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차례엔 선거제도에 대해 알아보자. 선거란 말 그대로 대표를 뽑는 것이지만, 이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선거를 통해 구성원은 대표를 비판하고 견제할 수 있다. 선거 국면에서 구성원은 갈등과 대립을 표출하고, 각 후보자들은 이를 수렴하면서 의사통합을 한다. 구성원은 의사결정에 참여하면서 구성원으로서 주체를 형성하고 의식을 제고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대표는 선거를 통해 구성원을 대리하여 정책을 결정하고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정당성을 획득한다.
위와 같은 사유 때문에 다양한 분야에서 선거를 통하여 대표를 선출하고 권력을 부여하고 있다. 율장과 승가의 전통으로 보면, 소임자의 선거는 올바르지 않다. 하지만, 이제 승가는 세속화 없이 존재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세속화가 문제가 아니라 종교집단의 성스러움과 세속화를 조화시키는 일이 관건이 되었다. 역설적으로 선거를 통한 대표 선출이 종교집단의 성스러움을 더욱 수호할 수 있는 길임이 밝혀지면서 대다수 종교집단이 선거를 수용하고, 선거와 집단의 전통과 규율을 조화시키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구성원의 의사를 선거를 통하여 굴절 없이 반영할 때 그 집단의 사회통합이 올바로 이뤄지고 대표자 또한 정당성을 갖고 권력을 집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선거방식이 있고 나름대로 장단점이 있지만, 인류는 여러 시행착오를 통하여 민주주의의 원칙과 절차를 따른 선거야말로 가장 합리적이며, 개개인의 합의를 도출할 수 있으며, 집단 지성에 따라 지혜를 도모할 수 있는 제도임을 깨달았다. 여러 우여곡절 끝에 민주주의 선거는 보통선거, 비밀선거, 직접선거, 평등선거를 행한다. 이를 종단의 선거에 대입해 보자.
이제 흑인이나 여자라고, 혹은 신분이 낮다고 선거권을 주지 않는 나라는 없다. 하지만, 종단은 4부 대중 가운데 일부에게만 이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교구종회 의원 선거법을 보면, 제8조 선거권 조항에서 “구족계를 수지한 자로서 교구 본사 재적승, 재직승, 당해 교구의 1년 이상 거주승은 직선직 교구종회의원의 선거권이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참종권을 제한하는 것은 보통선거의 원칙에 위배된다. 당연히 비구니와 우바이, 우바새에게도 선거권을 부여해야 한다.
4부 대중에게 선거권을 준다면, 비밀선거와 직접선거를 행하는 것은 당연하다. 어떤 이유로도 직접선거가 지켜지지 않으면, 이는 불자의 수행에 영향을 미치며 화합을 깰 수 있다. 간접선거는 선거부정이 쉽고 야합의 가능성이 있으며, 대리자를 민주적으로 선출하였다 하더라도 그가 구성원의 의사를 왜곡할 가능성이 짙다.
문제는 평등 선거다. 평등 선거는 모든 유권자가 균등한 기회를 가지고 투표에 참여할 수 있도록 보장함과 동시에 각각의 표에 동일한 가치를 부여하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삼보를 공경해야 하고 스님의 위의가 지켜져야 하는 불교 전통의 입장에서 모든 4부대중이 같은 가치를 갖도록 하는 것은 불법의 이치와 부합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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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승단의 전통과 민주주의 원칙을 조화시키는 방안은 무엇인가. 같은 스님인 비구와 비구니의 표는 1대 1로 동일한 가치를 갖는다. 하지만, 재가 불자의 표를 스님의 표와 똑같이 1대 1로 대응시킬 수 없다. 대안은 스님 전체 표와 재가불자 전체의 표를 동일한 가치로 인정하는 것이다.
이도흠 한양대 국문학과 교수 ahurum@hanmail.net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