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순례의 출발지 콜카타
1. 순례의 출발지 콜카타
  • 남수연 기자
  • 승인 2012.12.31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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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의 발자국 찾아가는 길에 성자들의 손을 만나다

불자·타종교인 하나돼 꾸려진
70여명 순례팀은 모두가 도반
13박14일 험로의 든든한 의지처


‘죽음을 기다리는 집’서 만난
마더테레사 후예들의 헌신에 
종교의 차이 넘어 고개 숙여져 

 

 

 

떠나는 길은 언제나 설렌다. 더구나 붓다의 자취를 만나러 가는 길이다. 인간으로 태어나 왕의 삶을 버리고 인류의 스승이 되어 성자로 남은 분. 붓다 석가모니가 태어나고, 성장하고, 깨달음을 이뤄 법을 펴시다 열반하신 땅. 인도 불교 8대 성지를 찾아간다는 기대에 숨이 가쁠 지경이다.


“인연이 있어야 간다”는 말을 수 없이 들었다. 교계언론에 몸담은 이후 다양한 국가의 불교 성지를 취재했다. 하지만 유독 붓다 석가모니의 자취가 서려있는 8대 성지순례의 선연은 십 수 년이 지나도록 나타나지 않았다. ‘인연이 없으려니’ 체념하려던 순간, 순례의 기회가 불쑥 찾아왔다.


순례는 전 세계 불교 유적지를 탐방하는 재가불자모임 ‘불타보헤미안’에서 기획했다. 광덕사 회주 혜인 스님이 필두에 서고 은해사 중암암 주지 덕조 스님, 제주 약천사 주지 선조 스님이 지도법사로 70여 명의 동참자들이 함께했다. 대다수가 8대 성지순례를 간절히 염원해 온 불자들이지만 종교를 떠나 인류의 스승인 붓다의 자취, 그리고 인류 문화유산인 8대 성지를 직접 확인하고 싶은 무종교인이나 타종교인도 다수 동행했다. 그렇게 모인 순례 팀은 13박14일 일정으로 인도 콜카타에서 네팔 룸비니를 거쳐 다시 인도의 뭄바이까지 결코 짧지 않은 길을 함께 했다.


길이 먼만큼 몸은 가벼워야 한다. 짐을 줄이기는 간단하지만 머릿속을 덜어내기는 쉽지 않다. ‘왜 그토록 성지순례를 원했는가.’ 비행기에 몸을 실은 순간부터 이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붓다 석가모니의 삶을 만나고 그 삶을 느끼는 시간 속에서 과연 무엇을 깨달을 수 있을까. 아니, 무엇을 얻고자 기대하고 있는가. 그토록 원했던 성지순례였건만, 막상 떠나는 길 위에서 스스로를 향한 질문에 쉽게 답을 내놓지 못한다. 이 질문은 순례 내내 화두가 되었다.


불교에 대한 사전적 정의는 ‘석가모니를 교조로 삼고 그가 설한 교법을 종지로 하는 종교’다. 즉, 불교의 시작은 붓다 석가모니다. 붓다로부터 시작해 붓다가 설한 법이 중심이 되는 종교다. 깨달은 이의 가르침은 우리 모두가 깨달은 이가 되기 위한 길이다. 그것이 가능하다고 믿는 종교다. 왜? 붓다 석가모니 역시 인간으로 태어나 인간의 힘으로 깨닫고 인간을 제도하다 인간답게 삶을 마치셨기 때문이리라. 나도, 너도, 우리 모두는 인간이라는 조건 하나만으로도 그분과 같은 성취를 이룰 수 있다. 오직 붓다가 제시해 놓은 길을 따라 가겠다는 용기, 실천하겠다는 의지만 있으면 된다. 그러한 용기와 의지를 갖고 있는 이에게 역사 속에서 뚜렷하게 살아 숨 쉬었던 붓다의 삶은 그 자체로 선명한 깨달음의 길이 될 것이다. 그렇기에 그 시간의 흔적을 찾아가는 성지순례는 또 다른 배움이자 수행의 기회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 길을 떠나는 이에게 성지순례는 어떤 시간이 될까. 깨어있지 못하다면 귀한 순례의 시간은 그저 고단한 여행이 될지도 모른다. 출발할 때 보다 훨씬 더 무거워진 마음을 안고 인도에 첫발을 딛는다.


이런 저런 생각 때문이 아니더라도 순례의 길은 험하다. 각각의 성지는 수 백 킬로미터씩 떨어져 있고 도로 사정 또한 썩 좋지 못하다. 한 곳에서 출발해 다음 목적지까지 이동하기 위해 버스를 10시간 가깝게 타야하는 일도 다반사다. 더욱이 이번 순례에는 8대 성지 외에도 콜카타를 비롯해 아그라나 아우랑가바드, 뭄바이 등이 포함됐다.

 

붓다 석가모니께서 태어나 몸 부비며 살았던 인도, 그 역사의 단면과 오늘날의 모습을 통해 붓다의 삶을 조금이라도 더 이해하기 위함이다. 인도라는 사회의 현실과 그들의 역사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우리가 만나는 붓다의 삶 또한 반쪽뿐이리라. 당연히 갈 길은 더욱 길고 매일의 일정은 숨 막힐 듯 촉박하다. 오직 함께 하는 70여명의 순례자들이 스승이자 의지처가 되어 줄 것이리라 위로해본다.


본격적인 순례에 앞서 일행은 콜카타에서 인도와의 첫 대면을 시작했다. 콜카타는 붓다와 인연있는 땅은 아니다. 그러나 인도라는 복잡하고 거대한 땅을 이해하기에 콜카타는 매우 적절한 곳임에 분명하다. 콜카타는 인도의 수도 델리 다음으로 큰 도시다. 손꼽히는 상공업도시인 동시에 지성과 문화의 수도로 여겨지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빈곤한 인도 하층민들의 삶이 시간의 틈새로 새어나간 듯 정체된 모습으로 고여 있는 도시다.

뒤섞인 사람과 차, 그 사이를 이리저리 빠져 나가는 오토바이와 자전거들. 산더미만큼 짐을 싣고도 신기할 만치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짐꾼들의 손수레. 거기에 더해지는 시끄러운 경적 소리. 처음이 아닌데도 볼 때마다 낯선 인도의 풍경은 언제나 멀미가 날 것 같은 혼란이다. 한 눈에 보아도 가난한 이의 버거운 삶이 덕지덕지 묻어있는 누추한 모습의 어미와 그 품에 안겨 눈망울 가득 울음을 가득 담은 채 ‘원달러’를 중얼거리며 내미는 아이의 가느다란 손목은 완벽한 불행의 한 장면이 되어 걸음을 붙잡고 늘어진다. 어디 그 뿐이랴. 해가 중천에 뜨도록 길바닥에 널브러지듯 누워 잠들어 있는 노숙자들과 숨이 막힐 듯 다닥다닥 붙어 있는 구시가지의 창문, 쇠창살, 낡은 빨랫감들도 캘커타의 풍경이다. 길거리 아무 곳에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수도펌프와 그 물에 의지해 차가 지나가는 도로 옆에서 아무렇지 않게 몸을 씻고 설거지를 하는 사람들. 이런 장면들은 안개 같은 매연이 자욱한 콜카타의 흐린 풍경에 옹색함을 덧붙인다.


그러한 콜카타에서 우리가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마더하우스’와 ‘죽음을 기다리는 집’이었다. ‘가난한 자의 어머니’로 불리며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던 마더테레사의 자취를 찾아간 것은 종교적인 이유가 아니다. 2600여 년 전 붓다가 계급과 빈부의 차이를 떠나 모든 생명의 존귀함을 선언했다면 마더테레사의 삶은 21세기 인도에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계급과 빈부의 차이 속에서 고통 받는 이들을 위해 헌신한 21세기의 성자다. 성지순례에 앞서 세상에 살았던, 그것도 인도라는 하나의 사회 속을 거쳐 갔던 또 한명 성자를 만나는 것은 그들이 보여준 고귀한 삶에 대한 경외의 표시다. 그곳에는 살아생전 마더 테레사와 마찬가지로 흰색 사리를 걸치고 맨손으로 병들고 가난한 이들을 돌보는 수많은 마더테레사가 여전히 있었다. 그들의 보살핌을 받고 있는 이들에게 불교, 가톨릭, 힌두교, 이슬람교라는 종교의 이름은 그저 거추장스런 수식어일지 모른다. 그들은 각자의 신과 구원자 또는 성자를 향해 마지막 삶의 안식과 죽음 이후의 구원, 다음 생의 복락을 구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들의 손을 잡고 있는 이는 이 혼란스럽고 고된 현실 속에 함께 숨 쉬고 있는 인간이다.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 또한 따뜻한 인간의 손이다. 붓다의 손도 그와 같이 따뜻했을 것이다.


“나는 모든 속박으로부터 자유자재한 제자들이 마치 숲 속의 꽃처럼 시들어 가기를 바라지 않는다. 세상 사람들은 그들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그들은 나머지 생을 인간 사회에 대한 봉사에 바쳐야 한다.”(데이비드 깔루빠나의 저서 ‘혁명가 붓다’ 중에서)


철저한 금욕주의를 내세우며 수행자들을 속세로부터 떨어진 곳에 머물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데와닷다에게 붓다는 이처럼 말했다. ‘수행의 목표는 하나지만 그곳에 이르는 길은 여러 갈래’라는 붓다의 가르침이 떠오른 것은 그 수많은 마더테레사들의 거친 손마디 위에서였다. 이번 순례기간 동안 저와 같은 손을 많이 만나기를 발원한다.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의 삶을 향해 기꺼이 내밀었던 인간 붓다의 따듯한 손이 천수(千手)가 되어 이 땅위에 살아있음을 확인하고 싶다.


콜카타에서의 짧은 적응기를 뒤로하고 밤기차를 타기 위해 하우라역으로 향한다. 인도의 밤기차는 가장 편리한 이동 수단인 동시에 가장 힘든 선택이다. 도로사정이 좋지 않은 인도에서 기차는 비행기를 제외하고는 장거리 이동을 위한 최상의 선택임이 분명하다. 출발지연과 연착이 다반사지만 그래도 도착 시간을 예측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안심이 된다. 우리나라의 기차와는 달리 침대칸이 많은 것도 장거리 여행자에게는 반가운 일이다. 이런 장점 덕에 침대칸을 구하고자 한다면 수개월 전 예약은 필수다. 비교적 안락한, 그만큼 가격이 비싼 1등 침대칸이 아니라면 2,3등 침대칸이 가장 경제적이다. 2층, 혹은 3층짜리 침상이 한 칸에 4개나 6개씩 설치돼 있다. 낯모르는 사람과 위아래로, 혹은 얼굴을 맞대고 하룻밤을 보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반듯하게 누운 채 위층의 침상 바닥을 손으로 만질 수 있는 3층짜리 침대칸에서라면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허리 펴고 앉아 가기를 깨끗이 포기해야 한다.


대학생 시절, 인도 배낭여행을 하며 2,3일에 한 번 꼴로 애용하던 기차 침대칸이라 하우라역으로 가는 내내 걱정보다는 추억이 앞장을 선다. 역 건물 전체를 화려한 등불로 장식해 마치 놀이동산의 마법성처럼 보인다는 것을 제외하고 하우라역의 풍경은 20여년 전과 조금도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언제 떠날지 모르는 기차를 기다리다 지쳐 바닥에 누워 잠든 사람들. 아예 느긋하게 자리를 펴고 늦은 저녁식사를 하는 가족. 그 사이로 승객들의 짐을 가득 실은 손수레는 앞이 보이지 않을 듯해도 용케 피해 다닌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뒤 섞여 발 딛을 틈조차 없을 듯한 혼란 그 자체가 하우라역이다. 기차 탑승 시간에 맞춰 플랫폼에 들어서기 위해 70여 명에 달하는 우리 일행은 일사 분란하게 움직였다. “바람도 지나가지 못하도록”을 ‘돌격 신호’ 삼아 앞사람의 등에 바짝 붙어 한 줄로 서서 재빠르게 대합실을 뚫고 나갔다. 마치 침투작전이라도 벌이듯. 그런 단결력과 집중력 덕분에 한 사람의 낙오자도 없이 기차에 올랐다. 물론 이런 놀라운 성과보다 더욱 놀라운 것은 기차가 예정된 시간에 도착하고 출발했다는 점이다. 좋은 징조다. 이 같은 행운이 계속되길 바라며 칠흑같은 어둠 속을 내쳐 달리는 기차에서 몸을 누인다.


밤새 달려 늦은 아침 바라나시에 도착했다.


‘…강을 건너 옷감과 향료의 도시, 고색이 창연한 바라문들의 도시. 바라나 강과 아시강이 에워싼 바라나시로 들어섰다. 제자를 찾는 고단하고 먼 길이었다.…’ (‘부처님의 생애’ 중에서)


제자를 찾아 먼 길을 걸어오셨을 붓다 석가모니. 그로부터 2600여 년이 훌쩍 넘은 뒤 70여 명 제자들이 스승을 찾아 바라나시에 왔다. 850km가 넘는 먼 길을 기차에 의지해 하룻밤 사이에 훌쩍 달려 왔다. 깨달음을 이룬 후 보드가야에서 바라나시까지 몇날 며칠을 걸어 오신 붓다의 대장정과는 감히 비교할 바 못되지만 바라나시가 고색창연한 도시인 것만은 그때와 다를 바 없다. 화려한 색채와 혼란스러운 향이 뒤섞여 그대로 도시가 되어버린 듯한 바라나시, 거대한 인도를 하나로 응축해 놓은 가장 인도다운 도시에서 본격적인 순례의 길을 시작한다. 

 

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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