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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무아·윤회 논쟁 [끝]

무아 실현은 윤회 없는 상태

무아·윤회 모순 주장은 잘못

‘나’ 고집 않으면 윤회도 없어

 

무아란 무엇이고 윤회란 무엇인가. 무아란 ‘나’에 대한 부정을 의미하고 윤회란 그러한 ‘내’가 지속됨을 의미한다. 따라서 서로는 모순적이라고 할 수 있다. 많은 학자들이 이러한 모순에 당혹감을 느끼는 듯하다. 만일 ‘내’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윤회가 가능하겠는가. 이러한 당혹감은 초기불교의 가르침에 중대한 모순이 내포된 것이 아닌가 하는 조바심으로 연결되는 듯하다. 사실 ‘무아·윤회 논쟁’은 한국 불교학계를 뜨겁게 달구었던 쟁점의 하나이다. 많은 학자들이 이러한 모순을 해결하고자 나름의 논지를 펼쳤다.

 

붓다는 오온(五蘊)으로 드러나는 ‘나’를 인정하지 않았다. 물질현상(色)이든 느낌(受)이든 경험세계의 모든 것은 ‘나’의 바람이나 소망과 상관없이 발생했다가 사라진다. 오온의 일어남과 사라짐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도무지 없다. 요컨대 오온이란 ‘나의 것’도 아니고 ‘나’도 아니며 ‘나의 자아’도 아니다. 그렇다고 오온 밖의 또 다른 ‘나’를 설정할 수도 없다. 설령 그러한 ‘나’가 있다손 치더라도 그것은 지음(行)이나 의식(識) 따위의 오온이 빚어낸 허상에 불과하다. 따라서 오온과 별개인 ‘나’를 내세우는 것도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러한 이유에서 무아이다.

 

윤회(輪廻)란 삶과 죽음이 반복되는 괴로움의 현실을 표현하는 용어이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괴로움의 지속됨을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를 일컬어 윤회라고 한다. 이것은 무아를 망각한 상태로 바꾸어 말할 수 있다. 거짓된 ‘나’를 내려놓지 못한 까닭에 초래되는 바람직하지 못한 상황의 연속이 곧 윤회이다. 초기불교의 궁극 목적인 열반 혹은 해탈이란 바로 이 윤회로부터 벗어난 경지에 다름이 아니다. 무아와 윤회의 가르침은 거짓된 ‘나’에 붙잡힌 상태로부터 벗어나라는 메시지로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면 윤회란 무아에 의해 극복되어야 할 대상이 된다. 즉 무아와 윤회는 본래부터 모순적이다. 무아의 실현은 곧 윤회가 없는 상태이다. 혹은 반대로 윤회에 매여 있다는 것은 무아를 모른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무아와 윤회가 모순된다고 해서 당혹감을 느껴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 만약 이들의 관계에 당혹감을 느꼈다면 그것은 곧 이상과 같은 교리적 맥락을 놓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를 고집하지 않는다면 윤회란 없다. 바로 이러한 경지야말로 초기불교에서 지향했던 이상향이다.

 

후대의 아비담마불교(Abhidhamma)는 윤회의 양상에 대해 상세하게 분석한다. 그들은 극복해야 할 타깃을 명확히 하려는 취지에서 그러한 작업을 행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아비담마의 정교한 윤회 해석은 윤회 자체를 옹호하려는 취지로 오인되는 듯하다. 그 결과 아비담마적 분석을 통해 무아와 윤회를 짜깁기하려는 시도들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연기설(緣起說)을 바탕으로 무아와 윤회를 회통시키려는 견해들이 그러하다. ‘무아·윤회 논쟁’의 배경에는 이와 같은 억지스러운 입장들이 자리하고 있다.

 

‘무아·윤회 논쟁’의 파장은 적지 않다. 그럼에도 이 논쟁 자체에 내포된 문제점에 대한 지적은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필자는 초기불교의 가르침에 충실했더라면 이러한 수고로움이 애초에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임승택 교수

‘초기불교 순례’라는 본 연재를 마치는 시점에서, 필자는 초기불교에 대해서는 초기불교 자체의 논리에 충실하자는 제안을 하고 싶다. 그렇게 할 때 붓다의 가르침이 오해의 소지 없이 온전하게 그 의미를 드러내리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본 연재를 집필하는 내내 견지하였던 필자의 기본 입장이다.


임승택 경북대 철학과 교수 sati@k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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