고, 온전하게 할 수 있는 지를 다시 배우는 과정이다. 이를 통해 흩어지고 파편화된 감정들을 감소시키고 우리의 주의력에 온전함을 회복할 수 있게 된다. 이런 이유로 명상은 스트레스를 감소시키게 된다.

 

수미런던 듀크 불교공동체 지도법사

번역=백영일 번역편집위원 yipaik@wooriban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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