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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 가죽을 쓰고 왜 여우의 울음을 흉내 내고 있는가”

경계 따라 취사선택 하고

그로써 갖가지 번뇌 일어

망상만 일으키지 않으면

만법에 허물이 없게되니

부처·중생 구분 없어져

 

임제스님 대중에게 설한

“오무간업 지어라” 뜻은

애착·분별 끊으라는 것

 

 

▲달마와 혜가 스님으로부터 이어진 법을 전해 받은 삼조 승찬 스님이 수행한 삼조선사. 승찬 스님은 ‘신심명’을 저술했다.

 

 

問, 大通智勝佛이 十劫을 坐道場호되 佛法이 不現前이라 不得成佛道라하니 未審此意如何하노이까 乞師指示하소서 師云, 大通者는 是自己於處處에 達其萬法無性無相을 名爲大通이요 智勝者는 於一切處에 不疑하야 不得一法을 名爲智勝이요 佛者는 心淸淨光明이 透徹法界를 得名爲佛이요 十劫坐道場者는 十波羅蜜이 是요 佛法이 不現前者는 佛本不生이며 法本不滅이라 云何更有現前이리요 不得成佛道者는 佛不應更作佛이니 古人이 云, 佛常在世間호대 而不染世間法이라하니라

 

해석) 물었다. “대통지승 부처님은 십겁 동안 도량에 앉아 계셨지만 불법이 눈앞에 나타나지도 않았고 불도를 이루지 못했다고 하는데 그 뜻이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스님께서 가르쳐주십시오.” 임제 스님이 말했다. “대통이라는 것은 바로 자기자신이 어디에서나 만법이 성품과 모양이 없다는 진리를 통달하는 것을 대통이라 한다. 지승이라는 것은 어디에 있더라도 의혹이 없어 어느 한 가지 법에도 매달리지 않는 것을 지승이라 한다. 불이란 마음이 청정하여 광명이 온 법계를 꿰뚫어 비추는 것을 불이라 한다. 십 겁 동안 도량에 앉아있었다고 하는 것은 십바라밀을 닦았다는 것이다. 불법이 눈앞에 드러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은 부처란 본래 생겨나는 것이 아니고 법이란 본래 없어지는 것이 아닌데 무엇이 다시 나타났다고 하겠는가? 불도를 이루지 못했다고 하는 것은 부처가 새삼스레 다시 부처가 되는 일이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옛사람이 말하기를 ‘부처님은 항상 세간에 계시면서도 세간의 법에 물들지 않는다’고 하신 것이다.”

 

강의) 대통지승 부처님은 ‘법화경’에 나오는 부처님입니다. 일체의 모든 것은 인연에 따라 조합된 것으로 불변의 성품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고정된 모습도 없습니다. 그래서 모든 법이 공(空)한 것입니다. 대통지승 부처님은 만법에 성품과 모양이 없음을 통달하여 어디에도 매달리지 않는 부처님입니다. 그런데 왜 불도를 이루지 못했다고 하는 것일까요. 임제 스님의 대답은 이렇습니다.

 

부처님은 부처님이 되기 전에도 이미 부처님이었습니다. 앞서 중생과 부처는 얼음과 물이 형태는 다르지만 본질은 같다고 했습니다. 중생이 부처님을 알았다고 해서, 즉 얼음이 본래 물이었다는 사실을 인지했다고해서 얼음이 물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알든 모르든 얼음의 본질은 물입니다. 불도를 이뤘지만 불도를 이뤘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은 이런 의미입니다.

 

道流야 儞欲得作佛인댄 莫隨萬物하라 心生하면 種種法生하고 心滅하면 種種法滅이라 一心不生하면 萬法無咎니라 世與出世에 無佛無法하야 亦不現前하며 亦不曾失이니라 設有者라도 皆是名言章句라 接引小兒하는 施設藥病이요 表顯名句니 且名句不自名句라 還是儞目前昭昭靈靈하야 鑑覺聞知照燭底가 安一切名句니라

 

해석) “여러분! 그대들이 부처가 되고자 한다면 만물을 따라가지 말라. 그런 마음이 생겨나면 갖가지 법이 생겨나고 그런 마음이 없어지면 갖가지 법이 사라진다. 한 마음이 생겨나지 않으면 만법에 허물이 없게 된다. 세간이든 출세간이든 부처도 없고 법도 없다. 나타나는 일도 없으며 잃어버리는 일도 없다. 설사 부처와 법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모두가 이름과 말과 문장일 뿐이다. 어린아이들을 인도하기 위한 것이며 병에 따라 쓰이는 약에 불과하다. 표현하기 위한 이름과 문구일 뿐이다. 그런데 이름과 문구도 스스로 이름과 문구라고 하지 않는다. 그대들 눈앞에서 명확하고 분명하게 느끼고 듣고 알며 비춰보는 그 사람이 일체의 이름과 문구를 붙이는 것이다.”

 

강의) 깨닫고자 한다면 경계에 끌려가서는 안 됩니다. 경계를 따라 취사선택하는 마음이 일어나고 그럼으로써 갖가지 번뇌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공한 것을 알고 무심하게 마음을 쉬어 버리면 갖가지 법이 사라지게 됩니다. 쓸데없는 번뇌와 망상을 일으키지만 않는다면 만법에 허물이 없게 되고 부처도 중생도, 세간과 출세간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부처와 중생이 나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방편일 뿐입니다. 스스로가 부처임을 알게 하기 위해 말과 글과 다양한 방법들을 사용 할 뿐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어린아이를 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한 사탕과 같은 것이며 병에 따라 쓰는 약에 불과할 뿐입니다.

 

大德아 造五無間業하야사 方得解脫이니라 問, 如何是五無間業고 師云, 殺父 害母하며 出佛身血하며 破和合僧하며 焚燒經像等이 此是五無間業이니라 云, 如何是父오 師云, 無明이 是父니 儞一念心이 求起滅處不得하야 如響應空하야 隨處無事를 名爲殺父니라 云, 如何是母오 師云, 貪愛爲母니 儞一念心이 入欲界中하야 求其貪愛하나 唯見諸法空相하야 處處無著을 名爲害母니라 云, 如何是出佛身血고 師云, 儞向淸淨法界中하야 無一念心生解하고 便處處黑暗이 是出佛身血이니라 云, 如何是破和合僧고 師云, 儞一念心이 正達煩惱結使하야 如空無所依가 是破和合僧이니라 云, 如何是焚燒經像고 師云, 見因緣空心空法空하야 一念決定斷하야 逈然無事가 便是焚燒經像이니라

 

해석) “대덕 스님들이여! 지옥에 떨어질 다섯 가지 무간업을 지어야 바야흐로 해탈을 얻을 수 있다.” 물었다. “무엇이 오무간업입니까? 임제 스님이 말했다.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해치고 부처님의 몸에 피를 내고 승단의 화합을 깨뜨리고 경전과 불상을 불사르는 것을 다섯 가지 무간업이라고 하는 것이다.” “무엇이 아버지입니까?” 임제 스님이 대답했다. “무명이 곧 아버지다. 그대들의 한 생각 마음이 일어나고 사라졌다하는 곳을 찾아봐도 찾을 수 없어 마치 허공에 메아리가 울려 퍼지는 것처럼 어디를 가나 일이 없는 것을 아버지를 죽인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다시 물었다. “무엇이 어머니입니까?” 임제 스님이 말했다. “탐욕과 애착이 어머니다. 그대들의 한 생각 마음이 욕계에 들어가 그 탐내고 애착하는 것을 찾아보아도 모든 법이 공한 것임을 볼 뿐이다. 그래서 어디에도 집착함이 없는 것을 어머니를 해친 것이라고 한다.” 물었다. “무엇이 부처님의 몸에 피를 내는 것입니까?” 임제 스님이 대답했다. “그대들이 청정한 법계에서 한 생각 마음에 분별의 마음을 내지 않고 어디에서든 캄캄하고 어두운 것이 부처님의 몸에 피를 내는 것이니라.” 물었다. “무엇이 화합승단을 깨뜨리는 것입니까?” 임제 스님이 말했다. “그대들의 한 생각 마음이 번뇌와 번뇌로부터 일어나는 경계들을 바르게 통달하여 마치 허공처럼 의지하는 바가 없게 되는 것을 화합승단을 깨뜨린 것이라고 한다.” 물었다. “무엇이 경전과 불상을 불사르는 것입니까?” 임제 스님이 대답했다. “인연이 비어있고 마음이 비어 있고 법이 비어 있음을 보아서 한 생각에 완전히 끊어버려서 초연하여 다시는 일이 없는 것을 경전과 불상을 불사르는 것이라고 한다.”

 

강의) 오무간업(五無間業)은 오역죄(五逆罪)를 짓는 것을 말합니다. 오역죄는 아버지, 어머니를 죽이고, 부처님의 몸에 피를 내고 승단의 화합을 깨뜨리고 경전과 불상을 불사르고 파괴하는 것입니다. 이런 죄를 지으면 무간지옥에 떨어지게 됩니다. 무간지옥은 불교에서 말하는 8개의 지옥 중에서 고통이 가장 극심한 지옥으로 조금의 간극이나 틈이 없이 고통이 계속적으로 이어진다고 해서 무간(無間)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임제 스님은 이런 오역죄를 지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마 법문을 듣고 있던 스님들도 이 말에 깜짝 놀랐을 것입니다. 사실 임제 스님의 오무간업에 대한 해석은 전혀 다릅니다. 우리의 깨달음을 방해하는 요소 다섯 가지에 대한 타파를 오무간업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불교에서 생사윤회하는 근본원인을 무명(無明)에 두고 있습니다. 무명은 번뇌와 탐욕을 일으키는 어두운 마음입니다. 임제 스님은 아버지로부터 내가 비롯됐듯이, 우리의 번뇌와 탐욕이 일어나는 근원인 무명을 부수는 것을 아버지를 죽이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탐욕과 애착은 어머니로 표현했습니다. 어머니는 자식에게 무한한 사랑을 주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지나친 사랑은 애착과 탐욕을 불어옵니다. 탐욕과 애착은 번뇌와 고통을 일으킵니다. 따라서 이를 제거하는 것을 어머니를 해치는 것으로 표현했습니다.

 

결국 임제 스님께서 오무간업을 지으라고 한 것은 사람이든 법이든 인연에 따른 부산물이든, 일체가 공한 것을 보고 애착과 분별을 끊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오무간업을 짓는 것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大德아 若如是達得하면 免被他凡聖名礙니라 儞一念心이 祇向空拳指上生實解하며 根境法中에 虛捏怪하야 自輕而退屈言하되 我是凡夫요 他是聖人이라하니 禿屢生이여 有甚死急하야 披他師子皮하야 却作野干鳴고

 

해석) “대덕 스님들이여! 만약 이와 같이 통달한다면 범부다 성인이다 하는 이름에 구애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대들의 한 생각 마음이 빈주먹과 가리키는 손가락에 무언가 있다는 이해를 일으킨다. 육근과 육진의 법에서 공연히 허망한 것을 만들어 내어 괴이한 짓을 하면서 스스로를 가볍게 여기고 뒤로 물러서면서 ‘나는 범부이고 저분은 위대한 성인이시다’라고 한다. 이 머리 깎은 바보들이여! 무엇이 그리 다급하여 사자의 가죽을 쓰고 들 여우의 울음소리를 내고 있는가?”

 

강의) 경전이나 불상이나, 조사들의 가르침까지도 모두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입니다. 그러나 그 손가락이 달은 아닙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달을 보지 않고 손가락을 보고 이것이 진리라고 착각을 합니다. 빈주먹은 손가락과 마찬가지로 아이들에게 이 안에 사탕이 있다고 유혹해서 올바른 길로 이끌기 위한 방편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방편을 이해하지 못하고 빈주먹과 손가락에 무언가 있다는 허망한 생각을 일으킵니다. 그러면서 스스로를 낮추고 성인을 높이면서 스스로 넘을 수 없는 벽을 쌓아버립니다. 임제 스님은 이를 사자 가죽을 쓰고 여우 울음소리나 흉내 내고 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스스로가 부처인데 그것을 알지 못하고 끊임없이 헛된 우상을 만들어 스스로를 얽어매는 고질병에 대해 따끔한 경책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리=김형규 기자 kimh@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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