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출가 초발심
29. 출가 초발심
  • 법보신문
  • 승인 2013.08.19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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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카락처럼 촘촘한 번뇌 뿌리째 뽑아야

매일 머리카락 자라듯
마음속 번뇌 무성해져
삭발때 내려놓길 발원
세속 물든 옷도 버려야

 

옛날 어느 절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 절에는 스님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 주지스님이 대중스님들에게 말했다. “오늘은 도량의 잡초를 제거하는 운력을 하겠습니다.” 이 말을 마치고 나서 잠시 후에 의외의 일이 생겼다. 출가를 지망하는 젊고 총명한 행자가 삭발도구를 챙겨 주지스님 앞에 놓고, 자기의 머리카락을 삭발해줄 것을 요청하였다. “머리카락은 무명초이니 무명초를 제거하는 일이 무엇보다 급합니다”라고 하였다. 대중스님이 보는 앞에서 주지스님은 젊은 행자의 머리카락을 깎아 주고 말했다. “오늘 대중의 도량운력은 이것으로 마칩니다.” 젊은 출가 지망자인 행자의 머리카락을 깎아 주는 것으로 도량의 풀을 제거한 셈 친 것이다. 정행품 경문을 보자.


“삭발을 할 때면, 중생들이 영원히 번뇌를 여의고 완전한 적멸에 이르기를 발원해야 한다.”


출가하여 수행하는 스님들은 머리카락을 삭발하고 지낸다. 스님들은 머리카락이 짧기 때문에 머리카락이 자라는 것을 더 잘 느낀다. 그렇게 자라나는 머리카락을 번뇌초 또는 무명초라고 부른다. 머리카락이 풀 모양과 닮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매일 머리카락이 자라듯 마음에서 번뇌와 어리석음이 자라기 때문이다. 보통 머리카락 숫자만큼 번뇌가 많다고 말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머리카락 숫자보다 번뇌의 가짓수가 훨씬 많다. 여름날 마당은 잠시 돌보지 않는 사이에 풀이 무성하게 자란다. 우리의 마음도 돌아보며 챙기는 일을 잠시 소홀히 하면, 어느 사이에 마음의 번뇌가 무성하게 자라나 있다. 스님들이 삭발을 할 때마다 머리카락이 떨어져 나가는 것처럼 번뇌도 내려놓을 수 있기를 발원한다.


또 출가할 때면 연비를 한다. 연비란 향을 피워 팔뚝의 일부분을 태우는 것이다. 이것의 유래는 경전에 있다. 경전에 이르기를 “자기를 태워서 중생들을 밝게 비추어주라”고 하였다. 우리는 이 경전의 의미를 잘 새겨야 한다. 우리의 몸을 태운다고 밝은 빛이 나지 않는다. 또 그런 상황을 만나면 사람들이 두려워할 것이다. ‘우리의 몸을 태운다’는 것은 우리가 몸과 마음을 다해 노력한다는 말이다. 출가 수행자로서 열심히 수행하여 성취하고, 수행의 결과로 얻은 이익을 일체 중생들과 기꺼이 나눌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몸을 태워 중생을 이익케 한다’는 말이 된다. 스님들은 출가할 때 팔뚝에 작은 흉터를 남긴다. 향불로 만든 것이다. 이 흉터를 볼 때마다 이렇게 발원한다. “나 스스로를 태워서 중생들을 밝게 비추어주리라.” 경전의 글자 그대로를 따르면서 경전의 의미를 실천하는 삶이 된다.


‘번뇌를 여의고 완전한 적멸에 이르기를 발원해야 한다’에서 ‘번뇌’란 그 뿌리가 집착과 분별 그리고 근본무명인 망상이다. 집착의 특징은 이기적인 몸과 말과 마음의 행위에서 나타난다. ‘모든 악을 짓지 않고 모든 선을 짓는다’는 것은 우리의 이기적인 행위를 극복하고 이타적인 행위를 하는 적극적인 방법이 된다. 이기적인 행위의 밑바닥에는 집착과 분별 그리고 망상이라는 어리석음이 굳게 자리 잡고 있다. 표면적인 거친 번뇌를 없애고 나야 뿌리에 접근할 수 있다. 그리고 ‘스스로 자기의 마음을 깨끗하게 하라’는 것은, 쉼 없이 동요하는 미세 번뇌인 집착, 분별 그리고 무명을 안정시키고 제거하라는 가르침이다. ‘적멸’이란 적정(寂淨)과 식멸(息滅)이라는 말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적정이란 번뇌가 고요한 상태를 지나 청정해진 상태이고, 식멸이란 번뇌의 뿌리가 그 동요를 쉬고 소멸하여 작용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우리의 몸에서 번뇌를 상징하는 머리카락을 깎는 순간에, 모든 중생이 번뇌를 여의고 완전한 적멸에 이르기를 발원하는 것이, 출가를 목적으로 처음 삭발할 때의 올바른 마음가짐이다. 그리고 이 마음이 이번 생만 아니라 세세생생 이어지기를 발원한다.


“가사를 입을 때면, 중생들의 마음이 물들지 않고 대선도(大仙道)를 완전히 갖추기를 발원해야 한다.”


‘가사’는 스님들의 옷이다. 가사는 탁한 색으로 물을 들여 입는다. 밝고 선명하여 세상의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색은 피한다. 요즘 말로 하면 채도와 명도를 낮게 잡아서 탁하게 염색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옷의 기능은 그대로 남지만, 그 옷을 대상으로 아무도 탐심을 일으키지 않는다. 처음에는 회흙색과 탁한 청색 그리고 탁한 자색으로 하였으나, 지금은 청색이 사라졌다.

 

경문의 대선도(大仙道)란 신선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대선은 부처님을 가리킨 것이니 대선도는 불도, 즉 불법을 말한다. 세속의 옷을 벗고 물든 가사를 입을 때, 우리의 몸과 말과 마음의 습관을 물들이라는 것이다. 무엇으로 물들일 것인가. 부처님의 법으로 물을 들여야 한다.

 

▲도암 스님.

세속에 물이 든 옷과 습관을 벗고, 대선도(大仙道)인 부처님의 법에 맞는 옷을 입고 습관을 물들이라는 말이다. 부처님의 법에는 소승의 법이 있으니 범부가 아집을 끊는데 올바른 길을 안내한다. 대승의 법은 중생의 법집 즉 법에 대한 집착을 끊도록 안내한다. 그리고 일불승은 성숙한 보살을 성불의 길로 안내해 준다.

 

도암 스님  송광사 강주 doam1991@hanmail.net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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