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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잃은 12살 소녀를 위한 기도

기자명 법보신문

투병하는 엄마 곁에서
상처입고 지쳐버린 딸
씩씩하게 세상 살기를

 

강물이 흘러 바다로 모이듯 다양한 인생을 걸어온 사람들이 모여드는 종착역, 회한의 눈물이 바람 되어 지나가는 곳, 정토마을. 삶에서 죽음으로, 죽음에서 탄생으로, 탄생에서 삶으로. 뒤죽박죽 엉키는 인연의 날줄과 씨줄의 출렁임이 있는 그곳에는 성성한 가르침 또한 굽이친다.


지난여름 유난히도 무더웠던 어느 날, 응급차 한 대가 정토마을에 섰다. 체구가 작은 사람 한명이 병실로 실려 들어가고 가녀린 여성과 초등학생 여자아이가 사무실로 들어왔다.


소녀의 엄마는 뇌종양으로 4년간 투병했고 아빠는 그런 아내를 두고 떠나버렸다. 소녀의 이모는 오갈 곳 없는 처지가 된 이들을 자신의 집으로 데려왔다. 이모는 결혼을 해 아이가 셋이었다. 방 두 칸짜리 집에서 7명이 살았다.

 

이모와 이모부가 밤을 새워가며 일해 번 돈은 소녀의 엄마 수술비로 고스란히 나갔다. 엄마는 뇌의 악성종양이 신경을 누르고 있어 시력을 완전히 잃고 귀도 들리지 않았다. 가느다란 손목에는 자해의 상처가 수없이 남아있었다.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는 환자의 모습에 가슴이 저몄다.


소녀와 이야기를 나눴다. 퉁명스러운 말투와 자신감 없는  표정, 소녀의 모습은 그랬다. 소녀는 정토마을에 입소한 엄마를 두고 이모를 따라가겠다고 했다.


“보고 들을 수 없는 언니는 하루 종일 딸아이만 찾아요. 희야는 하루에도 수백 번 자신을 부르는 엄마를 지겨워하고요.”


힘겹게 말을 이어가는 이모의 얼굴에서 눈물이 흐른다. 옆에 앉아있던 소녀도 울먹였다. 이렇게 힘겨운 현실을 저 어린 것이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는가. 소녀의 커다란 눈동자에는 두려움이 짙게 고여 있었다. 짧은 순간만이라도 엄마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소녀의 가슴 한편에 심어주고 싶었다. 엄마에 대한 사랑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말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는 네 엄마를 스님이 어떻게 돌보면 좋을까. 며칠만 스님 곁에서 알려주면 좋을 텐데. 그래야 스님이 엄마를 잘 돌보지.”


소녀는 커다란 눈을 굴리며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 문득 이모를 바라보며 3일 후 자신을 데리고 오라고 말한다. 이모는 그러겠다고 약속을 했다. 나는 소녀의 손을 잡고 병실로 올라갔다.


“엄마에게 말씀드려봐. 엄마 곁에 희야가 있다고.”


소녀는 엄마의 오른손 바닥에 글을 쓴다. 엄마, 나 여기 있어. 엄마 곁에 있다가 목요일에 갈 거야. 이모가 데리러 오기로 했어. 그때까지 여기 스님이랑 같이 살거야. 엄마, 걱정 말고 잘자.


엄마는 손을 더듬거리며 소녀의 얼굴과 어깨, 팔과 손을 쓸어내렸다. 새끼를 걱정하는 어미의 마음이 병실을 가득 울렸다. 내 옆자리에 이불을 깔고 피곤해하는 소녀를 재웠다. 곤히 잠든 모습이 병든 병아리 같았다. 저 어린 것의 마음속 상처는 얼마나 깊을까? 아침에 일어나 자리를 정리하는 소녀를 꼭 안아줬더니 쑥스러워한다. 지난 몇 년간의 긴장이 풀리고 어깨에 지워진 짐이 덜어지면서 소녀는 주저앉고 말았다. 열이 나고 밥을 삼키지 못했다. 저녁에 소녀에게 약을 먹이고 무릎에 뉘이니 금방 깊은 잠에 빠진다.


병든 엄마는 밥을 먹고 나면 언제나 소녀를 찾았다. 소녀 역시 수시로 병실에 올라가 자신이 엄마 곁에 있음을 알려줬다. 소녀가 내 눈치를 보며 엄마 옆에 조금만 더 있고 싶다고 말한다. 예쁜 애기. 메마른 소녀 가슴에 난 상처들이 어서 아물기를, 그래서 자신의 삶을 마음껏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했다.


그리고 한 달 후, 엄마는 세상을 떠났다. 임종의 순간 소녀는 엄마의 손등에 글을 썼다. 엄마 잘가, 이제 아프지 마. 12살 소녀는 엄마의 시신을 앞세우고 이모와 함께 정토마을을 떠났다.

▲능행 스님

불치의 질병은 가족을 분열시키고 해체시킨다. 어린아이들은 그 안에서 상처입고 방황한다. 그 아이들에게는 관심과 애정이 절실하지만 우리는 너무 무관심하고, 때론 이기적이다. 주변을 돌아보면 구석진 곳에서 혼자 울고 있는 아이가 있다. 우리, 먼저 손 내밀어 그 눈물을 닦아주는 것은 어떨까. 희야가 씩씩하게 살아가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한다.


능행 스님 정토마을 이사장 jungtoh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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