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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내가 만난 활불들-5

기자명 법보신문

화장실도 없는 백교사원
배설 문제로 고통 겪다
활불이 전해준 가르침에
마음 돌리고 자연에 순응

 

 

▲‘즐궁곰빠’ 사원에서 필자의 의식주 어려움을 해결해주었던 라마승들과 함께.

 

 

불편하다. 지금 당장 배 속의 똥을 해결해야 하는데 하지 못하고 있다. 벌써 3일째다. 그런데 이곳은 아무리 둘러봐도 화장실 모양새를 한 건물은 보이지 않는다. 여기도 인간사는 세상인데 스님이라고 안 싸고 살 수 없는 법. 순간, 법당 귀퉁이에서 모습을 드러낸 한 스님이 걷는 모양세가 좀 이상하다. 저 폼은 화장실을 찾는 전형적인 몸의 형태다. 그런데 스님이 걸어가다가 갑자기 땅 바닥에 그냥 주저앉았다.


스님의 얼굴이 잠시 상기되고 힘을 준다는 표정을 감지했다. 정말 볼일을 보는 것일까? 얼마 뒤 스님은 그 자리에서 일어나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저벅저벅 걸어갔다. 아무리 급해 노상해서 일을 봐도 휴지를 써야 하는 게 인간의 방식 아닌가? 확인하고 싶어졌다.


부풀어 오른 배를 쥐어 잡고 현장을 보았다.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이곳에서는 이렇게 일을 보는 것일까? 믿을 수 없었다. 이곳은 역사와 전통을 900년 동안 간직해온 티베트 최고의 사원이다. 그리고 수행 중이신 점잖은 스님들이 어찌 불경스럽게 아무데서나 일을 본단 말인가? 의심을 풀지 않고 혼자 중얼거리다 배를 움켜잡고 항문에 힘을 주며 가까스로 사원의 행정을 주관하시는 스님을 찾아갔다.


“스님, 여기선 어떻게 일을 보나요?”


“그냥 앉아서 싸면 됩니다.”


“네? 정말인가요?”


“그럼요. 여기는 휴지도 필요 없습니다. 여기는 해발이 너무 높아서 화장실을 만들 수도 없고 자재도 없습니다. 그럴 필요도 없지요. 다들 그렇게 살아 왔습니다.”


너무 놀라서 한동안 말도 못하는 것이 불쌍했는지 아님 부풀어 오른 배를 쥐어 잡고 있는 내 꼴이 웃겼는지 스님은 친절하게 제안을 했다. 나를 위해 특별히 화장실을 만들어 줄 테니 내일까지 참아 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고맙고 기뻐서 다시 한 번 배를 움켜잡고 꼬박 하루를 기다렸다. 다음날 스님은 사원의 끝자락 벼랑으로 나를 데려갔다.


“당신을 위해 특별히(?) 만들었습니다. 자, 올라 서 보시지요.”


그런데 나를 위해 특별히 만들었다는 화장실은 하늘 위의 아슬아슬한 절벽위에 딸랑 두 개의 판자를 사람 어깨 넓이로 벌여 놓은 게 전부였다. 순간 토악질이 나고 어지러웠지만 성의가 감사해서 발을 내딛었다. 하지만 저 아래 밑바닥에서 휘몰아 올라오는 히말라야의 바람에 감히 바지를 내릴 생각은 엄두도 안 나고 여차 하면 똥 싸다 떨어져 죽을 것만 같았다. 갑자기 이 상황이 슬퍼져서 다시 바지를 부여잡고 마당에 나와 맥없이 하늘을 쳐다보았다. 한동안 그렇게 있는데 마음속에서 ‘똥 싸다 죽느니 여기 하는 방식으로 한 번 해봐’ 하고 나에게 말을 건네 왔다. 순간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래 나도 그냥 걷다가 앉아보자. 그리고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일어나 씩씩하게 걷는 거야. 바지에 싸는 것 보다야 그 편이 훨씬 상쾌하겠지….’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보란 듯이 걷다가 적당한 장소를 골라서 바닥에 앉았다. 그런데 마음대로 되질 않았다. 앉기만 하면 나올 줄 알았는데 온 몸의 감각기관이 긴장하고 예민해져서  엉덩이가 사방의 눈치만 보고 있었다. 그리고 나의 눈알은 정신없이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오늘은 안 되나 보다 하고 일어서려는 순간 저 편에서 한 스님이 걸어오더니 내 옆쪽에서 자리를 잡더니 바로 배설을 시작했다. 사람의 훈련된 ‘의식’이 대단하다는걸 처음 느꼈다.  스님은 일을 다 봤는지 얼마 뒤 아무 말도 없이 그냥 일어나신다. 그 찰나 나도 그동안 묵혀왔던 것들을 배설했다. 그리고 일어나 천천히 걸었다. 처음 3분이 힘들었다. 깨끗하지 못한 느낌, 이걸 어쩌나 하는 느낌이 대략 3분정도 지속됐다. 그래 뭐든 일의 시작은 처음 한 순간이 어려운 거야. 처음만 온전히 몰입하면 그 다음부터 의식과 육신은 스스로 굴러가는 거야.


이곳은 어디이며 나는 왜 여기에 왔는가? 이곳은 티베트의 심장 라싸에서 동북방면으로 버스를 타고 대략 10시간 떨어진 해발 5,000미터 상공 절벽위에 자리 잡은 즐궁곰빠(直貢替寺)이다. 이 사원은 티베트불교 중에 백교 사원에 해당된다. 백교는 세부적으로 8개의 종파로 나누어지는데 그 중 즐궁가쥐파(直貢喝擧派)의 종주 사원이 바로 이 사원이다. 너무 높은 곳에 위치해 이곳은 아무것도 없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다.(오늘날은 들어온다고 한다.) 오직 천년 세월을 우직하게 수행하고 있는 500여명의 라마승과 62년 동안 지상세계로 한 번도 내려가지 않고 수행만 하는 백교의 수장 ‘니마런보체’(顛津尼瑪仁欽貝)활불만이 거처하는 곳이다. 그는 백교의 교법(敎法)과 현‧밀교(顯/密敎)의 경전에 능통하고 환생을 주관하신다. 나는 동굴 속의 그 분을 알현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


또 이곳에 온 다른 이유는 구체적으로 크게 두 가지가 더 있다. 살펴보면 티베트 역사 연구에 있어 대다수(학자, 기자, 작가, 신도)가 성공자의 역사 혹은 성공한 정권의 입장과 안목으로 역사를 서술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면 싸지파(薩迦派, 花敎)정권이나 겔룩파(格魯派, 黃敎)정권의 흥기와 성공 등을 들 수 있는데, 백교와 같이 잠시 세력을 잡았다가 종교싸움에서 패하여 변경으로 물러난 종파는 학술적 연구 성과가 거의 없는 실정이다.


자료를 살펴보면 13세기말 본 종파(直貢喝擧派)와 싸지파(薩迦派)간의 치열한 세력다툼이 있었다. 정권다툼은 1290년 싸지파(薩迦派)의 승리로 종결됐다. 이로 인해 백교는 중앙(라싸)에서 사원이 거의 소멸되는 참담한 지경으로 몰리며 변경으로 밀려나는 상황이 된다. 이를 두고 티베트 역사는 ‘린뤄(林洛)’(意爲寺院之變: 사원의 변)이라 칭한다.


1296년 백교는 다시 세력을 되찾는 듯 했으나 기타 종파들의 견제 대상이 되어 더 이상 티베트불교의 핵심 종파로 자리 잡지 못한다. 하지만 티베트 사회에서 본 종파가 가지는 의미와 영향력은 실로 무시할 수 없는 존재이다. 비록 정권싸움에서 밀려 라싸가 아닌 변경으로 물러나 근근이 버티고 있는 상태이나 줄곧 즐궁곰빠(直貢替寺)라는 절대 구심력을 가지는 핵심 사원이 존재하고 있고 아직도 적지 않은 티베트 신도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오늘날에도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따라서 나는 이 종파와 이 사원을 추가적으로 알고 싶었다.


또 불교사원에 장기 거주하면서 현대화와 개발의 조류 속에서 이 전통적 사원이 어떻게 변화하고 응전하며 버티고 있는지 엿보고 싶었다. 라싸의 유명한 황교사원인 세라곰빠(色拉寺)와 제붕곰빠(哲蚌寺)는 이미 오래전에 현대화의 체제로 전환했기에 매력이 없다고 생각했다. 도심에 위치한 거대 사원보다는 비교적 열악한 환경에서 그 명맥을 온전히 유지해온 티베트 스타일의 전통사원이 보고 싶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내가 이곳에 온 근원적 이유는 이 사원은 세계 3대 천장터 중의 하나인 ‘즐공천장터’가 있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다. 

 

심혁주 한림대 연구교수 tibet00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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