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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이 따듯했던 양익 스님

기자명 법보신문

삶의 밑바닥에 있을 때
몇 마디 말로 감싸안아
수행자로서 모범 보여

출가자로서의 삶, 그 삶의 이정표가 무엇이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지체 없이 은사스님이 떠 오른다.
25년 전 승가대학교 시절, 사회가 어지럽던 나날 속에 거듭되는 데모와 종단과의 마찰로 암울했던 그 때, 유일하게 돌아갈 수 있었던 곳은 은사 양익 큰스님의 품이었다.


전화 한 번 하지 않고 편지 한번 나누지 않았던, 누군가“은사가 누구시냐?”고 물으면 화제를 돌릴 만큼 서운함만 가득했던 바로 그 은사스님이 암흑 속의 절벽처럼 캄캄하고 막막한 상황에서 불현 듯 떠오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돌이켜보면 그것은 은사스님의 크나큰 자비이며 제자를 위해 끊임없이 보내 주신 사랑이었다는 것을 감히 고백한다.

행자 시절부터 가까이서 모신 것도 아니요, 이따금 호통 치시는 모습에 도망가기만 바빴던 은사 스님의 품. 출가 초기 그렇게 반대하신 범어사 강원을 졸업한 이후 다시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겠다며 범어사 청련암을 도망치듯 나와 서울행을 택했지만 남은 것은 퇴학과 텅 빈 주머니였다. 그 누구도 잘했다고 하지 않았고 곁에 오는 이 조차 없었던 상황에서 무작정 은사스님을 찾아갔다. 호되게 야단맞을 각오는 이미 되어 있었다. 어쩌면 정신적, 물질적으로 밑바닥에 처해 있었기 때문에 은사스님의 벼락같은 몽둥이가 그리웠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은사스님을 찾아갔을 때 스님께서는 정작 몽둥이가 아닌 자비심으로 안부를 물으셨다. “잘 있었냐? 잘 왔다.”이외에는 아무것도 묻지 않으셨다. 그 두 마디의 말씀은 세상의 끝에 서있던 나에게 빛으로 다가왔다. 유일하게 내 편을 들어 주셨다는 감동이 밀려왔다. 움츠렸던 어깨가 펴졌다. 그제야 짐작할 수 있었다.


은사스님은 표현 방법이 달랐을 뿐 모난 상좌에게 조차 가슴 속 깊은 사랑과 배려를 가진 분이었다는 사실이다.
은사스님으로부터 깨알 같은 천원 짜리 지폐 한 묶음을 받아들고 위풍당당하게 다시 청련암을 나섰다. 밖에서 아직 할 일이 더 남아있다는 나를 스님께선 붙잡지 않으셨다. 그리고 다시 격동의 세월을 보냈다. 끝도 없이 반복되는 싸움이었다. 의기로 버티기엔 막막하기만 했을 때, 이번에는 평소 연락도 없으시던 은사스님께서 전화를 걸어 오셨다. “서울 인연이 끝났으니 이제 내려 와라.”


스님의 이 한 말씀에 곧장 다시 청련암으로 돌아갔다. “뭘 할 거냐”고 물으시기에“토굴에서 기도를 하겠다”고 답하니 말없이 고개만 끄덕이셨다. 그렇게 100일 기도를 올리며 마지막 한 달 동안은 매일 삼천배 그리고 마지막 날은 만배로 10만배 기도를 회향했다. 청련암으로 다시 돌아온 내게 은사스님께서는“수고했다”는 한마디만 하실 뿐이었다.

▲정산 스님 (한국불교문화사업단 단장)


이후 청련암에서 재를 집전하고 불사를 거들면서 6년을 보냈을 무렵, 서울 개운사 주지 소임 요청이 왔다. 어찌할까를 망설이자 은사스님께서는 세 가지 제안을 하셨다.


“첫째 매일 예불에 빠지지 말 것, 둘째 불사금을 받아서 불사하지 말 것, 셋째 주지 하지마라고 하면 당장 내려오너라.”
그 약속은 개

운사 소임 내내 든든한 힘이 됐다. 켜켜이 쌓여있던 빚을 청산했고 신도도 늘어났다. 특별히 뭔가를 한 것이 아니라 그저 은사스님과의 약속을 지킬 뿐이었다. 그리고 그 약속은 지금까지 도량의 소임을 맡을 때마다 당연히 실천하는 스스로의 약속이 됐다. 시간이 거듭될수록 더욱 더 지극하게 다가오는 스님의 가르침을 새기며 이 자리를 돌아봅니다. 스님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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