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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요나라거대불탑

기자명 법보신문

장성 이남 연운십육주 정벌로 웅대한 불탑문화 꽃피우다

 

▲중국 요녕성 지역에는 조양북탑을 비롯해 40여기의 요대 불탑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현재 중국에선 2006년 무렵 시작된‘요대고탑(遼代古塔) 보호 프로젝트’가 한창 진행 중이다. 이 프로젝트의 목적은 10년간 요녕성에 산재하고 있는 요나라의 고탑 약 40기를 보존수복하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는 것이다. 이 기간 동안 주요한 탑들의 외면에는 비계가 설치되어 웅장한 모습을 보기는 힘들지만 비계를 오르며 거대한 탑에 새겨진 아름다운 조각들을 눈앞에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요대 건축이나 미술을 공부하는 연구자들에게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나는 2010년 8월 일본의 연구자들과 요녕성의 문화재를 조사했는데, 요나라 탑도 25기 가량 조사한 바 있다.


요나라(916~1125)는 잘 알려져 있듯이 거란족이 세운 나라로 지금의 내몽골 자치구를 중심으로 중국 북쪽을 지배한 왕조였고 초대 황제는 야율아보기(耶괹阿保機)였다. 그는 건국 초기인 926년 발해(渤海)를 멸망시키고, 승려를 포함한 발해인 50인을 당시 수도였던 요나라 상경으로 데려가 천웅사(天雄寺)를 짓게 하였다.


 

건국초기에는 불교가 요의 보편적 종교가 아니었고, 그들 스스로의 힘으로는 사찰을 건립할 수 있는 기술도 없었으나, 이후 남쪽으로 세력을 확장하여 연운십육주(燕雲十六州)를 획득하면서 문화를 발전시킬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연운십육주는 지금의 북경과 운강석굴이 있는 대동(大同), 즉 하북성과 산서성의 북부를 포함하는 지역이다. 이 지역은 이전부터 불교가 번성했던 곳이고 이 지역을 다스리게 된 요의 불교 또한 황실의 보호 아래 발전해나간다. 현재 북경, 천진, 하북, 산서, 요녕, 내몽골 등 북방각지에는 요대의 불교 유적이 많이 남아 있다. 이 중 요녕성지역에는 유명한 조양북탑(朝陽겗塔)을비롯해 40여기의 거대한 요대 불탑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평균 높이 40m의 요나라 탑

 

요나라 탑은 조양 북탑이 70m가 넘고, 다른 탑들도 대체로 평균 높이가 40m 이상이 될 정도로 거대하다는 것이 특징이다. 그리고 탑이 세워지는 장소가 사면이 트인 도로의 한 복판이나 높은 산의 정상부, 산이 없는 지역에선 구릉의 정상부 등 주변에서 가장 높은 곳이라는 점이다. 즉 사방 어느 곳에서도 보이는 곳에 탑이 자리 잡고 있어서 지금도 도시에서는 상징이 되어 있다.
게다가 요나라 탑은 대부분 사찰과는 상관없는 곳에 세워져 있어서 우리나라를 포함한 주변 국가들의 불탑들과는 조성배경이나 성격이 전혀 다른 탑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는 20여일 동안 요녕성 곳곳에 세워져 있는 요나라의 탑을 조사하면서 계속 고민했다. 왜 요나라 사람들은 사찰은 커녕 인적도 드문 산꼭대기에 저렇게 거대한 탑을 건립한 것일까? 이 의문을 푸는데 결정적 계기가 된 것은 요나라 사람들의‘불정존승다라니’에 대한 열렬한 신앙과 탑만큼이나 크게 유행했던 경당의 건립이었다.


‘불정존승다라니’는 줄여서‘불정다라니’또는‘존승다라니’라고도 하는데, 부처의 특징을 보여주는 32상 중 정수리부분의 육계(肉)를 불격화한 것이다. 부처님의 공덕 중 가장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지혜 즉 불지(佛智)를 인격화한 것이다. ‘불정존승다라니경’의 요체인 다라니는 주로 나의 육신과 모든 중생의 몸이 깨끗하게 정화되길 기원하고, 다시 올 수명의 깨끗함과 그 수명을 유지하는 행동의 청정함을 기도하는 내용이다. 게다가 이 다라니는 멸죄(滅罪)·연명(延命)·액난 제거 등에 효험이 많아 내세는 물론 현세이익적 경향이 많은 경전이었기 때문에 중국뿐만 아니라 일본, 실크로드 주변지역, 넓게는 중앙~동아시아권내에서 열렬하게 신앙되었다.


중국에 전래된‘불정존승다라니경’은 선무외(善無畏)와 금강지·불공(不空) 같은 고승들에 의해 중기밀교가 본격적으로 전래되기 이전부터 여러 승려들에 의해 번역되었는데, 가장 널리 애용된 번역본은 불타파리(佛陀波利)가 번역한‘불정존승다라니경’(대정신수대장경 No.967)이다. 불타파리의 번역본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존승다라니 신앙은 고려에도 전해져 평안북도 불정사 석경당(현 묘향산 보현사 소재) 조성으로 이어졌다.

 


만약 어떤 사람이 이 다라니를 써서 높은 당위에 두거나 높은 산에 두거나, 혹은 루 위에 두거나, 탑 속에 안치하여, (중략) 당의 위를 보거나 혹은 가까이 다가서서 그 그림자가 몸에 비추거나 혹은 바람이 불어 당 위에 있는 다라니에서 먼지가 날아와 몸에 붙기만 하여도,(중략) 저 중생들은 지은 죄업으로 악도에 떨어져 지옥, 축생, 염라왕의 세계, 아귀, 아수라의 몸 등, 받아야 할 악도의 고통을 전혀 받지 않고, 또한 죄의 때에 물들거나 더러워지지 않느니라.
네거리에 탑 세워 다라니를 안치하고 합장공경하며 탑돌이하며 귀의한다면 그 공덕은 무한할 것이다. 불타파리 역‘불정존승다라니경’(大正藏No.967-351b)

 

이것은 다라니의 공덕과 봉안방법에 관한 규정이라고 할 수 있는데, 경전에서는 이 다라니를 절 입구의 당간에 깃발처럼 걸거나, 아니면 아주 높은 산이나 누각에 안치하거나 또는 탑 내부, 또는 네거리에 탑을 세우고 그 안에 다라니를 안치하도록 하고 있다. 보기만 하여도, 옷깃이 스치기만 하여도 그 공덕을 받을 수 있는 경전이기 때문에 결국 모든 사람이 어디에서도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며, 이러한 조탑 사상은 요대 불탑들의 중요한 조성배경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위의 내용 중 이 다라니를 베껴서 높은 당위에 안치한다는 구절이 있는데, 어쩌면 요대 이후 성행했던 거대한 석경당을 제작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사리신앙 바탕으로 경당 제작

 

‘불정존승다라니’가 번역된 7세기 후반 이전에도 중국에서는 경전을 석주에 새긴 경당(經幢)이 만들어지기 시작했지만, 요나라 때 특히 그 제작이 성행한다. 처음부터 경당을 탑의 내부에 봉안하지는 않았지만, 요대에 들어서 사리 신앙이 더욱 유행하게 되고, 법사리의 장엄 또한 다양하게 전개되면서 법사리로서 다라니를 새긴 경당을 탑 내부에 봉안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요의 이런 전통은 어디에서 왔을까? 이면에는 그들보다 먼저 존승다라니신앙을 지니고 있던 발해 사람들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존승다라니 신앙은 발해에서도 유행했다고 생각되는데, 심양에서 발견된 석경당에는 존승다라니가 새겨져 있었고, ‘개원2년(開元二年)’,‘ 심주(瀋州)’라는 문자가 확인되기도 하여 714년에 이미 요동 지방에 존승다라니신앙이 존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현재 일본 시가현(滋賀縣) 오오쯔시(大津市)에 있는 이시야마데라(石山寺)에는 정관3년(861) 발해사신 이거정(李居正)이 전해준‘가구영험불정존승다라니기(加句靈驗佛頂尊勝陀羅尼記)’가 소장되어 있기 때문에 요대 존승다라니신앙의 전통은 발해에서 전승되었을 가능성도 크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이런‘불정존승다라니’에 대한 신앙은 고려에도 전해졌다. 현재 황해남도 해주시 청풍동과 평안북도 향산군 향암리 묘향산 보현사에는 고려시대에 조성된 석경당이 남아 있다. 특히 보현사 석경당이 가장 크고, 조형적으로도 뛰어난데 원래 평안북도 피현군 성동리 불정사에 남아 있던 것을 옮겨 놓은 것이다.

 

 

▲조양북탑 내부에는 법사리로서 다라니를 새긴 경당을 봉안했다.

 


다라니석당이란 다라니불경을 돌에 새겨 기둥처럼 세워 놓은 돌 구조물을 말한다. 기단위에 석주를 2층 혹은 4층, 6층으로 세우고 각 층 사이에 연화나 천개 등을 끼우며, 최상부에는 보주를 얹은 형태이다. 석주에는‘대불정다라니당’이라는 경전명칭을 제목으로 달고 2388자에 달하는 범어 다라니 경문을 새겨 놓았다.
묘향산 역사박물관 학술조사단이 석당을 박물관 보존구역 안으로 이전하기 위해 시행한 발굴조사 과정에서 기단 부분의 원형 사리홈 안에서 고려시대의 석당형 청동탑과 4각 청동거울과 함께‘순화원보(淳化元寶)’가 발견되었다. 이 동전은 1027년 이전에 송나라와의 무역에 쓰이던 송나라 화폐이므로 석당의 건립 시기를 1027년으로 추정하고 있다.


성동리다라니석당은 해주다라니석당과 더불어 현재 남한지역에는 원형이 전하지 않는 독특한 유형의 고려시데 석조물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끌고 있다. 이밖에 경기도 개풍군 송도면 선죽교와 평안남도 평양사 법수교에 범자(梵字)가 새겨진 석당의 일부가 남아 있으며, 남한에선 유일하게 광주시립박물관에 존승다라니 석경당 1기가 소장되어있는데, 광주직할시 서구 임동의 십신사지(十信寺址)에서 옮겨 놓은 것이다.


불교문화재연구소 연구실장 noalin@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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