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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의식(識)

기자명 법보신문

의식을 조건으로 발생
개체 사물의 성립 근거
고의 구체적 단계 양상

 

의식이란 무엇인가. 무명으로부터 시작되는 십이연기의 지분들 가운데 3번째에 해당하는 항목이다. 의식은 정신·물질현상(名色)의 조건이 되며 또한 그것 자체는 지음(行)을 조건으로 발생한다. 일반적으로 의식이란 어떠한 현상을 ‘의식하거나 식별하여 아는 것’을 가리킨다. 예컨대 시거나, 맵거나, 쓰거나, 달거나, 쏘거나, 짠 것 따위를 알게 해주는 것으로 설명된다(SN. III. 87). 이와 같은 의식의 작용은 눈이나 귀 따위의 방식으로도 각기 다르게 진행된다고 보아야 한다.


의식은 감관에 따라 다음과 같이 구분된다. “눈의 의식, 귀의 의식, 코의 의식, 혀의 의식, 몸의 의식, 마음의 의식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을 의식이라고 한다(SN. II. 4).” 이렇듯 의식은 감관에 따라 여섯 갈래로 나뉜다. 그러나 십이연기에 배속된 의식은 실제 감관을 매개로 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십이연기에서의 의식이란 과거의 삶에서 누적된 지음(行)을 조건으로 발생한다. 이들은 꿈속에서와 같이 감관에 직접 의존하지 않고서 작동하는 여섯 갈래의 정신적 흐름들이다.


의식이라는 용어의 대표적인 쓰임은 다섯의 경험적 요인들 즉 오온(五蘊)의 하나라는 것이다. 물질현상(色)·느낌(受)·지각(想)·지음(行)·의식(識) 가운데 마지막의 그것이다. 그런데 오온의 가르침에서는 의식의 발생 경위에 대해 따지지 않는다. 다만 인간의 실존을 구성하는 주요 내용의 하나로서 의식이 존재하며, 바로 그것을 자기 자신과 동일시하면 괴로움이 증폭된다는 사실을 알리는 데 초점을 모은다. 오온의 가르침은 경험적 요인들 각각에 대해 ‘나’ 혹은 ‘나의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일깨우는 데 주력할 뿐이다.


동일한 맥락에서 일부 경전에서는 의식이란 눈(眼)·귀(耳)·코(鼻) 등의 감관(根)이 시각대상(色)·소리(聲)·냄새(香) 따위의 대상(境)에 대해 일으키는 반응으로 설명한다(MN. I. 111~112). 그런데 그때의 의식 역시 오온에서와 마찬가지로 경험적 사실을 넘어선 차원으로까지 나아가지 못한다. 그러나 십이연기의 의식은 정신·물질현상(名色)과 여섯 영역(六入) 너머의 심연에서 작동한다. 이때의 의식은 과거로부터 누적된 몸(身)과 입(口)과 마음(意)을 통한 잠재적 성향(三行)을 조건으로 발생한 것이다. 이것은 비록 6가지 감관의 형식을 취하지만 정신적 흐름으로만 존속하면서 경험세계의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후대의 주석가들은 바로 이것을 윤회의 와중에 새로운 생명체로 이어지는 ‘재생연결의식(結生識, paṭisandhiviññāṇa)’으로 설명한다. 이와 같이 의식을 윤회의 주체로 바라보는 경우는 초기불교의 경전에도 종종 나타난다(SN. I. 120~122). 그러나 이러한 설명대로라면 의식이란 전형적인 형이상학적 실체가 되고 만다. 이와 같이 실체화된 의식은 경험세계 안에서 그 존재 여부를 입증하기 어렵다는 난점을 지닌다. 또한 ‘의식하거나 식별하여 아는 것’이라는 원래의 쓰임으로부터도 비켜난 느낌이 없지 않다.


십이연기에 따르면 무명이 소멸하면 지음이 소멸하고 지음이 소멸하면 의식도 소멸한다(SN. II. 1~2). 따라서 의식이란 무명이 존속하는 한에서만 작용하는 일시적인 것이다.

 

▲임승택 교수

지음을 조건으로 발생하는 이것은 있는 그대로의 실재를 ‘누적된 지음의 방식을 통해 왜곡되게’ ‘의식하거나 식별하여 아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바로 이것을 조건으로 괴로움으로 귀결되는 십이연기의 나머지 지분들이 뒤따른다. 의식을 온당한 정신작용의 하나로 간주하게 되면 무명이 제거되더라도 의식은 계속될 수 있다는 당혹스러운 결론에 이르게 된다.


임승택 경북대 철학과 교수 sati@k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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