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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신윤복, ‘미인도’/ 강세황, ‘복천오부인초상’

기자명 법보신문

“늙는다는 것은 거부할 수 없는 무거운 운명”

“환자분. 이제부터 간단하게 몸을 씻겨 드리고 새 옷으로 갈아 입혀 드릴께요.”


중환자실에서였다. 아침이 되자 간호사 네 명이 오더니 상큼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전날 수술을 마친 나는 온 몸에 호스를 단 채 겨우 숨만 몰아쉬고 있었다. 스물 대 여섯 쯤 되었을까. 누운 채 올려다 본 그녀들은 봄볕에 터진 목련꽃처럼 눈부셨다. 나도 저런 때가 있었던가. 피부를 만지면 뽀얀 가루가 묻어날 것처럼 고왔다. 손놀림도 재빨랐다. 내 침대를 가운데 두고 양쪽에 두 명씩 선 그녀들은 한 몸처럼 호흡이 척척 맞았다. 내게 오기 전에 하던 이야기가 있었던 지 익숙하게 환자복을 갈아입히면서 그들끼리 대화를 재개했다. 그녀들은 마치 이승에 남은 사람들이 저승으로 떠난 시신 앞에서 그들만의 세상 이야기를 거리낌 없이 하듯 나 같은 환자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녀들에게 나는 오뉴월송장도 아닌 이승을 떠난 시신이나 다름없었다. 이승에 살고 있는 젊은 그녀들의 목소리에서 싱싱함이 뚝뚝 떨어졌다.


“내가 어제 전화해봤는데 이 달 말까지 예약하면 간호사들한테는 특별히 삼십 프로 할인해준대.”


“정말?”


“알고 봤더니 내 친구도 거기서 했더라구. 괜찮냐고 물어봤더니 만족한대. 보톡스는 진짜 잘한데서 해야지 잘못하면 나중에 더 쭈글쭈글해진다고 하잖아. 여기는 진짜 믿을만하대.”


“어머, 잘 됐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눈 옆에 주름이 생겨서 고민하고 있었는데 마땅한 곳을 못 찾았거든. 빨리 해야겠다. 전화 번호 좀 알려줘.”


“그럼 우리 단체로 할까? 여러 명이 함께 가면 더 많이 깎아줄 거 아니야.”


“그러자. 그럼 이따 점심 때 예약하자.”


“환자분. 다 됐습니다. 이 쪽 침대로 옮기겠습니다.”


처음에는 다른 사람 얘기를 하는 줄 알았다. 아찔하게 젊은 그녀들이 자신들의 얼굴에 대해 고민하는 것은 아니겠지 싶었다. 그런데 그녀들 얘기였다. 뇌종양 수술을 마치고 머리에 붕대를 칭칭 감은 나보다 자신들의 얼굴 주름살이 더 큰 문제였던 것이다. 그녀들에게 젊음을 유지하는 것은, 죽음 앞에서 방금 돌아선 중환자의 건강회복만큼이나 절실한 문제였다. 늙음에 대한 공포가 밀도 높게 젊은 영혼들을 지배하고 있었다.

 

 

▲ 신윤복, ‘미인도’, 비단에 색, 114.2×45.7cm, 간송미술관(왼쪽), 강세황, ‘복천오부인초상’, 1761년 , 비단에 색, 78.3×60.1cm, 개인소장(오른쪽)

 


젊음과 죽음 사이에서


아름다운 여인은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 같은 여자일지라도 행복하다. 하물며 이성의 눈에는 오죽하랴. 신윤복(申潤福:18세기 후반)이 그린 ‘미인도’는 아려한 여인의 대명사다. 얹은머리를 한 여인이 입을 꼭 다문 채 삼작노리개를 만지작거린다. 곱게 빗어 말아 올린 머리는 정갈한 눈빛만큼이나 단정하다. 저고리는 몸에 꼭 맞도록 소매가 좁고 길이가 짧은데 치마는 반대로 풍성해 여성성이 강조되었다. 절제된 묘태란 그녀를 두고 한 말일까. 속내를 감춘 그녀에게서는 자존심 강한 여인의 향기가 느껴진다. 보톡스를 맞지 않아도, 화장을 짙게 하지 않아도 그녀는 젊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미수하다.


신윤복은 조선의 여인과 관련된 풍속을 생생하게 그린 작가다. 그가 그린 풍속화에는 조선시대 양반들의 근엄함 뒤에 감춰진 흐트러진 욕망이 담겨 있다. 그는 도덕군자인 척하는 양반들의 허위와 가식을 세련된 색과 섬세한 붓질로 교묘하게 풍자했다. 그의 풍속화에는 예외 없이 양반과 여인이 등장한다. ‘미인도’는 양반이 빠진 여인의 단독초상화지만 신윤복의 정성스런 붓질을 확인할 수 있는 그의 대표작이다. 한 오 십여 년 지난 후에 그녀는 어떻게 변해 있을까.


그에 대한 해답을 18세기의 문인화가 강세황(姜世晃:1713-1791)이 그린 ‘복천오부인초상’에서 찾을 수 있다. 그림 상단에 ‘복천오부인86세진(福川吳夫人八十六歲眞)’이라 적혀 있어 주인공의 나이를 알 수 있다. 86세의 할머니는 휘장이 좌우로 걷힌 공간 속에서 한쪽 무릎을 세우고 앉아 있다. 그녀의 자세와 반대 방향으로 놓은 화문석 돗자리 위에는 베개와 지팡이가 놓여 있다.


할머니의 신체는 큰 머리에 비해 몸이 유난히 작고 왜소해서 80대 노인의 특징이 가감 없이 드러난다. 특히 넓은 이마와 함께 가르마가 훤히 들여다보일 정도로 머리카락이 많이 빠진 모습은 사실적이다 못해 충격적이다. 눈꺼풀이 처져 반쯤 감긴 듯한 눈도 여간 흘미죽죽한 게 아니다. 눈꺼풀을 들어올리기도 힘겨운 표정이 영혼 위에 낡삭은 살가죽을 걸쳐 놓은 듯 위태로워 보인다. 젊음이 빠져 나간 인생의 끄트머리에는 퍼석퍼석한 껍질만이 남았다. ‘복천오부인’이 아니더라도 늙으면 누구에게나 삶은 무겁다.


얼굴과 저고리에는 곰팡이가 피고 색이 변질되어 처음 제작했을 당시의 본모습을 많이 잃었다. ‘복천오부인초상’은 강세황이 49세 때 그렸는데 여성초상화가 극히 드문 조선시대의 상황을 고려해볼 때 매우 귀한 작품이다.

 

복천오부인은 왕실의 종친과 결혼한 종실여성으로, 예조판서였던 그의 아들의 적극적인 주도로 초상화가 제작되었다. 특히 친척관계에 있던 강세황이 그림을 잘 그려 그에게 부탁하게 된 것도 이 초상화가 제작된 배경이 되었다. 강세황은 대상을 미화시키지 않고 초상화의 기본 정신인 전신(傳神)에 충실했다. 조선후기를 대표하는 유일한 여성초상화에는 절제된 선묘를 통해 사대부집 노부인의 인품을 표현하고자 했던 작가의 의도가 생생하게 살아 있다.


물론 신윤복의 ‘미인’과 강세황의 ‘복천오부인’은 동일 인물이 아니다. 그러나 신윤복의 ‘미인’도 86세가 되면 ‘복천오부인’과 비슷해질 것이다. 복사꽃처럼 고운 미인이 핏기 없는 노부인으로 변할 것이라는 사실을 믿기는 쉽지 않다. 그런 잔인한 붕괴는 도저히 일어날 것 같지 않다. 믿고 싶지 않지만 인정해야만 하는 진실이 시간의 파괴력이다. 시간의 파괴력에 속수무책 당해야 하는 것이 사람의 인생이다.


노쇠현상이 그러할 진대 그 과정에서 겪어야 하는 사연들은 얼마나 많은가.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야 하는 괴로움. 싫어하는 사람을 만나야 하는 괴로움. 갖고 싶지만 가질 수 없는 괴로움. 오욕칠정(五慾七情)에 끄달리며 방황하는 괴로움 등은 가는 젊음을 붙잡는 것만큼이나 힘든 통과의례다.

 

 

▲ 신윤복 미인도 확대.                                    ▲ 강세황 복천오부인86세초상.

 

 

늙는다는 것은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쩌지 못하는 무거운 운명이다. 받는 사람이 결코 수락한 적 없지만 기필코 받아야 하는 표독스러운 법칙이다. 어떤 논리적인 분노나 이성적인 핑계로도 거부할 수 없는 필연이고 숙명이다. 그런데 세월이 얼마나 빠른가. 다음의 시는 용납할 수 없는 세월의 속도를 절절하게 느끼게 한다.

 

한 손에 막대를 쥐고 또 한 손에는 가시를 쥐고
늙는 길을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을 막대로 치려 했더니
백발이 제가 먼저 알고서 지름길로 오는구나.

 

늙음을 한탄한 「탄로가(歎老歌)」는 고려시대 문신 우탁(禹倬:1263-1342)이 지은 시조다. 늙음이란 그런 것이다. 아무리 날카로운 가시로 막고 단단한 막대로 치려해도 날렵하게 지름길로 먼저 와 있는 불가항력이다.


늙고 병든 노쇠현상은 인류가 탄생한 이후 생명 가진 존재라면 누구나 감수해야 할 삶의 조건이다. 어떤 권력이나 물질로도 대체불가능하다. 유사 이래 수많은 황제와 도사들이 불로장생을 꿈꾸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결국 저항을 포기했다. 대신 살아있는 시간만이라도 잘 살자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


잘사는 법을 실천하는 사람은 두 부류로 나뉜다. 첫번째는 짧은 인생이니 늙기 전에 놀며 즐기자는 ‘노세족’이다. ‘노세족’은 늙어지면 못 놀기 때문에 ‘젊어서 놀자’고 부추긴다. 노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춤을 추거나 산천경계로 구경을 가거나 이백(李白:701-762)처럼 ‘한 잔 한 잔 또 한 잔(一盃一盃復一盃)’ 하며 술에 취해 살 수도 있다. 노세족의 겉모습은 행복해 보인다. 그러나 행복의 이면에는 시한부 인생을 살아야하는 자의 식은땀이 배어 있다. 


두 번째 부류는 ‘근면족’이다. ‘근면족’은 인생이 짧으니만큼 주어진 시간을 값없이 살지 말고 부지런히 공부하라고 다그친다. 수많은 근면족들이 ‘권학문(勸學文)을 지어 후배들을 일깨웠다. 대표적인 학자가 남송(南宋) 대 유학자 주희(朱熹:1130-1200)다. 주희는 ‘소년은 쉽게 늙고 학문은 성취하기가 어려우니 짧은 시간이라도 가벼이 여겨서는 안 된다’고 가르침을 주는 것도 모자라 ‘오늘 배우지 않고 내일이 있다고 말하지 말라’고 단호하게 경고했다. 주희 외에도 『고문진보』에는 당(唐) 대 백거이(白居易), 송(宋) 대 진종(眞宗), 인종(仁宗), 사마광(司馬光), 유영(柳永), 왕안석(王安石), 한유(韓愈) 등 여러 사람의 권학문이 실려 있다. ‘세월은 나를 기다리지 않는다’는 진리를 뼈저리게 느낀 선각자들의 호소다. 근면족의 성토는 노세족보다는 바람직하지만 역시 유한한 생명을 가진 자의 안타까움이 갈마치듯 응축돼있다.

 

싯다르타 태자의 네 가지 소원


싯다르타의 결혼 생활은 순탄했다. 아버지 슛도다나왕이 바랬던 것처럼 태자비 야쇼다라와의 사이에 아들 라훌라를 낳았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슛도다나왕의 왕위는 싯다르타에게 계승될 것이다. 아시타 성인의 예언은 출가 쪽이 아니라 전륜성왕쪽이 더 유력해보였다. 슛도다나왕은 흡족했다. 안심해도 될 것 같았다.


그러나 모든 운명이 그런 것처럼 태자의 출가 동기는 의외로 평범한 사건이 계기가 되었다. 어느 날 태자는 성의 동쪽 문으로 나가다 허름한 노인을 만났다. 초라한 행색의 노인은 힘든 몸을 지팡이에 의지해 겨우겨우 걸어가고 있었다. 왕궁에서 그런 비참한 행색의 노인을 본 적이 없던 태자는 시종에게 물었다. 시종이 대답했다.


“사람은 누구나 늙으면 저 노인처럼 됩니다.”  


시종의 말을 들은 태자는 우울했다. 태자는 다시 성의 남쪽 문으로 나가다 병든 사람을 만났다. 곧 숨이 넘어갈 듯 신음하는 병자는 잔뜩 얼굴을 찌푸린 채 고통스러워했다. 왕궁에서 그런 병자를 본 적이 없던 태자는 시종에게 물었다. 시종이 대답했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면 저 병자처럼 아픕니다.”  


시종의 말을 들은 태자의 가슴 속에 비탄의 감정이 계시처럼 찾아왔다. 태자는 다시 성의 서쪽 문으로 나가다 죽은 사람의 장례 행렬을 봤다. 사랑하는 사람을 저 세상으로 보낸 사람들은 슬픔에 젖어 울부짖고 있었다. 왕궁에서 죽은 자를 본 적이 없던 태자는 시종에게 물었다. 시종이 대답했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면 한번은 죽습니다.”


시종의 말을 들은 태자는 충격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했다. 죽음은 죽지도 않고 태연자약하게 삶 속에 살아 있었다. 태자는 다시 성의 북쪽 문으로 나가다 출가 수행자를 만났다. 그는 비록 남루한 옷을 걸치고 있었지만 온몸에서 빛이 났고 얼굴에는 평화로움이 가득 했다. 왕궁에서 출가 수행자를 본 적이 없던 태자는 시종에게 물었다. 시종이 대답했다.


“저 사람은 해탈을 구해 수행하는 사람입니다.” 


태자는 그들의 모습에서 자신의 미래를 봤다. 호화스런 궁전에 사는 자신이 늙고 병들고 죽는 성문 밖 사람들과 다를 것이 없었다. 그 순간 태자의 운명이 결정됐다. 아니, 태자가 운명을 결정했다. 


싯다르타가 동서남북에 뚫려 있는 네 개의 성문을 나가서 노인과 병자와 죽은 자와 출가자를 만났다는 사문유관(四門遊觀)은 전기 작가들이 붓다의 출가 동기를 극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구성한 상징적인 이야기다. 태자가 그 나이가 되도록 늙고 병들고 죽는 것에 대해 알지 못했을 리 만무하다. 다만 그때까지 막연하게 생각했던 생로병사에 대한 고민이 때가 무르익어 구체적인 자신의 이야기가 되었음을 말해준다. 모든 상황은 보는 사람의 마음 상태에 따라 달리 보이는 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태자 앞에 나타난 노인과 병자와 죽은 자와 수행자는 태자에게 가르침을 주기 위한 선지식(善知識)이라 할 수 있다. 선지식은 이전에도 여러 차례 태자 곁을 지나갔을 것이다. 그때는 태자가 선지식을 선지식으로 알아볼 수준이 아니라서 지나쳤을 뿐이다. 천인(天人)과 선지식도 시절 인연이 도래하기 전까지는 그저 평범한 동네 아저씨일 뿐이다. 그런데 평범한 얼굴을 한 선지식이 어찌 싯다르타 태자만 찾아갔겠는가. 우리한테도 날마다 찾아오고 있는 것을.


궁에 돌아온 싯다르타는 슛도다나에게 자신의 결심을 얘기했다. 평소 신중하고 사려 깊은 아들의 성격을 잘 알고 있던 아버지가 간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태자야. 너는 장차 이 나라와 백성들을 책임져야 할 사람이다. 어떻게 하면 출가를 단념할 수 있겠느냐? 네가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다 들어주겠다.”


싯다르타 태자가 진지하게 대답했다.


“저에게는 네 가지 소원이 있습니다. 첫째는 늙지 않는 일입니다. 둘째는 병들지 않고, 셋째는 죽지 않으며, 넷째는 서로 이별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 네 가지 소원만 들어주신다면 출가하지 않겠습니다.”

 

▲조정육

슛도다나왕은 말문이 막혔다. 싯다르타 태자의 결심이 확고한 것을 안 슛도다나는 더 이상 아들을 설득하지 못했다. 인간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 앞에서 무력한 중언부언은 그저 횡설이고 수설일 뿐이었다. 그날 밤 싯다르타는 마부 찬다카가 이끈 애마 칸타카를 타고 조용히 성문을 빠져 나왔다. 양어머니 마하프라자파티와 태자비 야소다라는 물론 아들 라훌라에게도 작별인사는 하지 않았다. 싯다르타 태자의 인생이 출가수행자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조정육 sixgardn@hanmail.net

 


*참고문헌


윤진영, 「강세황 작 ‘복천오부인 영정’」,『강좌미술사』27호, 259-282쪽, 2006년,
이중석, 『내 인생의 멘토 붓다』, 불광출판사, 2011년
조정육, 『조선의 미인을 사랑한 신윤복』, 아이세움,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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