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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장원심 스님의 기도

기자명 법보신문

중생 고통 덜어주려는 목숨 건 보살행

태종6년 7월6일 실록에 기록
가뭄 심해 백성 고통 커지자
흥천사서 기도, 비 내리게 해

 

 

▲장원심 스님이 비가 내리도록 기도했던 흥천사 전경.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1406년 7월, 태종은 깊은 시름에 빠졌다. 몇 달째 가뭄이 계속되면서 기근과 고통을 호소하는 백성들이 늘어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수차례에 걸쳐 종묘와 산천에 기우제를 지냈지만 하늘은 번번이 이를 외면했다. 태종은 백성과 고통을 분담하기 위해 수라상을 반으로 줄였고, 그렇게 좋아하던 술도 먹지 않겠다고 금주를 선언했다. 태종은 또 극형에 해당되는 참형과 교형의 죄수들을 제외하고 옥사에서 모든 죄수들을 풀어주었다. 이쯤 되면 하늘도 태종의 바람을 들어줄 듯 해보였지만 여전히 비는 내리지 않았다. 급기야 태종은 대신들을 불러놓고 “과인이 상벌을 행함에 밝지 못하고, 사람을 씀에 공정함을 잃고, 궁 안의 격식이 지나쳐서 재앙을 부른 것으로 염려되니 직언을 하고 숨김없이 말하라. 내 그것을 고치겠다”고 선언했다. 가뭄으로 인해 죽어나가는 백성들의 수가 눈덩이처럼 불어날수록 이를 지켜보는 태종의 마음은 점점 타들어갔다.


그때 지신사 황희는 태종 앞에 거지 행색을 하고 있는 한 스님을 데리고 와 그를 소개했다. 황희는 “이 자는 장원심이라는 중이온데 흥천사에 들어가 사리전에서 기도를 드리면 비를 내릴 수 있다고 합니다”고 고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궐안 대신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수차례에 걸쳐 기우제를 지내도 내리지 않는 비를 어떻게 내리게 하겠다는 것인지…. 남루한 옷을 입은 스님을 바라보는 시선은 걱정이 앞섰다. 왕 앞에서의 허언은 곧 죽음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원심 스님은 결코 허언이 아니라는 듯 기세가 당당했다. 이 모습을 지켜본 태종도 평소 같으면 ‘어느 안전이라고 감히 누구를 속이려 드느냐’고 불호령을 내려 내칠 것이지만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 어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스님에게 기대를 했는지도 모른다.


태종은 흥천사에 들어가 기도할 것을 윤허했다. 스님이 기도를 시작하자 하늘이 움직였다. 기도 이틀 만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오랜 가뭄을 해갈하고도 남을 만큼 충분한 비가 내렸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백성들과 조정의 신하들은 장원심 스님을 칭송하기 시작했다. 불교에 대한 관심도 차츰 높아졌다.


사실 스님은 이 일이 있기 전부터 저잣거리의 아이들도 그 이름을 알 정도로 유명세를 타고 있었던 인물이었다. 스님은 굶주린 백성이 있으면 밥을 빌어다 먹이고, 추위에 떨고 있는 사람을 보면 옷을 벗어 주었고, 병든 자가 있으면 반드시 힘을 다해 구휼했다. 또 죽은 사람을 장사 지내주고, 도로를 만들고 교량을 건설하면서 보살행을 실천했다. 이런 스님이었기에 백성들은 그를 칭송했다. 태종이 스님을 경계한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비를 내리게 해 준 것이 고맙기도 했지만 그에게 관심을 보이면 지금까지 추진했던 숭유억불의 정책이 힘을 잃을 수도 있었다. 고민하던 태종은 조용히 황희를 불러 “비는 하늘에서 내리는 것이다. 장원심의 자비행이 가상하니 후한 상을 주어 돌려보내라”고 하명했다. 결국 장원심 스님이 비를 내리게 한 기도력을 높이 산 것이 아니라 평소 자비행에 대해 치하를 하겠다는 뜻이다. 태종실록에 의하면 1406년 윤7월6일 태종은 장원심 스님에게 저포 1필과 정포 25필, 미두 20석 등을 상으로 주었다.


이후 장원심 스님에 대한 기록은 더 이상 발견되지 않는다. 때문에 스님이 이후 어떤 사찰에서 주석했으며, 언제 입적했는지 등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조선왕조실록에 나타난 단 몇 줄의 기록만으로도 장원심 스님은 중생의 고통을 결코 외면하지 않았고, 중생을 위해서라면 목숨까지도 걸었던 선지식이었음이 분명한 것 같다.

 

권오영 기자 oyemc@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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