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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원성 보살

기자명 법보신문

일타 스님 시봉한 유발상좌
사소한 말 속에도 신심 가득
수행자의 언행 돌아보게 돼

 

일찍 잠을 깼다. 지난여름 더위에 언제나 창을 열어두고 잠을 잤다. 열어두고 자던 창으로 들어온 찬바람에 잠을 깬 것이다. 가을이 왔나보다. 매일 인사보다 먼저 나누웠던 더위 이야기가 벌써 사라졌다. 참으로 무상이라는 말이 우리의 주름에서만 느껴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들은 늘 대화하며 산다. 말을 하고 말을 들으면서 상대의 생각과 사상을 알게 되고 삶의 가치도 말에 묻어 전해진다. 나의 말로인해 나의 모습이 각인되는데도 너무나 쉽게 말해버리는 것 같다.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면서는 여러 번 다듬으면서도 정작 나의 인격이 그려지는 말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출가행자들이 공부하는 글 중에 ‘계초심학인문’이 있다. 처음 발심 출가한 사람들을 경계하는 글이다. 경계하는 글이다 보니 하지마라, 삼가라, 이렇게 해라하는 잔소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계초심학인문의 내용만 잘 익히고 따른다면 별 달리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

 

대객언담(對客言談) 부득양어가추(不得揚於家醜) 단찬원문불사(但讚院門佛事)


손님을 맞이하여 말할 때 절집의 좋지 않는 일을 드러내지 말며 다만 사찰의 부처님 관련된 일만 찬탄해야 하느니라.

 

절에 오는 사람들에게 부처님을 찬탄하고, 환희심 나는 이야기를 해야지 불평스럽게 일상의 누추한 얘기는 하지 말라는 말이다. 부조리를 숨기라는 뜻이 아니고, 상대에게 환희심이 일어나는 대화를 나누라는 말이다. 걱정과 불평의 얘기를 잔뜩 듣고 일어서는 자리는 참 무겁기 마련이다.


대화중에 일구어진 상대의 이미지로 인해 잊히지 않는 사람이 있다. 부산 연꽃모임을 오래토록 이끌고 있는 대원성 보살님이다. 만나 대화 나눌 시간이 잦지 않아 전화로 대화 할 때가 많다. 보살님은 내가 출가하기도 전부터 일타 큰스님을 무척 따르며 유발상좌 노릇을 하고 있었다. 노스님 앞에서 사미인 나보다 대원성 보살님의 자리가 더 컸다. 그런데 지금도 대화할 때면 보살님이 더 얘기를 많이 한다. 왜 그럴까 생각해 본적이 있다. 이유는 간단했다. 대화를 할 때 나 자신의 주제가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보살님의 대화주제는 항상 한결 같다. 노스님과 함께할 때 신심 나던 얘기며, 신행활동에서 환희심 나는 얘기며, 요즘 와서는 “손자 녀석이 부처님과 노스님을 닮은 말과 행동을 한다”며 신기해하면서 얘기하는 시간이 대부분이다. 보살님과 전화를 마치고나면 내 맘은 부처님 세상에 거닐게 된다. 뭔가 주객이 바뀐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시간이 흐를수록 되새김질 하는 맛이 있다.


말 나온 김에 더하자면 일타 큰스님 입적 후 보살님은 자기 집 방 한 칸에 빈소를 마련해 조석으로 예를 올리고, 절을 하고, 스님이 가르치신 참선을 3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했다. 가끔 자신은 노스님 유발상좌이기 때문에 노스님을 중심으로 내게 고모라고 우기기도 한다. 신도라고 단순히 생각하면 어이없는 일이지만 노스님과 부처님을 향하는 마음과 말과 행동을 보면 오히려 나 자신이 부끄럽다.

 

보살님은 처녀 때 발원했다고 한다. 남편감으로 불자이고, 자신의 신행활동에 간섭하지 않고 도움을 주고, 안정적인 직장을 가져서 불교와 사찰에 도움을 줄 사람을 만나도록 기도 했단다. 큰스님께서 축원해주신 덕분에 소원이 이루어졌다고 늘 자랑한다. 온통 부처님을 향하는 마음으로 늘 고마워하는 삶을 사는 사람의 향기에 나도 잔잔한 기쁨을 누리는 것 같다.

 

▲성원 스님
가을 찬바람은 오늘 성찰의 시간을 가지도록 하기 위해서 몰래 창을 넘어 나를 깨웠나보다.


제주 약천사 주지 성원 스님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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