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내가 만난 활불-3
36. 내가 만난 활불-3
  • 법보신문
  • 승인 2013.08.01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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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3000m 사원서 닝마파 활불 만나다

홍교 사원의 유일한 활불
초라한 행색에 다소 실망


이방객에도 친근함 가득
내친 김에 궁금증 쏟아내

 

 

▲ 고일패(古日) 홍교사원의 활불이 자신의 제자가 피살당한 것을 가슴아파하며 종교의례를 지내는 장면.

 


2008년 11월23일, 드디어 만났다. 이분을 뵙기 위해 얼마나 많은 물리적 시간과 육체적, 정신적으로 공을 들였는지 모른다. 활불, 티베트인들이 숭상하고 존경하는 깨달은 자, 그는 환생으로 이 땅에 다시 재림한 인간이요 신이다. 그런데 이제야 고백이지만 첫 인상은 상상했던 구도자의 모습이 아니어서 내심 의아했다. 아니 이 분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갸름한 얼굴에 기름기 있어 보이는 콧수염. 볼품없는 뿔테 안경 그리고 나이가 지긋한 할아버지가 아니라 젊었다. 당시에는 실례일 것 같아 나이를 묻지는 않았으나 대략 30대 초반으로 보였다.


고산증세로 헐떡거리며 처음 인사를 나눌 때, 나도 모르게 입가에 웃음이 흘러나왔다. 왜냐하면 앞에 서있는 이분(활불)의 콧수염이 너무 웃겼기 때문이었다. 활불이라 하면 좀 성스럽고 거룩하게 보여야 하는데 이 분의 행색은 매우 초라했고 결정적으로 수염이 팔자모양으로 불균형하게 위쪽으로 굽어져 있었는데 말을 하실 때마다 그 팔자수염이 실룩거리며 움직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조금 실망하여 불경스럽게도 웃고 말았던 것이다.


나의 경솔함을 전혀 느끼지 못했는지 다행히도 활불은 매우 따뜻하고 친근하게 자신의 거처로 안내해 주었다. 11월 눈발이 펑펑 날리던 해발 3000미터 상공의 조그만 암자였다. 공기는 희박하고 눈은 사슴 눈알처럼 둥글고 투명하게 내리던 그날 그렇게 나는 400년간 흑수현에서 영혼의 이동과 환생을 거듭하고 있는 살아있는 티베트의 활불을 만났던 것이다.


기록[阿通]을 살펴보면, 8세기에 들어서부터 티베트불교의 각 종파는 경쟁적으로 흑수현에 전파되었다. 당시 불교종파의 전파는 사원 창건과 신도수 확장으로 이어졌다. 주지하다시피 티베트불교의 특징은 정교합일(政敎合一)의 시스템에 있다. 즉 종교적 수장이 정치의 지도자이기도 한 것이다. 따라서 티베트인들에게 있어서 종교는 그들의 집단의식을 강조하며 민족의 응집력을 강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더불어 이러한 집단의식은 ‘집단기억’(collective memory)이라는 강력한 유대감을 형성하기도 한다. 따라서 중국에서 주장하는 ‘해방’이 이루어지기전 흑수현은 티베트인들이 원형의 삶을 온전히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중국 인민해방군의 일방적인 해방이 이루어진 후 흑수현의 모든 문화적, 민족적 종교 활동은 흑수현에 건립된 통전부(中共黑水工委統戰部)에서 관할하고 있었다. 해방 초 중국정부는 흑수현의 모든 종교 활동에 강하게 대처했으며 사원조직을 해산시켰고 출가한 승려들을 강제적으로 환속시키는 작업에 주력했다. 특히 문화대혁명 시기에 이르러서는 티베트불교의 억누름이 최고조에 이르렀다.


그러나 총과 칼로 티베트인들의 내면을 움직일 수 없음을 깨달은 중국정부는 결국 티베트인들의 마음을 얻고자 경제 보조금과 각종 특혜와 우대 지원책으로 불교사원 복구운동에 앞장섰다.


1983년 4월21~24일 흑수현에서는 처음으로 중국정부가 주관하는 종교공작회의(宗敎工作會議)가 열려 ‘흑수현 불교협회’의 창설을 인가하였다. 이 당시 흑수현 인민정부는 티베트불교사원 재건에 많은 성과를 내었고 사원위원회(寺院委員會)라는 행정조직을 따로 사원 내에 만들기도 하였다. 그러나 알고 보면 이 사원위원회라는 것은 한족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사원의 관리와 감독을 총괄하는 기구의 성격이 강했다. 또한 1987년 3월 흑수현 인민정부에 파격적으로 종교과(宗敎科 종교전담기구)라는 특별담당이 설립되는데 이는 흑수현에서 벌어지는 모근 티베트 종교 활동과 라마승의 관리를 전적으로 담당하는 기구이다. 그런데 이러한 기구들은 속내를 들여다보면 보면 사실상 흑수현 티베트인들의 종교 신앙과 활동을 통제하고 반(反)사회주의 정서의 핵심 인사(주로 라마승)를 찾아내고자 하는 비밀감찰기구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그만큼 이러한 편벽한 시골 지역에서도 티베트불교의 영향력이 힘을 발휘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역사와 내홍을 간직한 흑수현에서 내가 찾은 활불은 티베트불교의 ‘닝마파’(寧瑪派. 홍교)에 해당된다. 이 종파의 교법은 기원전 8세기 인도로부터 넘어온 밀교의 고승 연화생(蓮花生 pad-ma byung-gnas)으로부터 전해졌다. 이는 티베트의 다른 종파에 비해 무려 300년 정도 일찍 창건되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 종파는 구파(舊派)라고도 하는데 ‘구(舊)’는 전수되고 수양하는 밀교의 종류를 말함이다. 인도에서 건너온 밀법은 토번시대 이후로 티베트어로 번역되고 자료로 보관되었는데 신구(新舊)의 두 종류로 분류되었다. 소위 ‘신밀교’와 ‘구밀교’이다.

 

일반적으로 티베트 불교사에서는 런친쌍포[仁桑波] 이후에 번역된 밀교경전을 ‘신밀교’라 칭하고 랑다마(朗)왕의 불교탄압 이전에 번역된 경전을 ‘구밀교’라 구별한다. 닝마파는 구밀교를 그들의 주요경전으로 삼았으며 출가한 라마승들에게 전수하였다. 흑수현지(黑水志)에 의하면 8세기 말 바이뤄두어나(白諾納)대사가 이곳 아패티베트지구에 들어와서 불법을 전파하면서 홍교도 흑수현에 전파되었다고 한다. 현재까지 흑수현에 건재 하는 저명한 홍교사원은 세 개 정도이다. 첫 번째가 더치에랑스(德切朗寺), 두 번째가 나이즈고우스(子寺) 그리고 구르바스(古日寺) 등인데 나는 ‘구르바’ 홍교사원을 방문하고 사원의 활불을 알현한 것이다. 규모가 작은 사원이라 활불은 이분밖에 없었다.


이윽고 활불의 방에서 인터뷰가 이루어졌다. 사실 학술적 인터뷰는 형식적으로 몇 개에 지나지 않았고 나는 이 절호의 기회를 틈타 그동안 품고 있었던 몇 가지 의문을 여쭈어보고 싶었다. 교실과 책에서 이해되지 않았던, 아무리 곰곰이 생각해보아도 마음으로 응납 되지 않았던 부분들. 나는 성급하게 차를 한잔 마시고 기다렸다는 듯이 질문을 던졌다. “스님, 스님은 정말 환생 하신 건가요?” “죽음이 올 때, 어떤 감정이셨나요” (계속)


심혁주 한림대 연구교수 tibet007@hanmail.net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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