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룸텍 다르마 차크라 센터-上
10. 룸텍 다르마 차크라 센터-上
  • 법보신문
  • 승인 2013.09.02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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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한 주인 돌아오길 기다리는 까규파의 총본산

16대 까르마파 1959년 망명 이후
시킴국왕 도움 받아 옛 사원 중창


티베트 출푸사원 본딴 까규파 본산
환생한 현 까르마파 인도 망명 후
룸텍사원서 주석할 것 예상 됐지만
인도정부 불허로 다람살라 머물러
곳곳 ‘귀환 허락해 주세요’ 스티커
고단한 티베트불교의 현실 대변


까규파 법맥 상징 ‘검은 모자’만
주인 없는 사원 안에 소중히 보관

 

 

▲갱톡에서 서쪽으로 24km 떨어져 있는 룸텍 다르마 차크라 센터는 티베트 4대 종파의 하나인 까규파의 총본산이다. 16대 걀와 까르마파가 인도로 망명한 후 이곳으로 찾아오자 시킴왕국의 10대 국왕은 74에이커의 땅을 보시해 이곳에 사원을 중창하도록 했다.

 


갱톡에서 룸텍까지 이어지는 도로는 작고 굽이진 산길이다. 서쪽으로 24km, 그리 먼 거리는 아니지만 길가의 작은 마을에서 마침 열린 결혼식 덕분에 도로가 꽉 막혔다. 차 두 대가 비켜 겨우 지나갈 수 있는 도로변에 결혼식 하객 차량이 줄지어 주차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오가는 양쪽의 차들이 좁아진 도로 한 가운데서 서로 얼굴을 맞대고 멈춰버렸다. 길가에 차를 세워놓은 운전자는 어디 있는지 찾을 길이 없고, 꼬리를 물고 멈춰버린 차들로 도로는 금방 주차장이 돼 버렸다. 차가 비켜설 곳도, 우회도로도 없어 1시간 가량을 차 안에서 보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뾰족한 수가 없다. 이곳서 룸텍까지 걸어서 2시간, 운전기사에게 조심해서 빠져나오라고 당부를 하고 차에서 내려 걷는다. 오도 가도 못한 채 발이 묶인 차량 행렬을 거슬러 20여 분을 걸어가니 차들이 드문드문 줄어들고 한적한 산길에 접어든다.


차를 타고 지나갔다면 보지 못했을 길가의 꽃나무들과 맞은 편 산봉우리에 빼곡히 들어서있는 갱톡의 건물들이 독특한 분위기로 어우러지며 시킴의 풍경을 빚어낸다.


그렇게 걷기를 1시간 여, 자동차 한 대가 경적을 울리며 따라온다. 우리 차다. 어떻게 그 도로를 빠져나왔는지 모르겠다. 운전기사에게 물어봐도 별문제 없었다는 뜻으로 손만 휘저으며 싱글싱글 웃는다. 참 미스테리한 일이다. 어찌 되었든 덕분에 남은 길은 편하게 됐다. 마침 산길이 가파른 오르막으로 접어들었다. 해발 1700m, 룸텍 다르마 차크라 센터가 가까워졌음이다.


룸텍 다르마 차크라 센터는 정식 명칭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룸텍곰파, 우리에게는 룸텍사원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정식 명칭은 올드룸텍으로 분류되는 룸텍곰파와 1960년대에 새로 건축된 중앙법당, 그리고 까르마 스리 날란다 불교연구소 등을 아우르는 통칭이다.


룸텍사원은 티베트불교의 4대 종파 가운데 하나인 까규파의 총본산이다. 동시에 까규파의 지도자인 까르마파의 공식 주석처이기도 하다. 티베트불교 내에서도 정통 수행 종파임을 자부하는, 동시에 달라이라마가 이끄는 겔룩파에 버금가는 영향력을 가진 까규파의 총본산이 이곳 시킴에 위치하게 된 것은 중국의 티베트 공격 때문이었다.

 

까규파의 본산은 원래 티베트 라싸의 서북쪽에 위치하고 있는 출푸사원이었다. 물론 티베트에서는 지금도 출푸사원이 까규파의 총본산으로 여겨진다. 이 사원은 까규파의 지도자이자 제1대 까르마파로 추존된 두슘 켄빠 린포체에 의해 1180년 그의 고향에 세워졌다. 예언에 따라 입적한 후 그의 환생자가 2대 까르마파의 자리를 승계했고 2대 까르마파는 원나라의 세조로부터 티베트의 법왕임을 상징하는 검은 모자를 하사받게 됐다. 그때부터 까르마파는 흑모파, 즉 검은 모자파로 불리게 됐다.


이러한 역사를 거쳐 출푸사원은 까규파의 본산으로 위상을 높였고 몇 차례 지진으로 피해를 입기도 했지만 매번 복원과 중창되며 20세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1954년 중국이 티베트를 침략하고 1959년 라싸의 민중 봉기가 실패로 끝난 후 달라이라마와 함께 16대 까르마파인 걀와 까르마파도 이곳 인도로 망명했다. 그러나 인도 다람살라에 도착한 후 곧바로 달라이라마와 헤어져 갱톡으로 발길을 돌린 걀와 까르마파는 1961년 당시 시킴왕국의 10대 국왕이었던 따시 남걀로부터 룸텍에 74에이커(299,710㎡)의 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이곳에 사원을 세웠다.

 

 

▲룸텍사원은 입구 뿐 아니라 경내 곳곳에서 총을 든 무장 군인들이 삼엄한 경계를 펴고 있다. 환생한 17대 까르마파의 귀환을 요청하는 스티커가 말해 주듯 이곳은 인도로 망명한 후 지금까지 다람살라에 머물고 있는 17대 까르마파의 주석처이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한가하고 평화롭지만 사원 전체에 감돌고 있는 팽팽한 긴장감 속에는 인도와 중국의 미묘한 줄다리기, 그리고 고단한 티베트의 현실이 뒤섞여 있다.

 


룸텍에는 원래 제9대 까르마파인 왕축 도르제(1555-1603)에 의해 세워진 사원이 있었다. 왕축 도르제는 남부 티베트를 비롯해 몽골, 부탄 등 주변의 여러 지역을 만행하며 가르침을 펴고 사원을 건립한 스님으로도 유명하다.

 

당시 시킴의 국왕은 왕축 도르제의 명성을 듣고 시킴 방문을 요청했으나 직접 방문할 여건이 되지 못해 자신을 대신할 고승 한 명을 보냈다. 그 고승은 시킴 지역에 세 개의 사원을 건립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룸텍사원이었다. 그러나 걀와 까르마파가 도착했을 때 룸텍 사원은 거의 폐허나 다름없었다. 걀와 까르마파는 떠나온 티베트의 까규파 본산 출푸사원의 모습을 본 따 이곳에 새롭게 사원을 세워 까규파의 해외 총본산으로 삼았다.


티베트의 출푸사원은 1960년대 문화혁명을 거치며 심각히 파괴돼 그 규모가 현저히 줄어들긴 했지만 여전히 까규파의 본산이라는 명맥을 이어가고 있었다. 망명 후 해외포교에 전념하던 16대 까르마파가 1981년 미국 시카고에서 입적한 후 1992년 그의 환생으로 지목된 오겐 도르제, 바로 17대 까르마파가 출푸사원에 주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출푸사원에 얌전히 머물며 중국정부의 꼭두각시로 키워질 줄 알았던 까르마파는 그러나 2000년 티베트를 탈출, 달라이라마가 있는 다람살라에 도착하며 세계를 놀라게 했다. 당시 만14세의 소년에 불과했던 까르마파의 망명은 세계의 이목을 끌었고 중국정부는 이에 강하게 반발하며 인도 정부에 망명을 허락하지 않도록 압력을 가했다. 결국 2년여가 지난 2002년에 이르러서야 우여곡절 끝에 까르마파는 인도정부로부터 난민지위를 인정받았다. 이제 그가 까규파의 해외 본산인 룸텍사원으로 가 17대 까르마파의 법좌에 앉게 될 것이라고 사람들은 예상했다. 그러나 10여 년이 훌쩍 지난 오늘날까지도 까르마파는 그가 전생에 세우고 머물렀던 룸텍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인도 정부가 까르마파의 룸텍 행을 허가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룸텍이 중국 접경 지역에 가까워 중국의 스파이로부터 암살당할 위험이 높다는 것이 표면적인 이유이지만 사실 중국과의 관계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인도로서는 그가 접경지인 룸텍에 머무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울 뿐 아니라 룸텍에서 17대 까르마파의 법좌에 앉음으로써 룸텍이 티베트에 남아있는 출푸사원을 대치하는 명실상부한 까규파의 본산이 되는 것 자체가 중국정부를 자극하는 것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법좌가 비어있는 룸텍사원에는 까르마파의 귀환을 요구하는, 아니 인도정부에 호소하는 스티커들이 곳곳에 붙어있다. ‘17대 까르마파가 시킴 룸텍사원에 있는 그의 자리에 앉을 수 있도록 부디 인도 정부는 허락해주세요’라는 스티커에는 인도와 중국이라는 대국 사이에서 눈치를 보며 고단한 망명생활을 이어갈 수밖에 티베트의 단면이 흐르고 있다.


그렇다면 까르마파가 없는 룸텍 사원은 주인없는 집일까? 엄밀히 따지면 그렇지만도 않다. 이곳에는 까규파의 상징인 검은 모자가 봉안돼 있다. 16대 까르마파가 인도로 망명하며 소중히 챙겨온 이 법왕의 상징은 룸텍사원 깊숙한 곳에 소중히 보관돼 있다. 이 모자는 까르마파에게만 전수되는 까규파의 상징으로 매우 중요한 의식 때에만 까르마파가 이 모자를 쓴다고 한다. 이 모자에 얽힌 전설은 이렇다.


1대 까르마파인 두슘 켄빠 린포체가 계곡에서 깊은 명상에 들어 깨달음에 이르자 다끼니라 불리는 수많은 수호신들이 나타나 그에게 예배했다. 그들은 모리카락 한 올씩을 뽑아 모자를 만들어 린포체에게 씌웠는데 이것이 이후 까규파에게 흑모파라는 별칭을 안겨준 검은 모자다. 이 모자는 까르마파의 머리 위를 날아다닌다고도 하고 천상에서 왔기 때문에 언젠가는 천상으로 돌아가 사라질 것이라도 한다. 이 모자를 일반에 공개하지 않는 이유도 아마 모자가 훌쩍 날아가 사라질까 걱정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비록 까르마파는 아직 이곳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지만 그의 권위와 법력을 상징하는 검은 모자가 룸텍 사원에 머물고 있으니 까규파의 법맥과 전통이 이곳 룸텍사원에 이어지고 있음이다. 그런데 룸텍사원 입구에서부터 총을 든 군인들이 사원을 지키고 있다. 신분증과 가방을 모두 검사하고 나서야 출입이 허락된다. 사원에 발을 들이기부터가 쉽지 않다. <계속>


인도 룸텍=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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