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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투병 중인 거사

기자명 법보신문

항암치료 후 스스로 침잠
고아원 방문 뒤에 밝아져
행복 찾고 설악산에 둥지

 

“스님, 제 친구 좀 만나주세요.”


“무슨 일인데요?”


“제 친구가 대장암으로 수술하고 항암치료도 받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말이 없어지더니 지금은 아예 방에서 나오지를 않습니다.”


“그런 분을 제가 어떻게 만납니까?”


“저희 부부와 그 친구 부부가 같이 잘 만나곤 했어요. 같이 밥이나 먹자고 해서 데리고 오겠습니다.”


며칠 후에 부부가 그 친구 부부와 함께 왔다. 그러나 그 친구는 나무 밑에 앉아 있을 뿐 들어오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잘 오셨습니다.”


다가가서 말을 건네니 대답이 없었다. 곁에 가만히 있었더니 고개를 떨군 채 혼잣말처럼 더듬더듬 말을 꺼냈다.

 

“바람이나 쏘이자고 하더니 절에 와서…….”


“세상에서 가장 친한 친구라면서 걱정을 해서 그렇게 귀한 사람이면 제가 같이 뵙자고 했습니다.”


“친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긴 한숨을 쉬고 다시 말문을 닫았다. 어렵게 대화를 이어보니 투병과정에서 날이 갈수록 자신감은 줄어들고 포기하는 마음이 드니까 두려움이 커지는 듯 보였다. 두 부부가 함께 여행을 자주 다녔다는 말을 듣고 나에게 예정되어 있던 여행을 제안했다.


그는 떠나는 날까지도 고집을 부렸다. ‘스리랑카 간다고 내 병이 나을 리가 있나…….” 수십 번 망설였다고 했다. 옥신각신 끝에 비행기에 올랐지만 비행기 안에서도 한마디 말도 없이 눈만 감고 있었다. 돌아다니는 내내 관심 없다는 듯 고개를 숙이고 억지로 쫓아다닐 뿐이었다.


절에서 운영하는 고아원에 갔다. 여러 차례 들렀던 곳이라 아이들이 아는 체 하며 반가워했다. 가진 것 하나 없는 아이들. 맑은 눈빛, 순수한 웃음, 맨발로 다녀서 뒤꿈치가 갈라져 피가 나는 아이도 있다. 유아방에 들어서니 광주리 안에 8개월 된 아이가 몹시 울어대는데 안아 봐도 달래 봐도 소용이 없다.


그때 그가 아이를 안아주니 살며시 울음을 그쳤다. 우리 모두 놀랍고 기뻐서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그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손도 잡아주고, 옷도 입혀주고 어깨도 토닥거리면서 같이 웃다가 눈물도 흘리면서 아이들과 함께 했다. 그렇게 아이들과 함께 지냈다.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아 그의 고개가 똑바로 세워졌다. 그는 스스로 말하기 시작했고, 무엇보다도 눈빛이 빛나기 시작했다. 스리랑카를 떠나는 날 그는 주머니를 털어 스님 손에 쥐어주고 앞으로도 후원을 계속하겠다고 약속했다. 우리들은 고개 숙인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고 말하면서 한바탕 웃었다.

 

“스님, 제가 속이 좁았어요. 할일이 많네요.” 그는 내게 전화도 하고, 절에도 가고, 산에도 다닌다고 했다. 달라진 모습에 반갑고 고맙고 기뻤다. 어느 날 전화가 왔다. “스님, 저 아주 정리하고 설악산으로 아내랑 들어가요. 핸드폰도 끊고 건강해져서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도현 스님

그가 병을 완전히 극복했는지 아직은 알 수 없지만 부부가 마음을 합해 새로운 길을 찾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행복해 보였다.


고은 시인의 시가 생각난다. “올라갈 때는 못 보았네. 내려오면서 본 그 꽃.”

 

도현 스님 불교상담개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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