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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재병원 건립 함께 발원했던 그리운 도반

기자명 법보신문

완공 기다리다 눈감은 스님

오른쪽 전신 마비됐지만
천일기도하며 불사 도와
전시회 열어 모금활동도

 

언 땅이 녹아내리고 빈가지에 생명의 태동소리 들려오는 삼월, 나는 커다란 솥에 죽을 쑤고 있다. 멀리서 정토마을 소의경전인 법화경 기도소리가 들려온다. 어디로부터 흘러나오는지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눈물이 출렁이는 곳을 바라보니 그곳에는 나의 도반이 살고 있었다.


12년 전, 겨울눈이 펑펑 오던 날 동안거 중에 쓰러져 의식불명에 빠졌던 비구니스님. 불치의 질병을 진단받고 죽음을 준비하기위해 정토마을에 입원했다. 정토마을이 문을 열고 1년이 흘렀을 때였다. 의사는 살 수 없다는 진단을 내렸지만, 나는 그것과는 상관없이 코에 삽입된 호스로 날마다 죽을 넣어드렸다. 나는 고민했다. 오늘은 어떤 죽을 만들까. 그렇게 죽을 넣어드리고 일곱 번째 되는 날, 스님이 나와 눈을 맞추며 미소를 지었다. 기적이 일어났던 것이다.


스님은 눈을 뜬 이후로 조금씩 살아나기 시작했다. 죽을 정성스럽게 쑤어 코로 넣어 드렸고 스님의 몸과 의식은 조금씩 깨어나기 시작했다. 나는 2년을 꼬박 죽을 쑤었다. 2년이 지나고는 재활을 시작했다. 스님은 오른쪽 전신과 언어기능이 마비됐고 문자를 잊어버리는 후유증이 남았다. 재활기간 동안 왼손으로 공양하시고 잊어버린 문자를 다시 공부했다. 곧 작은 옷감은 손수 세탁도 하시고 목욕도 혼자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으며 걸음걸이도 가능한 상태가 됐다.


오늘, 죽을 쑤고 있는 나의 등 뒤편으로 자재병원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오늘은 자재병원의 원만한 완공을 위한 21일 동안 법화경 장자기도를 마치는 날이다. 2002년, 자재병원 불사를 함께 결정하고 천일기도결사와 모금과제를 처음으로 의논한 사람이 바로 성오 스님이었다. 2002년 어느 따뜻했던 봄날이었다. 우리는 함께 그네에 앉아있었다. 스님에게 물었다.


“스님. 우리 병원 지어볼까?”
“그래.”
“어떻게 지을까?”
“기도”


환한 웃음을 짓는 성오 스님 얼굴 위로 따사로운 봄볕이 쏟아졌다.


“아 그래, 기도하면 되겠네.”


늘 가슴속에 묻혀있던 병원불사가 이렇게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2002년 5월, 천일기도를 시작하며 스님과 나는 소임을 나눴다. 스님은 왼쪽 손으로 작은 목탁을 치며 법당 모서리에 몸을 의지한 채 천일기도를 맡았다. 나는 병원 부지 매입을 위한 탁발을 시작했다. 스님은 비록 몸은 마비되고 말은 더듬거렸지만 우리들의 서원이 우주에 가득 찰 만큼 절절한 기도를 해줬다. 정토마을 병실에 들어가 기도를 해주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 환자들에게 힘이 돼줬다. 늦은 밤, 내가 들어오는 소리를 듣고 나서야 방에 불을 끄시던 스님. 그리고 2년 전 봄날, 스님의 모습이 떠오른다.


“이제 남은 일은 혼자서 해. 나 이제 갈거야. 병원 기다리기 너무 힘들어.”


스님은 힘겹게 호흡하시면서도 환한 웃음 지어주셨다. 나는 그의 손을 차마 놓아줄 수가 없었다.


“가지마. 나 혼자선 못할 것 같아.”


“괜찮아. 할 수 있어….”


2달 후 스님은 세상을 떠났다. 지금 자재병원에 앉아 스님을 생각하니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린다. 스님의 죽음에 대한 애도의 마음을 가슴 한편에 묻어둔 채 살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병원완공을 함께하지 못한 아쉬움과 10년을 함께 살아주신 고마움이 스님에 대한 그리움 되어 눈물로 흐르고 있다.

 

성오 스님은 조그만 카메라에 사계절이 피워내는 꽃과 이슬을 담곤 했다. 자신의 삶에 생명을 불어넣으며 꽃같이 아름다운 삶을 노래했다. 성오 스님의 사진을 간직하고 있는 정토마을 자원봉사자 가족들은 아마도 이 글을 보며 스님을 기억할 것이다.

 

▲능행 스님

스님은 사진으로 앨범을 만들어 봉사자들에게 나눠줬으며 때로는 전시회를 열어 모금을 해주기도 했다. 치유될 수 없는 불치의 질병을 안고 병원불사를 도우며 사문으로서 최선의 삶을 살고 가신 도반을 나는 오늘 죽을 쑤면서 떨어지는 눈물로 만난다. 스님. 병원건립이 너무 늦어져서 미안해. 고마우이 내 도반.


능행 스님 정토마을 이사장 jungtoh7@hanmail.net

 


필자 사정에 의해 연재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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