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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공사상은 존재의 충만

기자명 법보신문

불교, 소유 차원 아닌
존재의 사유 가르쳐
다른 종교와 큰 차이
존재는 ‘마음의 충만’


불교는 기독교만큼 도덕적인 종교가 아니다. 유교는 비록 종교적인 요인이 희박하지만, 도덕적 교설로 가득 차 있다. 그러므로 유교와 기독교는 다 함께 도덕적 교설의 무게로 세상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둘 다 이 세상을 도덕적으로 교화시킬 수 있는 길을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불교는 이 세상의 도덕적 교화를 주목적으로 하고 있지 않다. 불교는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이 소유의 차원을 넘어서 존재의 차원을 사유하도록 가르치고 있다. 이것이 불교와 유교, 그리고 불교와 기독교와의 큰 차이다.


이 점은 간단히 가볍게 생각될  문제가 아니다. 단적으로 유교와 기독교의 신학은 존재론적 차원의 사유를 정면으로 내세우지 않는다. 유교는 세상살이에 대한 도덕적 교화를 주목적으로 하고 있고, 기독교는 하느님을 경배하고 하느님의 도덕적 가르침을 성스럽게 따르는 것을 가장 중요시 여기는 그런 사상을 가르친다. 단적으로 유교와 기독교적 신학사상은 존재론적 사유가 아니고 독일의 철학자 하이데거가 말한 존재자적인 사고방식에 철저한 그런 류에 속한다 하겠다.


존재자적인 사고방식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명사로서 일괄해서 통칭하는 것을 말한다. 명사로서 분류되는 모든 것은 다 존재자적인 성격을 지닐 수밖에 없다. 존재자적인 성격은 명사로서 지시하는 일을 수용하는 그런 사고방식을 말한다. 하늘, 땅, 구름, 바람 등 모든 것이 다 명사적인 범주의 영역에 귀속된다. 명사로서 기록되는 모든 사고방식은 하이데거의 철학적 용어로서 표기하면, 그것은 존재자적인 사고방식에 다름 아니다. 이런 하이데거의 철학이 왜 중요하느냐 하면, 그동안 인류가 명사로서 대표해 온 모든 생각은 다 존재론적인 사유가 아니고, 존재자적인 사고방식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리기 위함이다. 존재자적이고 명사적인 사고방식을 넘어서는 존재론적 사고방식이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다. 추상명사든 구체명사든, 명사로 대표되는 모든 사고방식은 다 본질적으로 존재자적인 성격을 띤다.


우리는 이런 존재자적인 사고방식을 다 존재론적 사고방식이라고 착각하는 잘못을 저질렀다. 과거의 철학이 말한 존재론적 의미는 사실상 존재자적인 의미에 불과하다는 것을 우리가 역설하지 않을 수 없다. 하늘에 무엇이 있느냐고 물으면, 우리는 하늘에 구름과 해와 별들이 있다고 대답한다. 이런 답변이 바로 존재자적인 성격이다. 이런 답변을 우리는 과거에 존재론적 물음에 대한 답변이라고만 단순히 생각해 왔었다. 이런 답변의 오류를 최초로 지적해 준 이가 하이데거이다. 그러므로 하이데거의 철학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오랫동안 존재를 존재자와 동일시하는 사고방식에 얽매어 왔었기에 존재자와 다른 존재가 공(空)이라는 것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어떤 것이 있다’라는 생각을 우리는 존재론적 사고방식이라 믿는다. 그러나 ‘어떤 것이 있다’라는 생각은 존재론적 생각이 아니고, 사실상 존재자적인 사고방식을 말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저런 말은 아무 것도 없는 부재의 허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감각의 영상(시각)에 찍히는 어떤 것의 흔적을 말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육체적 오감에 와 닿는 감각적 흔적은 어떤 것이 오감을 흔들어 놓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런 감각적 인상은 다 존재자적 범주에 속할 뿐이다.

 

▲김형효 교수

존재는 감각으로 지시할 수 없기에 공이라 부를 수밖에 없다. 감각적 지시의 대상인 존재자와 다른 존재는 지시할 대상이 아니므로 무(無)에 가깝고, 그러나 아무 것도 없는 부재의 무가 아니고 가득 찬 마음의 느낌처럼 여겨지므로 충만으로 다가온다. 존재는 가득 찬 마음의 충만이다. 존재와 공과 마음의 충만은 같은 의미를 각각 다르게 읊은 것이다. 저 의미가 내 마음에 느껴질 때에 우리는 불성의 오묘함을 맛본다고 말할 수 있겠다.

 

김형효 서강대 석좌교수 kihyhy@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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