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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든 육신에도 청아함 간직했던 수행자

기자명 법보신문

병원건립 당부하며 떠난 스님

폐암 걸려 치료 포기하고

움막서 홀로 죽음 기다려

전 재산 300만원 보시

 

“늙은 산승입니다. 정토마을 스님 맞습니까?”

 

전화벨이 울렸다. 지리산 골짜기 어드메의 토굴이라 했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가 심상치 않다. 윤기 없이 갈라진 목소리에는 폐에서부터 올라오는 병의 기운이 완연했다.

 

“내가 스님을 만나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제가 가지는 못하겠네요. 혹시 지리산에 오실 일 없나요?”

 

죽음 앞에 선 생명의 가냘픈 떨림이 느껴졌다. 사람의 한평생이라는 것이 오직 허무할 뿐이지만 죽음이라는 생소한 경험을 앞두고는 누구나 마찬가지일 수밖에 없다. 당장 기차를 타고 구례로 향했다. 묻고 물어 차마 토굴이라고도 할 수 없는 지리산 움막에 다다랐다. 사람의 흔적은 찾을 수가 없었다. 먼지와 적막만이 가득한 그곳에 스님은 홀로 누워있었다. 매우 습했다. 스님이 깔고 누운 이불은 물이라도 나올 듯 눅눅했고 곰팡이 냄새는 코를 찔렀다. 이불 밑에 손을 넣었더니 이불이 바닥에 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스님은 2년째 투병 중이었다.

 

“내 언젠가 스님 이야기를 들었어요. 아픈 사람 거둬주고 죽으면 송장도 치워준다고 해서. 내가 나중에 쓸 일이 있을 것 같아 전화번호를 알아놨지요.”

 

스님은 간신히 몸을 일으켜 베고 있던 베개의 지퍼를 열었다. 그리고 검게 곰팡이 스며든 만원짜리 300장을 꺼냈다. 내가 병원을 짓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셨나보다. 평생 살고 남은 돈인데 얼마 못 살 것 같으니 병원불사에 보태라며 건네주셨다. 미칠 만큼 고통스럽고 슬펐다.

 

“나 떠나고 나면 누가 돈 한 푼도 없이 죽었다고 욕할까봐 안 쓰고 모아놨어요. 가져가셔서 병원 짓는데 쓰세요. 병원, 꼭 지어야 합니다. 그리고 부탁이 있어요. 가끔 전화 한통 해주세요. 안 받으면 나 죽은 줄 알고…. 병드니까 외로워요. 사람이 그립네요.”

 

병원에 가자고 했지만 고개를 흔드신다. 의사가 폐암인데 너무 늦었다며 그저 잘 쉬라고 했단다. 정토마을로 데려가려 했지만 그마저도 염치없다는 이유로 거절하셨다.

 

“그냥 여기서 죽을라고….”

 

“스님, 이 돈으로 병원 못 짓겠어요. 스님 다 쓰고 가셔야죠. 전 못해요.”

 

간곡히 애원했지만 소용없었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방 한편에는 사진 몇 개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영정사진으로 쓸 만한 것을 골랐다. 마음이 급했다. 스님을 설득해야 했다. 일단 더 아프면 정토마을에 오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그리고 돈은 스님 떠나면 내가 알아서 쓰겠다고 약속드렸다.

 

구례 시내로 나가 이불과 음식, 약, 휴지 등을 샀다. 목욕도 시키고 면도, 삭발을 해드리니 눈부실 만큼 청아한 수행자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났다. 순수함과 고결함. 산골짜기 깊은 곳, 병든 육신에 깃든 진리의 영혼을 만났다. 행복했다. 나만 느낄 수 있는 행복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스님에게 매일 연락을 드렸다. 힘겹지만 반가워하시는 목소리가 들리면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스님께서 전화를 받지 않았다. 달려가니 반듯하게 누운 육신은 이미 차갑게 식어 있었다.

 

바로 어제 밤 통화를 했었는데…. 한지에 곱게 말아 넣은 만원짜리 300장은 머리맡에 놓여있었다. 구급차로 스님을 장례식장에 모시고 3일장을 치렀다. 스님의 움막처럼 텅 빈 그곳에서 사흘을 꼬박 앉아 있었다. 뼛가루는 생전에 공부하시던 산천 솔밭 아래 뿌려드렸다. 바위에 앉아 하늘을 보니 뭉게구름이 둥실둥실 흘러가고 있었다.

 

나는 스님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볼을 타고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죄송하고, 그립고, 처연했다.

 

“스님, 해보겠습니다. 반드시 병원을 지어드릴게요. 끝까지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도와주세요.”

 

▲능행 스님

텅 빈 움막에는 치울 것 하나 없었다. 욕망이 물질을 낳는 어지러운 시대에 스님은 그렇게 맑디맑은 이슬이 되어 가셨다. 지금도 자재병원 불사가 마음처럼 진행되지 않을 때 스님의 말씀을 떠올려본다. 담쟁이 잎이 결코 절망의 벽을 뛰어넘으려 하지 않고 천천히 기어 올라가는 것처럼, 나는 스님의 손을 잡고, 수많은 사람들의 손을 잡고 묵묵히 걸어갈 것이다. 오늘 아침, 스님의 얼굴이 무척이나 그립다. 부디 맑은 연꽃으로 다시 오시어 큰 스승 되어주소서. 나무아미타불.


능행 스님 정토마을 이사장 jungtoh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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