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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염불, 한국화한 기도의 노래

기자명 법보신문

이 땅의 사상·종교는
우리말 리듬에 맞아야
염불은 불교의 토착화


서양 철학은 동양 철학보다 훨씬 더 구체적인 사유를 구사하는 것에서 뛰어남을 보인다. 인간을 해석하더라도 이 세상을 도외시하고 인간을 이해한다는 것이 불가능함을 서양 철학은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인간의 이해와 세상의 이해를 이원적으로 볼 수 없다. 나는 세상을 보는 한국 사람들의 눈이 옛날에 비해 아주 많이 달라졌으리라 본다. 지금은 우리가 서양 선진국들의 수준과 별로 다를 바 없기에 자격지심으로 열등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 내가 ‘국민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쌍쌍이 모여 앉은 한국의 노인네들이 일그러진 얼굴로 긴 장죽에 담배를 물고 있는 것을 카메라로 찍어대는 미군들을 보면서 어딘가 그 장면이 부끄럽게 여겨졌다. 남정네들이 지게에 무엇을 지고 가는 것을 보아도 역시 집안의 가난을 남에게 보이는 것처럼 부끄러웠다. 내가 대학공부를 위해 서울로 유학을 왔을 때에도 역전에 내리면 지게꾼들이 양지 바른 곳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그 때 지게꾼들이 먹는 점심식사의 도시락을 지나가며 본 적이 있었다. 하얀 쌀밥이었다. 내가 살았던 경상도 지방의 보통 사람들은 그때까지도 여전히 꽁보리밥을 먹고 있었다. 나는 ‘역시 서울의 지게꾼들이라도 경상도 사람들보다 생활이 더 낫구나’하고 여겼었다.


나는 다른 대학생들과 같이 ‘데모’에 끼면서 처음에는 민주화를 외쳤지만, 곧 그 타령을 하지 않게 됐다. 시급한 것은 가난에서 구조적으로 벗어나는 것이라 여겼다. 나는 경상도 시골 출신이라 그 시골의 구석구석에 찌든 가난을 익히 보았다. 경제학을 전공하지 않은 철학도여서 그 가난을 극복하는 길을 잘 알지는 못했지만, 우리나라의 일반적 지성인들조차 ‘남 따라 장가가는 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한다고 여겼다. 별로 긴급하지 않은 추상적 성격의 구호만을 주장하는 일을 나는 싫어했다. 그보다는 현실에서 진리를 구한다는 ‘실사구시(實事求是)’라는 실학사상의 한 구절을 아주 좋아 했다.


실학사상이 실질적이어서 좋았지만, 사상적 깊이가 부족해 내가 한평생 목숨을 걸고 공부하기엔 미흡했다. 그래서 나는 서양 철학의 길을 선택했다. 철학도로서 철학의 길을 걸어가지만, 우리나라를 구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한시라도 놓은 일이 없었다. 이런 길을 걸어가는데 은사였던 박종홍(朴鍾鴻) 교수님의 가르침을 잊을 수 없었다. 나는 그 누구보다도 박종홍 선생님의 가르침에 충실했다고 여긴다. 박종홍 교수님이나 나는 다 함께 대부분의 지식인들이 싫어하는 박정희 대통령을 따랐다. 한국지성인들의 풍토에서 대부분의 지성인들이 싫어하는 박정희 대통령을 추종한다는 것은 자살과 다를 바가 없었다.


나와 박종홍 교수님이 공통적으로 생각한 사상은 우리 모두를 구원할 사상이 실사구시의 정신에 따라 가난을 벗고 나라의 정신적 내용을 먼저 세우는 일이었다. 나라의 민주화는 구호로 해결되는 것이 절대로 아니고, 우리 각자가 다 개개인적으로 자유스럽게 생각하고 행동하면서 사회적으로 법률적으로 평등하게 권리와 의무를 이행하는 그런 구조에서 가능하리라 생각했다.


나는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우리 모두를 구원할 사상은 남이 갖다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창안한 것이어야 한다. 우리 스스로 창안한 사상은 먼저 이 땅에서 우리가 살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김형효 교수

이 땅에 살지 않고 추상적인 사상을 수입해서 이야기 해 보아야, 그것은 우리 것이 아니라, 남의 것을 유식한 채 떠들며 말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런 사상과 종교는 결국 우리 것이 못된다. 헛것으로 돌변하고 만다. 사상과 종교가 우리 것이 되기 위해서는 그것들이 우리 것으로 변환되어야 한다. 우리 것으로 변환되기 위해 사상과 종교가 우리말의 박자와 리듬에 적응되어야 한다. 즉 사상과 종교가 무의식적으로 우리말의 리듬에 옮겨져야 한다. 염불소리는 우리말의 리듬과 박자에 무의식적으로 알맞게 변용된 불교의 토착화라 할 수 있겠다.


김형효 서강대 석좌교수 kihyhy@nate.com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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