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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나가르주나콘다-스투파에서 불상으로의 초기 단계

기자명 법보신문

수몰 전 사원 흔적에 스투파·불상 공존

‘용과 나무의 언덕’에
3~4C 익슈바크왕조 유적
찬란했던 불교문화 남아

 

 

 

▲ 1. 나가르주나콘다 전형적 사원. ‘독방렬 안마당 승원+스투파와 불상 말굽형 대칭 쌍 예배당+큰 스투파’(좌). 2. 사원 기본 모습. 기둥 안마당에서 본 왼쪽 끝 스투파 예배당, 오른쪽 끝 불상 예배당, 그리고 멀리 가운데 큰 스투파(우).

 

 

불교가 천년을 휩쓸었던 인도에 수많은 사원 유적지가 있다. 그 중 중남부 안드라프라데시 주 나가르주나콘다가 있다. 대승불교 시조 한분인 나가르주나, ‘용과 나무’ 의역 용수(龍樹) 스님이 만년에 머무른 곳이라는데, 사실은 불분명하다. 콘다는 언덕이다. 현지인들에게는 청평호 같은 댐 호수 유원지로 더 알려져 있다.


나가르주나콘다 가는 길은 험난했다. 중부 대도시 하이더라바드에서 들어갔지만 가던 날이 장날, ‘반드’ 총파업 때문에 다음 행선지 아마르바티를 먼저 들른 다음 거꾸로 갔다. 동쪽 끝 비자와다 시에서 아침부터 서둘러 일단 소도시 군투르로 가서 시골길 털털거리는 버스로 마첼라로, 최종 댐 밑 마을에 저녁녘에 도착했다.


1920년대 발견된 유적지로서 50년대 댐 건설로 수몰되기 전 대대적 발굴 후 섬 위에 일부 유적을 옮겨놓고 박물관도 세웠다. 3~4세기 익슈바크 왕조 중심지이다. 물속에 잠겨버린 발굴 지역 유적 터가 엄청나게 컸다. 박물관에서 전체 모형도를 보니 사방 10리가 넘는 서울 사대문 안 보다 넓은 곳에 120여개가 넘는 유적지들이 즐비하게 배치되었으니 규모를 상상해보시라. 대부분 불교 유적이지만 바라문교 유적도 성곽유적과 함께 있다. 승려들이 대규모 거주했던 거대한 불교 사원 도시다. 이 지역에 꽃핀 불교문화의 힘을 느꼈다. 섬으로 가는 선착장으로 미리 알아본 예정 시간표 보다 30분 일찍 나갔다. 9시30분 출발인데 벤치에 몇 사람 앉아 기다리는데 정시가 되어도 도통 개찰구 문을 열 생각을 안 한다. 가서 알아보니 최소 50명이 되어야 출발한단다. 몇 번을 세어보아도 20명이 채 안 된다.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 둘 더 모이기 시작하여 다시 세어보니 50명이 넘었다. 그래도 감감무소식. 오늘이 토요일이라 관광객이 평일보다는 많을 텐데 이 모양이니, 원래 일정대로 엊그제 목요일에 왔으면 배가 못 떠서 못 볼 뻔했을 텐데 파업 여파 일정변경도 전화위복이다 싶었다. 한명이라도 더 태워가려고, 공식 배 시간표는 “엿장수 맘대로”다.


1시간 남짓 호수를 거슬러가니 섬에 닿았다. 상륙하니 40 몇도 뜨거운 날씨에 돌바닥 지열이 대단했다. 전날부터 대대적 배탈에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가져간 생수만 들이켰는데 처음에 시원하던 물도 금방 데워졌다. 나중에는 기운 하나도 없이 겨우 발걸음을 뗐다. 중간에 수도꼭지에 머리 디밀고 물을 부어도 금세 태양볕에 말라버렸다.

 

 

▲ 3. 스투파 모신 말굽형 차이탸.

 

 

필자의 주목을 끄는 것은 이 지역만의 독특한 사원 유형이다. 바닥만 겨우 남은 대부분 붉은 벽돌로 쌓은 승원, 즉 비하라 유적이다. 전에 보던 대로 3면 스님 거주 독방렬로 둘러싸인 안마당, 네모난 안마당에 각 변 6개씩 36개의 부러진 돌기둥이 빽빽이 서있다(그림1, 그림2). 안마당을 지붕으로 덮었던 것이 틀림없다. 가장 흥미를 끄는 것은 마당 끝에 붉은 벽돌의 말굽형 예배당, 즉 한 쌍의 차이탸가 일대 일로 서로 마주보고 서 있다. 왼 쪽에는 작은 스투파(그림3)를, 오른 쪽에는 입상 불상(그림4)을 말굽 예배당에 모시고 있다. 수몰 전에 이런 비하라 승원이 무려 27곳이나 있었다. 그리고 비하라 바로 건너편에 바닥만 남고 윗부분은 없어진 별도의 큰 스투파가 있다.

 

 

▲ 4. 대칭 반대편 불상 모신 차이탸.

 


전반적으로 나가르주나콘다 기본 사원형이라 이름붙여도 될 인도의 다른 곳엔 없는 유형이다. 즉, 1) 안마당 지붕의 독방렬 승원 비하라 2) 불상과 스투파를 각각 모신 말굽형 대칭 쌍 예배당 차이탸 3) 그리고 큰 스투파의 3종의 합성 배열이다. 약간 변형은 있지만 전체 유적 전부 이런 유형의 사원이었다. 또 20여개의 독립된 큰 스투파 있었던 것으로 봐서 이 시대에 아직은 스투파 중심의 경배를 우선시 했던 것이 확실하고, 불상이 도입되어 각 승원 내에서는 불상과 스투파를 같은 비중으로 경배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불교가 스투파에서 불상으로 숭배 중심이 넘어가는 초기 단계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 5. 위는 없어진 대 스투파. 네 방향 입구의 탑돌이 둘레 담과, 그 안에 큰 원형 스투파, 돌출 사각 단에 다섯 기둥 아야카.

 


스투파도 나가르주나콘다형은 독특하다. 스투파 뼈대 심벽을 동심원과 수레바퀴살 벽돌로 쌓고 사이에 흙과 돌을 채워 넣은 구조다. 대스투파는 무려 직경 28m다. 물론 바닥만 남고 윗부분은 사라졌다. 외곽으로 산치 스투파의 탑문 대신 4방향 입구 길만 터놓고 벽돌 울담장으로 감싸 그 안에 거대한 스투파를 모셨다(그림5). 즉 탑돌이길이다. 특이한 것은 원형 스투파 상층 탑돌이길 입구 네 방위에 사각단을 돌출시켜 아야카라 부르는 5개의 높은 사각기둥을 세웠다. 즉 중심성을 갖는 원형 평면에다가 4방향성을 강조한 정확히 ‘만달라’ 평면이다. 이웃 지역 아마르바티 스투파와 같은 유형이다(그림6). 초기 민짜 스투파와는 달리 표면 판석에 장식을 화려하게 새겼다.

 

 

▲ 6. 비슷한 인근 아마르바티 스투파 추정 복원도.

 

 

공양하는 장면에다가 스투파 전체 모습도 새겨져 있다. 식민시대 서양인들이 약탈해가서 자기네 박물관에 전시하고 있고 인도 현지에는 드물게 남아있다. 판석 조각을 바탕으로 그린 복원도는 하나의 상상 추정도일 뿐이다.

 

 

▲7. 복원이라는 이름의 문화 유적 파괴. 미륵사지 동탑.

 


여기서 우리 백제 유적 익산 미륵사지와 비교해 보자. 뒷면 절반이 사라진 서탑은 국보인데, 여기처럼 바닥만 겨우 남아있던 동탑지에 20년 전 복원이라는 이름으로 소위 문화재 전문가라는 인물들이 사라진 원래 형태를 전혀 알 수 없음에도 서탑 그대로 복사하여 현대 탑을 건설하고는 고증 복원했다고 거짓말을 한다. 가치 없는 현대 조형물을 실물 크기로 그것도 유적지를 파괴하며 엄청난 국민 세금으로 세우는 야만이 현재에도 대한민국 곳곳에서 횡행한다. 철학이 없는 졸부 국가의 비극이다. 이제는 불교계에서 나서서 적극 저지해야겠다.

 

▲이희봉 교수

힌두사원 유적도 더러 있다. 단지 끝에 왕이 말을 잡아 희생제를 지내던 특이한 사원이 있다. 안에 정교하게 계획된 정방형 계단식 우물이 있고 맨 앞 입구에는 잡기 전 정화 의식을 치렀다는 독특한 포석정 같은 자유곡선의 돌로 된 연못이 있다.


이희봉 중앙대 건축학부 교수 hblee@ca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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