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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허구적 의리보다 사실적 이익을

기자명 법보신문

극단적 윤리주의는
필연적 대립 불러
의리 명분 벗어나
공동이익 추구해야


우리가 유교적 윤리도덕을 조선시대의 종말과 함께 시원하리만큼 청소해 버린 가장 뚜렷한 이유는 유교적 윤리도덕의 규범이 너무 압도적이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유교적 윤리도덕이 압도하는 사회는 윤리도덕적으로 건강해지기는커녕 오히려 윤리도덕의 규범이 사회생활의 생명을 억압하는 그런 진풍경을 초래한다. 우리는 한국문화를 건강하게 키워야 한다. 이 말에는 한국문화를 병적으로 키울 위험성을 우리 안에 간직하고 있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즉 우리가 어떤 가치에 정신적으로 젖어서 거기에 푹 빠져 있는 경우 정신을 못 차릴만큼 균형감을 상실하고 만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그 일례가 바로 조선시대의 유교적 과잉지배 이데올로기를 생각해 볼 수 있다.

 

그 지배 이데올로기의 병적인 모습이 여성의 재가 금지법이라든지 서얼차별과 같은 계급지배의 강화와 같은 일이라 하겠다. 지배계급인 양반과 같은 사람들이 자기들 기분대로 서얼을 만들어 놓고, 또 그 서얼을 억압하는 법을 만들어 그들의 존재 이유를 부재케 하는 이상한 규범을 설정해 놓았다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사회적 부조리가 아닐 수 없다.


지금 우리는 민주주의 시대에 산다. 그런데 민주주의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방식으로 민주주의를 이데올로기적으로 요구하는 거국적인 데모가 여러 번 일어난 나라도 아시아 국가 중에서 한국이 가장 유일하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겠다. 지금 그 한국이 아시아의 국가 중에서 유일하게 분단의 아픔을 겪고 있다. 독일처럼 전범국가로서 분단의 형벌을 받아야 하는 아시아의 국가는 일본이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엉뚱하게 한국이 그 형벌의 고통을 대신 받았다. 왜 그런가? 우리가 왜 일본대신 그 역사적 형벌을 받게 됐는지 나는 이직도 그 까닭을 잘 모른다.

 

우리가 일본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하기 위하여 열심히 투쟁한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의 독립투쟁 운동이 나라의 분열을 초래할 만큼 자충수를 둔 것은 아니겠다. 신탁통치도 일본열도에서 일어날 일이지, 왜 한반도에서 그런 분열이 생기게 되었는지 우리는 그 까닭을 받아드리기 힘들다.


이런 일들이 생기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우리가 어떤 명분이나 이름을 두고 너무 적대적으로 싸우는 체질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닌지? 그런 버릇이 6·25 전쟁을 일으켰고 또 그 이전에 사색당쟁을 초래한 것이 아닌지 한번 숙고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유교적 명분주의를 극복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불교를 통해 우리의 공통적인 이익이 무엇인지 통찰하는 문화를 선양해야 하겠다. 우리는 너무 유교적 의리사상이 강하다. 유교는 이익과 의리를 적대적으로 대립해서 생각하는 버릇이 있다. 우리는 이 버릇을 극복해야 한다. 불교는 의리와 이익을 적대적으로 나누어 생각하지 않는다. 불교에는 아예 의리의 개념이 없고, 오로지 이익의 의미만이 강조되고 있다. 나는 불교의 이러한 사유가 좋다. 불교는 유교적인 의리사상의 허구성을 공박하고 이익사상을 널리 선양한다. 우리는 이익의 의미를 잘 선양하지 못하고 내용이 없는 의리사상의 허구성에만 집착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다.


부처님이 의리사상을 이야기 하지 않았던 것은 그것이 세상의 필연적 사실이 아니고 인간이 만든 허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만든 허구는 일시적인 환영에 불과하고 세상의 사실로서 존재하지 않는다. 의리사상은 이 의리와 저 의리가 서로 충돌하고 대립하기를 그치지 않고 계속하기에, 이 세상에서 의리의 싸움판이 그칠 날이 없을 것임을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김형효 교수

불교는 의리의 종교사상이 아니고, 이익의 종교사상이다. 의리는 이 세상의 필연적 사실이 아니고, 인간의 생각이 만든 허구적 관념에 불과하다. 이익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다 추구하는 욕망이다. 이익이 그런 보편적 욕망이므로 이익의 의미를 깊이 음미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하다.

 

김형효 서강대 석좌교수 kihyhy@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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