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성도지 보드가야 마하보디사원
3. 성도지 보드가야 마하보디사원
  • 남수연 기자
  • 승인 2013.01.21 17: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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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뚝 솟은 탑은 깨달음의 약속
수행자들 묵묵한 숨소리 가득

네란자라 강 보이는 작은 언덕
성도 후 49일 머물며 전법 준비


야쇼카왕 보리수 앞에 사원 조성
전 세계 불자들 발길 끊이지 않아
신라 혜초 스님도 환희의 시 남겨

 

 

▲석가모니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이루신 보드가야 우루벨라의 작은 언덕은 지금 전 세계 불자들의 추앙을 받는 최고의 성지 ‘마하보디사원’이 되었다. 기원전 3세기 야쇼카왕은 이곳에 대탑과 사원을 지었다.

 

 

새벽부터 서둘렀지만 해가 중천을 지나고서야 보드가야에 도착했다. 바라나시에서 보드가야까지 동쪽으로 243km. 우리나라에서야 버스로 3시간 남짓에 불과한 거리지만 꼬박 5시간이 걸렸다. 고르지 못한 도로와 턱없이 부족한 휴게소, 성지순례의 만만치 않은 여정을 예고해준다.


이 길은 보드가야의 작은 마을 우루벨라에서 깨달음을 이루신 석가모니부처님께서 법을 펴기 위해 바라나시의 사르나트를 향해 걸어가셨던 길이다. 붓다가 이 길을 걷지 않았다면 위대한 전법의 순간 또한 열리지 않았을 것이다. 뜻 깊은 역사의 한 자락과 동행하는 길, 약간의 불편함에 쉽게 흐트러지려는 마음을 바로 잡는다.


보드가야는 성도의 땅이다. 위없는 깨달음을 이룬 곳, 붓다 석가모니의 첫 일성이 울려 퍼진 곳이다. 어쩌면 인도 불교 성지순례에서 가장 뜻 깊고 중요한 장소인지도 모른다. 그 역사적인 순간을 기념하기 위해 기원전 3세기 아쇼카왕은 붓다가 깨달음을 이룬 보리수 앞에 대탑을 세우고 사원을 지었다. 그곳이 지금의 마하보디사원이다. 보드가야에 들어서자 아쇼카왕이 세웠다는 52m 대탑의 꼭대기가 멀리서도 보인다.


생사의 문을 넘나드는 극한 고행이 참된 깨달음의 길이 아님을 느낀 싯다르타는 우유죽으로 기운을 회복하고 네란자라 강이 내려다보이는 작은 언덕 위, 커다란 보리수 그늘 아래 앉았다.


‘어느 세상에서도 얻기 어려운 저 깨달음에 이르기까지, 이 자리에서 죽어도 결코 일어서지 않으리.’


그리고 어느덧 새벽, 동녘하늘에서 태양이 솟아오를 때 위없는 깨달음을 이루었다.


“번뇌는 모두 사라졌다. 번뇌의 흐름도 사라졌다. 더 이상 태어나는 길을 따르지 않나니 이것을 고뇌의 최후라 하노라.”


석가모니부처님의 선언이 세상에 울려 퍼졌다. 바로 여기 마하보디사원으로부터. 대지와 강물은 기쁨으로 요동쳤고 구름처럼 모여든 천인들이 뿌린 꽃잎이 흩날려 무릎까지 쌓였다. 그날은 싯다르타가 룸비니 동산에서 태어난 지 35년, 왕의 자리를 버리고 진리의 길을 찾아 나선지 6년이 되던 기원전 589년 12월8일이었다. 그로부터 칠일 동안 붓다는 보리수 아래에서 해탈의 즐거움을 누리셨다. 바로 여기 마하보디사원에서.


석가모니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이루신 이후로 마하보디사원은 전 세계 모든 불자들에게 최고의 불교성지로 추앙받았다. 아쇼카왕은 이곳에 사원을 세웠고 불자들의 순례와 경배가 끊이지 않았다. 사원과 대탑은 세월에 따라 보수를 거쳤고 현재의 사원은 11세기와 19세기 후반에 각각 복원되었다. 하지만 사원 주변에는 기원전 2세기 것으로 추정되는 난간 등 오랜 역사를 가늠할 수 있는 유적들이 여전히 산재해 있다.

 

 

▲마하보디사원 곳곳엔 나름의 수행에 전념하고 있는 수행자들이 가득하다. 이 스님은 독경 삼매다.

 


탑에 예배하고 사원안의 불상에 경배하는 모습도 2000여 년 전과 크게 다를 바 없으리라. 대탑 주변으로는 각기 다른 나라에서 모여든 각기 다른 민족과 인종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깨달음을 이룬 붓다의 길을 뒤 따르고 있다.

 

온 몸을 땅에 던지며 오체투지를 하는가 하면 뙤약볕 아래서 수없이 경을 읽는 이도 있다. 어떤 이들은 사원 한편에 모여 앉아 스님의 법문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무성한 나무그늘 아래서 명상에 든 이도 있고, 붓다의 발걸음을 따라 피어올랐다는 연꽃 좌대에 꽃을 바치는 이들도 있다. 각각의 모습이 다르고 그들의 행위 또한 다르지만 그 모든 손짓, 몸짓 하나하나는 깨달음의 길을 뒤따라가는 묵묵한 제자들의 걸음이다. 저 가운데서 누군가는 또 다시 위없는 깨달음을 이룰지도 모른다. 우뚝 솟아 있는 화려한 대탑은 위대한 스승에 대한 경외인 동시에 불성을 지닌 모든 이들을 향한 성도의 증거이자 약속이다. 보리수 앞에 앉아있는 그 짧은 시간, 2500여 년 전의 시간이 마치 어제처럼 느껴진다. 붓다의 숨소리는 지금도 이곳에 흐르고 있음이다.


사원 곳곳은 온통 붓다의 발자취다. 성도 후 49일간 석가모니부처님께서는 이 언덕 위에 머무시며 법열을 누리셨다. 하지만 조금만 되짚어보면 그 49일은 숨 막힐 듯 치열하고 긴박했던 순간들이었다. 부처님께서 12연기를 관찰하며 법열을 누리신 첫 칠일이 지나고 아자빨라 나무 아래로 자리를 옮긴 두 번째 칠일, 한 브라흐만이 찾아와 ‘브라흐만의 특징’을 물었다. 부처님은 ‘출생에 의해서가 아니라 행위에 위해 그 신분이 결정된다’고 단언하셨다.

 

사성계급이 뚜렷한 인도에서 이는 혁명과도 다름없는 위대한 선언이었다. 거만한 브라흐만은 코웃음을 쳤지만 그는 부처님의 이 선언이 지닌 엄청난 속뜻을 눈치조차 채지 못할 턱없이 작은 그릇이었음이다. 네 번째 칠일엔 부처님의 성도를 방해하던 마라가 다시 찾아와 “반열반에 드시라”며 부처님을 꼬드겼다. 하지만 부처님은 “일체 중생이 아직 나의 법 가운데서 이익을 얻지 못했다”며 마라의 잔꾀를 단번에 물리치셨다. 그러는 사이 이 작은 언덕에 때 아닌 폭우가 몰려왔고 무짤린다용왕이 온몸을 펼쳐 부처님의 법신을 보호했다. 여섯 번째 칠일엔 두 상인이 성도 후 처음으로 부처님께 공양을 올렸고 마침내 일곱 번째 칠일, 부처님께서는 ‘지혜의 빛을 세상에 비추시라’는 범천과 제석천의 청을 받아들이셨다. 전법의 결심이 잉태되기까지 그 긴박했던 49일이 바로 이곳에서 펼쳐졌다.


지금도 마하보디사원에는 부처님의 발자취를 기리는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있다. 2500여 년 전의 장소와 정확히 일치할까, 순간 의구심이 들지만 그저 어리석은 잡념일 뿐이다. “모습이나 형상으로 여래를 보려한다면 결코 여래를 보지 못하리라.” 부처님의 가르침이 가슴을 때린다.


마하보디사원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다. 덕분에 경내는 잘 정비돼 있지만 사원 밖은 그야말로 치열한 삶의 현장이다. 끊이지 않는 순례객의 발길을 따라 생업을 건 사람들이 모여든다. 온갖 기념품과 불교용품들이 한 데 섞여 거래되고, 기름진 음식 냄새가 출출한 이들의 발목을 잡는다. 손님을 부르는 호객꾼과 구걸 하는 가난한 이들의 손짓이 쉼 없이 앞을 가로막는다.


대탑 너머로 뉘엿뉘엿 해가 넘어갈 즈음 마지막으로 대탑 앞에 섰다. 문득 신라의 구법승 혜초 스님의 시가 떠오른다. 뱃길을 따라 인도에 도착한 혜초 스님은 바라나시를 거쳐 이곳 마하보디사원 대탑 앞에 섰다. 멀고도 먼 순례의 길을 앞두고 있던 혜초 스님은 대탑을 친견하는 순간 모든 근심을 놓고 기쁨의 시를 읊었다.


‘보리대탑 멀다지만 걱정 않고 왔으니, 녹야원의 길인들 어찌 멀다 하리오. 길이 가파르고 험한 것은 근심 되지만 개의치 않고 업풍에 날리리라. 여덟 탑(8대 성지)을 보기란 실로 어려운 일, 세월에 타서 본래 그대로는 아니지만 어찌 이리 사람 소원 이루어졌는가. 오늘 아침 내 눈으로 보고 말았네.’


우리 앞에 펼쳐진 순례의 길 또한 가파르고 험하겠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성지순례란 평생에 만나기 힘든 귀한 인연이다. 혜초 스님의 그 환희 가득한 마음이 물길처럼 가슴 속에 스며든다.

 

 

▲스리랑카에서 찾아온 성지순례객들이 18연꽃 좌대를 꽃으로 장식하고 있다.

 


마하보디사원을 나와 네란자라 강을 건넌다. 우기에는 제법 강물이 불어난다지만 지금은 건기의 한 복판. 강은 말라 들어가 겨우 발목을 적실 정도의 얕은 물줄기 몇 개만 남아있다. 수행자 싯다르타가 고행으로 쇠약해진 몸을 네란자라 강물에 씻으며 ‘힘없는 바리때처럼 강물에 휩쓸려가지 않으리라’고 성도의 결심을 세운 그 때도 이와 같았을 것이다. 별다를 것 없어 보이는 강가의 풍경이 새삼스럽다. 그 한가한 모습을 차창 너머로 카메라에 담아본다.


강을 건너면 길은 곧장 수자타마을과 연결된다. 목신을 섬기던 장자의 딸 수자타가 보리수 아래서 명상에 든 싯다르타를 목신으로 착각해 공양을 올렸다고도 하고, 고행을 버리기로 결심한 싯다르타가 탁발에 나섰을 때 수자타의 집에서 우유죽을 공양 받았다고도 한다. 어느 쪽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수자타의 우유죽 공양 인연으로 지금까지도 수자타마을은 보드가야의 대표적 유적지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하지만 정작 집터엔 복발 형태의 벽돌무더기만 덩그러니 놓여있다. 쓸쓸한 풍경에 저무는 해까지 더해져 긴 그림자를 만든다. 언제 모여 들었는지 초롱한 눈망울의 아이들만 그 뒤를 졸졸 따른다. 성도의 땅에 또 하루가 저물고 있다.


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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