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내가 만난 활불들-6
39. 내가 만난 활불들-6
  • 심혁주 교수
  • 승인 2013.09.10 16: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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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불은 티베트 영혼공동체 이끄는 중심”

즐공 사원은 백교의 종주
천장 전통 고스란히 계승
작은 동굴서 만난 활불
짧은 만남이었지만 감명

 

 

▲즐공 사원에는 황금지붕을 가지고 있는 특별한 법당이 있다. 이는 대만의 티베트불교 신자가 8000만 원 정도를 기부해서 만들어진 것이라 한다.

 


즐공 사원에는 매우 흥미로운 전설을 간직한 법당이 따로 있다. 바로 대웅전 뒤편에 지붕을 황금(?)으로 휘감은 휘황찬란한 이름 모를 법당이다. 법당의 간판에는 ‘라예티(拉耶替)’라고 쓰여져 있고 그 옆에 나무 기둥에는 흐릿한 글씨가 박혀져 있는데 ‘단멸생왕악취지문(斷滅生往惡趣之門)’이라 쓰여 있다.


현생의 악업을 끊어주는 문이라? 그런데 정말 황금일까? 도무지 궁금해서 법당을 지키는 라마승에게 물어보니 의심이 나면 직접 지붕에 올라가 이빨로 깨물어 보라고 한다. 이런 오지 절벽에 아슬아슬하게 붙어 있는 사원에 어떻게 황금이람? 암튼 무료한 사원생활에 보물선을 발견한 듯해서 매일 그곳을 어슬렁거려 보았지만 아무도 법당 안으로 데려가 주지 않았다. 법당은 항상 자물쇠로 굳게 잠겨져 있었으며 내부는 공개되지 않았다. 한 달을 더 기웃거리고 난 다음에야 이 법당은 전설적인 초대 활불의 법구가 보존되어 있다는 사실과 죽은 시신이 천장을 하기 위해서는 이곳에 하루 동안 방치(?)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이 사원을 최초에 창건한 활불의 법구가 저 안에 온전히 모셔져 있다는 것이다. 활불의 원명은 줴바·지텐송공(覺巴·吉天頌恭, 1143~1217)이며 그는 용수(龍樹)보살의 화신으로 받들어졌다.


그는 중국 청해성(青海省)옥수(玉樹)출생이며 25세에 파무주파(帕木竹巴) 대사를 스승으로 받들어 백교의 전통적인 교법(敎法)과 현·밀교(顯·密敎)의 일체를 전수 받았다고 한다. 모시던 스승이 원적(圓寂)한 후에는 ‘야(耶)’라는 지역으로 들어가 동굴에서 패관수행을 6년간 정진한 끝에 현교와 밀교의 심오한 내공을 바탕으로 인과(因果)법칙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 그리고 1179년, 37세 때 그는 즐궁(直貢)이라는 이 지역에서 300여명의 제자를 받아들여 즐궁티스(直貢替寺)를 창립하였다. 이때부터 즐공사원의 역사는 시작되었고 백교의 종주사원이 되었다. 더욱 흥미로운 이야기는 이 법당이 망자들에게 아주 인기가 많다는 사실이었다.


티베트인들에게 이 사원이 인기가 많은 이유 중의 하나는 이 사원이 티베트에서 천장(天葬)의식이 가장 전통적으로 전승되고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현지 티베트 사람들 사이에서 이 법당은 천장의식 하루전날 반드시 사원안의 특정한 장소, 즉 라예티(拉耶替)법당에 시체를 하룻밤 방치 한 후, 그 다음날 이른 아침 천장대로 옮겨지는 대기의 장소이다. 이유는 이 법당은 고대로부터 믿기지 않는 전설이 내려오기 때문이었다. 사연은 이렇다. 어느 날 사원의 창건주 니마런친베(顛津尼瑪仁欽貝)가 ‘라예티’에서 말했다.


“이 법당을 한번이라도 오는 자들이여, 그 순간부터 그대들은 현생의 악업이 사라지리라. 따라서 시체를 이송하는 가족들이여, 천장 터를 가기전날 반드시 시체를 이 법당 앞마당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하시오. 그리고 주술사로 하여금 사원의 밀법의식을 받으시오. 그리하면 망자의 영혼은 반드시 좋은 곳에서 환생할 것이다.”


보아하니 오늘도 이 법당 앞에는 흰 보자기에 싸인 2구의 시체가 조용히 누워 있다. 저들은 정말로 죽은 것일까? 죽음의 정의는 무엇일까? 육신의 기능과 호흡이 멈추었다고 죽은 것일까? 내가 알 수 없는 묘한 기분에 사로잡혀 멍하니 그 주위를 배회하고 있는데 친절한 라마승(이 라마승은 아침마다 나를 위해 따뜻한 물을 준비해 준다.)이 나에게 다가오더니 조용히 말한다. “원하시던 활불을 내일 알현 할 수 있습니다.”


다음날 아침, 언제나 그랬듯이 그 친절한 라마승, 롭덴은 아침 일찍 나를 데리러 왔다. 설산에서 내려온 차디찬 설수(雪水)를 한잔 마시고 우리 둘은 아무 말도 없이 사원 뒷길로 20분 정도 걸어갔다. 뜻밖에도 커다란 대문이 나왔다. 대문 앞에는 덩치는 작지만 단단해 보이는 라마승이 우리를 반긴다. 수행중인 활불의 시중을 드는 시봉으로 보였다. 롭덴이 무어라 이야기를 하자 이내 문이 열리고 한 발 들어설 수 있었다. 그런데 ‘아니 무슨 동굴이 이래?’ 동굴에 응접실도 있고 저안에 문이 또 있다. 평소 상상했던 동굴 속의 그림이 아니다. 또 다른 조그만 문을 열고 들어서니 어둠속에 할아버지 한 분이 조용히 앉아 있었다. 두 평 남짓의 조그마한 방, 야크버터 썩는 냄새와 때가 묻은 경전들 그 중심에 깨달은 분이 존재한다. 미리 준비해간 선물을 공손히 바치고 조용히 앉았다. 10분 정도의 시간만이 주어졌는데 정적만 흐른다. 활불은 티베트 스타일의 사탕(?)하나를 바구니에서 꺼내 직접 건네주고는 여기 왜 왔냐고 물어보신다. 활불은 내가 배운 티베트어와 다른 언어를 구사하셨다. 당황스러웠다. 시간이 좀 걸렸지만 옆에 앉은 친절한 라마승을 통해 나의 대답을 전달했다.


“천장을 보러 왔습니다.”


“아, 그래요. 당신은 전생에 혹시 이곳의 라마승이 아니었는지 몰라요? 그러지 않고야 어떻게 이곳을 제 발로 찾아와서 천장을 본다고 해? 안 그래요?”


무슨 말씀인지 처음에는 못 알아들었다. 다시 물었다. “이 사원에서 당신의 존재는 무엇인가요?”


통역이 잘 되었는지? 아님 다르게 전달됐는지 활불은 그냥 웃는다.


“이곳은 티베트불교를 공부하는 곳입니다. 나는 평생 그것을 공부하고 있지만 여전히 부족합니다. 활불의 존재는 티베트인들이 원하는 것이고 그것만이 티베트가 하나의 영혼 공동체로 같이 갈 수 있는 방법입니다.”


시간이 촉박해 나는 바로 물었다.


“지금 티베트가 겪고 있는 곤경은 무엇인가요?”


활불은 손에 쥐고 있던 염주를 만지시더니 천천히 말씀하셨다.


“내가 이 동굴에 들어온 지 많은 시간이 지나 사실 밖의 상황을 잘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는 매우 중요합니다. 활불의 연속성이지요. 그것은 티베트와 티베트불교의 미래에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화제를 바꾸며 활불이 재미있는 질문을 하셨다.


“혹시 지금 원하는 것이 있나요?”


나는 즉흥적으로 대답했다. “티베트 이름을 지어주세요?”


활불이 바로 물어보신다.


“이름에 어떤 의미와 소원을 넣어줄까요?”


“저는 앞으로 돈 복이 많았으면 좋겠고 저의 열정과 의지가 좌절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허락된 시간이 훨씬 지났음에도 이 순간이 소중하고 아까워서 질문을 계속했다. 그러나 알아듣는 것도 있었고 못 알아듣는 깊은 이야기도 있었다. 못 알아들었으면 어떠랴? 잠시라도 이 분과 한 공간에서 같이 있었으면 그것으로 족하고 소중하다. 한 번 더 알현했으면 하고 소망했는데 그 후로 하산 할 때까지 그 활불을 보지 못했다. 몇 년 뒤 그 활불이 수제자에게 당신의 죽음이 어느 날 올 것이라고 말하고 결국 그 날 임종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어딘가에 새로운 육신을 빌어 ‘환생’ 했을 것이라 확신한다. 그때 지어준 이름이 있는데 내가 원했던 것 중에서 전자의 소원(돈 복)은 안 맞는 것 같지만 후자는 효력을 발휘하고 있는 듯하다. 지금도 여전히 나의 의지와 열정으로 티베트를 공부하고 있으니 말이다.


심혁주 한림대 연구교수 tibet007@hanmail.net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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