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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간병비 홀로 감당해야 했던 선생님

기자명 능행 스님

어머니 긴 투병 생활에
간병비·치료비 이중고
국가차원의 지원 절실

 

얼어붙은 땅은 문을 닫고 차가운 바람은 대지를 가른다. 겨울이다. 모든 것이 움츠려든 듯 보이지만 저 대지 아래에는 이 순간에도 생명이 꿈틀거린다. 땅 위에서, 땅 아래서 펼쳐지는 모든 것들은 내 삶이 존재하는 동안 언제나 경이로움으로 다가올 것이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세상에서 내 존재가 사라져버리는 죽음에 대해 진심으로 생각하는 삶이 아니었기에 그것에 대한 반항과 거부와 공포와 두려움과 불안이 극대화되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본다.


TV에서 난치성 불치병 환자들에 대한 대통령 당선자의 공약을 접했다. 장기 질환자의 간병비에 대한 지원을 요청했고 당시 대통령 후보는 보호자들의 삶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는 간병비 문제를 잘 살펴보겠다고 했다. 나는 요 몇 년, 가파르게 오른 간병비로 인한 고통과 어려움이 가정파괴로 이어지는 지옥 같은 현실을 목도해왔다. 복지예산 사각지대의 어두운 그림자는 깊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새롭게 들어설 정부의 현명한 판단과 결단을 기대해본다.


몇 해 전, 12월의 어느 날 여리고 가냘픈 25세 여성이 정토마을을 찾아왔다. 춥고 외롭고 지쳐보였으며 무너질 듯 비틀거렸다. 어떤 일로 방문했는지를 묻는 내 질문에 주먹만큼 커다란 눈에서 눈물을 뚝뚝 떨굴 뿐, 대답을 하지 못했다. 오들오들 떨고 있는 손을 잡고 한참을 기다렸다.


“엄마를 맡아주세요, 엄마를….”


맞잡은 손을 놓지 않고 간신히 말을 이어갔지만 이내 무너지고 말았다. 어머니는 4년 전, 신장투석으로 긴 투병생활을 시작했다. 아버지는 곧 과로로 세상을 등지고 남동생은 대학에 입학했지만 학비를 감당할 수 없어 입대했다고 했다. 자신은 초등학교 교사인데 어머니가 사업을 하다 병에 걸리고 아버지가 사망해버린 관계로 살던 집도 경매로 넘어가고 월급도 차압당하고 있는 형편이라고 했다. 어머니의 간병비, 진료비를 감당할 수 없고 설령 퇴원을 해도 갈 곳이 없다고 했다. 아버지가 떠나고 어머니와 어린동생을 홀로 감당해야 했을 2년간의 절박한 상황과 그가 겪었을 고통이 가슴을 저미게 했다. 선생님으로 학교에 돌아가 마음 편히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어머니를 정토마을에 모셔왔다. 대학병원에서 2일에 한 번씩 신장투석을 위해 방문했으며 정토마을 후원가족들은 어머니를 위해 병원비를 모금했다. 하지만 힘든 상황이 많았다. 욕창과 신장투석 부작용으로 온몸에서 나는 악취, 그리고 부종으로 무거워진 몸을 일으키고 눕히는 일에는 많은 인력이 필요했다. 그럼에도 정토마을 봉사자들의 헌신적 돌봄은 투병생활에 힘이 되어줬다. 그리고 경제적·정신적 돌봄은 가족들 삶의 기반을 다지는데 큰 도움이 됐다. 동생이 제대하면 함께 살며 부채에 시달리지 않을 방법을 모색하면서 그들의 희망적 미래를 만들기 위해 정토마을 가족들은 마음을 모았다.


여선생님은 어머니를 정토마을에 맡긴 그날 이후 얼굴에 핏기가 돌았고 적은 양이지만 음식을 먹을 수도 있었다. 주말이면 꼭 어머니를 보러 왔던 선생님. 해맑은 웃음을 찾은 선생님은 아이들을 잘 가르치겠다는 의지도 되찾았다. 어머니는 그 후 안정적인 시간을 보내다 8개월 후 많은 빚을 자녀들 몫으로 남겨둔 채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세상에 남겨진 남매는 서로에게 힘이 되며 맨바닥에서 꿈의 씨앗을 키워나갈 내일을 꿈꿨다.


나는 지난 10년 동안 난치성 불치병 환자들과 그 가족들을 위한 자재병원 건립에 모든 시간과 열정을 쏟아 부었다. 하지만 병원 부지를 마련하고 건립하는데 국가로부터 어떤 지원도 받을 수 없었다. 그 사이 병원 개원을 기다리다 지쳐서 떠나가시는 분들은 수없이 많았다.

 

▲능행 스님

하지만 정토마을 운영진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병원완공을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다. 어제 밤에는 은사스님과 밤이 깊도록 개원까지 필요한 모금액에 대한 걱정을 했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복지기금이 그것을 간절히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쓰여 질 수 있도록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대통령에게 청해본다. 우리 같은 사람들에 국가의 관심과 지지가 있으면 얼마나 큰 힘이 될런지….


능행 스님  정토마을 이사장 jungtoh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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