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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포항 대성사 소장 사명대사 원불

기자명 법보신문

조선 초기 조성된 국보급 유물…화마 피해 금강산서 옮겨져

2006년 조사 통해 진품 추정
15세기 명대불상 영향 받아
조선의 왕실불사와 깊은 연관
“미술사적으로 중요한 자료”

 

 

▲사명대사 원불 발원문에는 “석가여래부처님의 제자 사명 유정이 귀의합니다(釋迦如來遺敎弟子四溟沙門維政歸依)”라고 적혀있다.

 

 

2006년도 10월 말경 어느 스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포항 대성사란 절의 스님인데, 귀한 국보급 불상을 한 구 모시고 있으니 특별히 조사를 해주었으면 합니다.”
“네, 스님. 사찰은 포항 어디쯤 있습니까?”


“북부해수욕장 근처에 와서 전화해주세요.”


대성사에서 소장하고 있는 그 귀한 불상과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당시 나는 2002년부터 문화재청의 지원을 받아 재단법인 불교문화재연구소(당시 조계종 문화유산발굴조사단)에서 시행하고 있던 ‘전국 사찰문화재 일제조사’의 책임을 맡고 있었고, 마침 그 해는 대구·경주·포항 등 경상북도의 남부지역을 조사하고 있었다. 이 조사는 건국 이래 최초로 실시하는 전국 모든 종단 사찰에 대한 문화재 전수조사로서 현재도 12년째 진행 중이다.
대성사 스님과의 통화를 마치고 연구원들과 조사준비를 하며 자료를 찾아보았지만 사찰이나 그 불상에 대한 것은 쉽게 찾을 수 없었다. 사실 5년째 사찰문화재조사를 담당하며 유사한 내용의 전화를 받는 경우가 더러 있었지만 정말 국보급 불상을 조사할 기회를 갖기는 쉽지 않은 일이라 큰 기대를 갖지 않고 포항으로 향했다. 2006년 11월14일이었다.


대성사(大聖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1교구 불국사의 말사로서 포항시 북구 용흥동 연화산자락에 자리 잡고 있는 아담한 사찰이다. 주지실로 안내받은 우리 앞에 주지인 운붕 스님께서 내어 주신 불상은 10cm 미만의 작은 금동불이었다. 하지만 얼핏 보아도 범상한 불상은 아니었다. 게다가 불상과 함께 전해 내려왔다는 대나무제 후령통과 발원문인 원장(願狀)도 갖춰져 있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발원문의 내용이었다. 발원문은 “석가여래부처님의 제자 사명 유정이 귀의합니다(釋迦如來遺敎弟子四溟沙門維政歸依)”라는 문장으로 시작하여, 만력갑신년 12월16일 제자유정원장(萬曆甲申12月16日弟子維政願狀)으로 끝나고 있다. 스님의 말씀대로 발원문과 불상이 한 세트이고, 모두 진품이라면 이 불상은 두말할 것도 없이 사명대사의 원불이고 가치는 국보급이라고 할 수 있다. 조심스럽지 않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


우선 불상을 살펴보면 양식적으로는 전형적인 조선전기의 불상이라고 할 수 있다. 앙련과 복련으로 이루어진 대좌위에 결가부좌하고 있으며, 보존 상태는 군데군데 금박이 탈락한 것을 제외하면 양호한 편이다.


머리에는 큼지막한 육계가 있고 육계 정상부에는 끝이 뾰족한 연봉 같은 계주가 솟아있다. 머리카락은 나발이고 방형의 얼굴은 알맞게 살쪄있는데, 이마도 넓은 편이며 중앙에는 백호가 큼직하게 새겨져 있다. 이목구비의 표현은 부드러워 자연스럽고, 목에는 삼도가 있다. 가슴은 당당하며 오른쪽에 유두가 표현되어 있다. 오른 손은 무릎 아래로 곧게 내려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으며 왼손은 배 앞에 두고 있다. 대의는 우견편단으로 입었다.


이상과 같은 유형의 상들로는 통도사박물관소장 아미타상(1450년)과 강원도 금강군 내금강리 출토 조선중앙역사박물관소장 아미타상(1451년) 같은 불상들이 있는데, 15세기 명대불상의 직접적인 영향으로 제작된 불상들이다. 대성사 소장 금동불좌상은 여러 면에서 조선전기의 불상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다만 만전을 기하기 위해 주지스님의 양해를 얻어 불상에 대한 X선 촬영과 성분분석 조사를 실시하였다. 지금이야 문화재에 대한 과학적조사가 보편적인 일이 되었지만 당시만 해도 소장자를 포함한 여러 기관이 협조해주지 않으면 거액이 필요한 조사였다. 다행히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에서 무료로 모든 조사와 분석을 해주었고, 불상의 제작기법이나 성분에서 이상 징후는 발견할 수 없었다.


일련의 과학적 조사가 진행되는 동안 나는 사명대사 원불의 존재여부와 소재파악을 해보았다. 사명대사(1544∼1610)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조선 중기의 고승으로 풍천 임씨이며, 속명은 응규(應奎), 자는 이환(離幻), 호는 사명당(四溟堂), 또는 송운(松雲)이다. 김천 직지사(直指寺)에서 출가하여 직지사의 주지를 지냈으며, 1575년(선조 8년) 선종의 중망(衆望)에 의하여 선종수사찰(禪宗首寺刹)인 봉은사의 주지로 천거되었으나 사양하고, 묘향산 보현사(普賢寺)의 휴정(休靜)을 찾아가서 공부하였다. 1578년부터는 팔공산·금강산·청량산·태백산 등을 다니면서 선을 닦았다. 이렇듯 그의 궤적은 전국을 망라하고 있지만, 임진왜란 이후에는 건봉사에서의 활약이 돋보인다.


건봉사는 강원도 고성군 금강산의 동남쪽 자락에 위치하고 있어서 흔히 ‘금강산 건봉사’라고 불리는 사찰이다. 삼국시대 창건되었다고 알려졌으며, 조선 세조 때는 원당으로 지정되어 조선 시대 내내 왕실의 원당으로 계속 꾸준한 관심과 지원을 받았다. 신라 때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가져와 통도사에서 모시던 석가모니의 치아 사리를 임란 때 강탈당한 바 있었는데, 이를 사명대사가 일본에서 돌려받아 건봉사에 봉안하였으며 아직도 치아사리는 건봉사에서 친견할 수 있다. 그런데 원불과 관련한 결정적 자료는 광서8년(1882년)에 제작된 ‘금강산건봉사사적(金剛山乾鳳寺事蹟)’에서 찾을 수 있었다.

 

 

▲포항 대성사 소장 사명대사 원불은 대성사 주지 운붕 스님의 제보로 세상에 알려졌다.

 

 

▲고성문화원에서 발간한 ‘국역 건봉사의 역사적발자취’에는 ‘건봉사 낙서암 전 송운대사 원불'사진이 실려 있는데 포항 대성사 불상과 동일하다. 송운(松雲)은 유정사명대사의 또 다른 호다.
사적의 내용 중에는 ‘특히 건봉사는 사명대사께서 삭발을 한 본사로서 임진왜란 당시에는 이곳에서 의병을 모집하여 활동하였기 때문에 생전의 진영과 원불, 은탑, 가사, 염주 등의 유물이 모두 건봉사에 남아있게 된 원인이 된 것이다’라는 기록이 있어 직접 사명대사의 원불을 거론하고 있다. 정말 사명대사 원불이 건봉사에 존재했던 것이다.


그리고 고성문화원에서 발간한 ‘국역 건봉사의 역사적발자취’란 책에는 ‘건봉사 낙서암 전 송운대사 원불’이라는 사진이 실려 있는데, 바로 이 사진 속의 불상이 포항 대성사에 모셔져 있는 불상과 같은 불상이었다. 이 사진은 1912년에 조선총독부가 촬영한 것인데, 송운(松雲)은 바로 유정사명대사의 또 다른 호이다.


이상의 사실을 종합해보면 포항 대성사소장 금동불좌상은 원래 건봉사에서 사명대사의 원불로 모셔져있던 불상이다. 이 불상은 주로 금강산 일대에서 발견되고 있는 15세기 라마교풍 명대불상의 영향을 받은 불상들과 양식적 궤를 같이 하는 미술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자료이며, 조선 초기에 금강산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왕실불사와도 관련이 많은 불상이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불상 자체의 미술사적인 중요성 외에도 함께 발견된 원장이 사명대사가 발원한 것으로 불교사적 가치도 매우 크기 때문에 나는 반드시 문화재로 지정해서 국가가 관리해야 한다는 의견서를 제출하였고, 경상북도에서는 2009년 4월 문화재위원회를 거쳐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09호로 지정하게 되었다. 사찰문화재 일제조사의 큰 성과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강원도 고성 건봉사에 있던 불상이 어떤 연유로 포항 대성사에 모셔지게 된 걸까? 현재로서는 알 수 없으나, 한국전쟁으로 말미암은 건봉사의 비극과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닐까싶다.


건봉사는 조선시대 세조가 직접 행차하여 어실각을 건립한 사찰로 그 후로도 왕실의 원찰로서 위세가 등등했다. 또한 건봉사는 일제강점기 북부 강원도 지역을 대표하는 31본산의 하나로 신흥사와 백담사, 낙산사 등을 관할했으나 한국 전쟁으로 전소됐다. 당시 폭격으로 수백 칸에 이르던 전각이 모두 타버려 폐허가 되었고, 스님들이 어쩔 수 없이 절을 떠나며 이 사명대사의 원불도 건봉사를 떠나게 된 것 같다.


수년 전 도쿄에 있을 때 대성사 주지 운붕 스님에게서 연락이 왔다. 사명대사의 일대기를 150억원 정도 규모의 영화로 제작하려고 하는데, 사명대사가 일본에서 활약하던 당시의 모습을 복원할 수 있는 자료를 구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스스로 가수협회 회원이고 음반 발매도 한 적이 있는 운붕 스님은 영화 뿐 아니라 노래, 춤 등 다양한 형태로 사명대사의 정신을 계승하고 알려나갈 계획을 갖고 있다고 하셨다.

 

▲임석규 실장

아직 영화 개봉 소식은 들리지 않지만 사명대사가 원장에서 발원했던 것처럼 모든 중생이 대자대비하신 석가모니부처님께 귀의하여 부처님의 법과 공덕을 배우고, 모든 소원이 원만성취되길 기원한다는 그 소중한 마음만은 아직 이어지고 있는 듯하다. 

 

임석규 불교문화재연구소 연구실장  noalin@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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