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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중국 집안 오회분 5호묘

기자명 법보신문

동아시아 최고의 기술로 제작된 고구려 미술의 꽃

4~7세기 조성 벽화고분
집안 등에 90여기 남아
1500년 넘게 색채 간직
“유례 찾기 힘들다” 평가
표면옻칠 후 채색 ‘추정’

 

 

▲좌로부터 천장 받침돌, 서벽 백호도, 농사의 신과 인물도, 그리고 무덤 내부 습기가 이슬이 되어 맺히는 결로현상. 오회분 5호묘는 벽면이 이슬방울로 가득 차 있음에도 전혀 색이 변하지 않고 오히려 더욱 화려해진 색채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우리 민족의 위대한 문화유산을 이야기할 때 늘 서장을 장식하는 것은 고구려 고분벽화이다. 고구려는 중국을 통일한 수나라와 당나라의 동진을 저지하면서 안으로는 고조선의 옛 땅을 회복하는 대국토 건설을 꾀했던 야심만만한 국가였다.


고구려는 정치적·군사적으로 안정되었던 만큼 문화예술 또한 번성하였는데, 생활풍속에서 내세관까지 삶과 죽음의 모든 면을 무덤안의 벽면에 표현해 놓은 고분벽화야 말로 고구려 미술의 꽃이라 할 만하다.


나는 2011년과 2012년 두 차례에 걸쳐 집안의 고구려 유적을 조사할 때 오회분 5호묘의 내부를 살펴 볼 수 있었다. 이 무덤의 벽화는 중국에서도 1962년에서야 본격적으로 발굴되었기 때문에 일제 강점기 출간된 도록을 위주로 연구했던 우리나라 연구자들은 제대로 된 도판 한 장 볼 수 없었다. 그러다가 1993년 조선일보사가 주최한 “아, 고구려-1500년 전 집안 고분 벽화전”이 개최되면서 벽화의 풍부한 내용과 화려한 색채를 오랜 시간 그대로 간직하고 있던 이 무덤의 진가가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석재에 그려진 벽화가 1500년 넘게 거의 변화 없이 보존된다는 것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일이다. 그 유명한 미케란젤로의 천정벽화 ‘천지창조’도 500년을 견디지 못하고 대대적인 수리를 하는 것을 보면 오회분 5호묘의 벽화에는 대단한 기법적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게 확실하다.


현재까지 알려진 고구려 벽화무덤의 수는 집안에 30여기, 평양과 안악 지방에 60여기 등 모두 90여기이다. 4세기에서 7세기에 걸쳐 약 350년간 만들어진 벽화 고분은 당시 사람들의 내세관이 변함에 따라 무덤의 형식과 벽화의 내용이 다양하게 전개되었다. 안악3호무덤과 덕흥리무덤은 초기 벽화무덤의 대표적인 예이다. 무덤은 여러 칸의 방으로 나뉘어 있으며, 벽면에 묻힌 이의 부부초상과 행렬도, 생전의 모습 등을 그려놓았다. 평양지역의 약수리무덤, 수산리무덤, 집안 지역의 춤무덤, 씨름무덤 같은 중기 무덤에는 초상화 대신 생활풍속도가 주로 그려진다.

 

그리고 불교적인 요소가 등장하여 연꽃, 비천상, 승려의 모습이 나타나기도 하고, 천장에는 사신도가 등장하기도 한다. 후기가 되면 무덤 공간이 네모난 한 칸 무덤이 되고, 생활도가 사라진다. 벽화의 내용은 영혼의 세계를 추상적으로 표현한 꽃무늬나 별자리무늬, 동심원무늬 등이 나타난다. 그런데 후기 고분벽화의 가장 큰 특징은 사신도라고 할 수 있다. 사신은 청룡·백호·주작·현무를 가리킨다. 이들은 각기 동·서·남·북을 지키는 바람신이다. 사신이 호위한다는 것은 그 무덤의 주인공이 자연 질서에 상응하는 권위를 부여받았음을 의미한다. 죽은 이가 신화 속에 나오는 영물의 수호를 받으니 황제와 같은 위세를 누릴 수 있는 셈이다.


사신도는 5세기의 벽화무덤에서부터 나타나기 시작하지만, 벽화의 주제가 되는 것은 6세기 이후이다. 이 시기가 되면 고구려 고분벽화에는 몇 가지 큰 변화가 일어난다. 우선 내용면에서는 묘주의 초상이나 생활상이 벽면에서 사라지고 사신도가 사방의 벽면을 차지하게 된다. 그리고 무덤구조도 앞방, 널방, 곁방의 복잡한 구조에서 한 방의 단순한 구조로 변한 것이다. 하지만 가장 놀라운 변화는 벽화를 그리는 기법의 변화이다.


일반적인 동양의 고대벽화는 초기에 흙벽 위에 직접 그리기 시작하여 점차 백토를 밑층으로 하는 벽화로 발전한다. 예를 들어 감숙(甘肅), 신강(新疆), 산서(山西), 섬서(陝西), 티베트(西藏), 사천(四川), 하북(河北) 등지의 고대벽화를 보면, 대체적으로 백토나 석회를 마감층으로 하며, 채색에는 천연광물질 안료와 연(鉛)과 수은(水銀)을 제련한 화학안료를 사용해 왔다. 그러나 집안의 오회분 4·5호무덤이나 사신총, 평양의 강서대묘, 강서중묘 같은 후기 무덤의 벽화 중에는 바위의 표면을 흙이나 석회로 정리하지 않은 채 석재 위에 바로 채색을 한 것들이 있다.

 

이 기법을 조벽지(粗壁地)기법이라 하는데,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러한 무덤들은 벽면이 이슬방울로 가득 차 있음에도 전혀 색이 변하지 않고 오히려 더욱 화려해진 색채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는 점이다.


오회분 5호묘를 축조했던 고구려인들은 어떤 안료와 매제를 사용하여 그림을 그렸을까? 혹시 공주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두침(頭枕)과 족좌(足座)에 그려진 연화문이나 경주 천마총에서 출토된 천마도와 같이 목재의 표면에 옻칠을 하고 그 위에 채색화를 그린 작품들과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닐까?


두침과 족좌는 목재로 제작되어 표면에 주칠을 하고 금조각을 가늘게 오려붙여서 귀갑문(龜甲文)으로 장식한 뒤 매 귀갑문의 중앙에 연화(蓮花)와 여러 가지 신수(神獸), 어족(魚族) 등을 그려 넣은 것이다. 이들 그림은 비록 칠기에 남겨진 작은 장식그림에 불과하지만 세필로 그림의 윤곽을 그린 다음 그 안에 채색을 첨가한 매우 원숙한 묘사력을 발휘한 본격적인 회화이다.


또 경주 황남동 155호 신라시대 고분(천마총)에서 출토된 6세기경의 ‘천마도(天馬圖)’가 있다. 이것은 넓은 백화수피(白樺樹皮)를 겹쳐 붙이고 옻칠을 하여 그 위에 채색한 것으로 현재까지 알려진 신라의 회화작품으로는 가장 뛰어난 작품이다. 그리고 일본 나라현 호류지(法隆寺)에는 7세기 무렵 고구려계 예술가들에 의해 제작되었다고 생각되는 ‘옥충주자(玉廚子)’가 있다. 주자는 부처님을 모시는 일종의 불감인데 이 주자의 표면을 장식할 때 주, 황, 청록, 흑의 4색을 사용하였다. 황색과 청록색은 기름을 안료에 배합하여 그린 밀타회(密陀繪)기법이고 주색부분이 주칠(朱漆), 흑색의 선도 흑칠(黑漆)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옻칠이라면 목제 공예품의 방부, 방수, 방충의 기능을 위해 사용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진시황릉의 병마용갱에서 출토된 병마용들을 보존처리하고 있는 독일 보존처리팀의 연구보고에 의하면, 약 2200년 전에 테라코타로 제작한 병마용에 옻칠을 매제로 한 채색층이 덮여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진시황 병마용의 옻칠도용은 고대 동아시아의 칠예가 장의예술의 중요한 부분으로 다뤄졌으며 목재는 물론 테라코타와 같은 무기질재료도 사용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오회분 5호묘 입구.

 


석조유물의 표면에 옻칠을 한 예로는 중국 항주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석혜영조석가모니불칠금석상(釋慧影造釋迦牟尼佛漆金石像)을 들 수 있다. 서기 546년 중국 남조(南朝)의 양(梁)에서 제작된 것으로 오회분 5호묘가 제작된 시기와 동시대의 작품이다. 아직도 표면에는 옻칠을 했던 흔적이 남아 있다. 이는 당시 동아시아에서 석재의 표면에 옻칠을 할 수 있는 기술력과 전통이 있었음을 보여 주는 중요한 예이다.


이러한 지식을 바탕으로 5호묘를 관찰한 결과 재밌는 현상을 발견할 수 있었다. 우선 벽면 전체에 엷은 갈색의 도장제가 칠해져 있으며 탈락된 곳의 화강암은 본래 바탕색과 확연히 구분된다. 즉, 화강암에 직접 그려진 것이 아니고 화강암 바탕에 도료가 도장되어 있으며 그 위에 그려진 것이다. 비단에 그림을 그릴 때 색이 번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아교를 바르는 것처럼 돌에도 마찬가지 처리를 한 것이다. 그리고 바탕선이나 채색면이 확연하게 두꺼운 도료적 특징을 갖고 있다. 농사의 신의 눈에는 녹송석이라는 돌을 감입해 놓았는데, 이것은 칠기를 제작할 때 자주 사용하는 재료이기도 하다.


중국의 ‘박물관연구’에 실린 이정평(李正平)의 보고서에 제시된 장춘연구소의 분석 자료에 의하면, 오호묘는 백색(연백, PbCO3), 적색(Fe2O3), 녹색(CuCO3.Cu(OH)2), 홍색(HgS) 등의 안료를 사용한 것을 알 수 있다.


오회분 5호묘는 1985년 개방을 시작하여 보존 등을 이유로 폐쇄하였다가 1990년대 들어와 다시 개방을 시작하여 20여 년 동안 매년 4월에서 10월까지 개방하고 있으며, 일일평균 40~50명이 참관하고 있다. 현실과 연도의 연평균 온도는 11.5˚C이며 현실 연평균습도가 92.82%라고 한다. 이런 환경 속에서 오회분 5호묘의 정교한 벽화가 잘 보존되어 있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며, 이런 것을 가능케 할 수 있는 고대의 도료이자 접착제는 옻칠이라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는 것 아닐까?

 

▲임석규 실장

회벽이나 흙벽에 제작된 벽화는 ‘그린다’는 일차적인 회화적 기법을 구사하였으나 5호묘는 그리는 회화적인 방법뿐만 아니라 금, 옥, 녹송석을 부착하는 공예적인 기술도 과감히 사용하였다. 이는 5호묘의 제작자들이 오랜 벽화기술의 축적으로 회화뿐 아니라 모든 종합적인 기술을 구사할 수 있는 높은 수준에 도달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회벽에 그려진 일반적인 벽화와는 뚜렷이 구별되는 5호묘의 벽화는 당시 동아시아 벽화에 있어서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가장 선진적이고 우수한 것이었다고 하겠다.

 

임석규 불교문화재연구소 연구실장  noalin@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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