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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한국에 있는 중국의 협저불상

기자명 법보신문

종이처럼 가볍고 돌처럼 견고한 옻칠 부처님

소조로 불상형태 완성하고
칠과 마포 겹쳐서 바른 뒤
소조상 제거·개금으로 완성
건칠불상연구 중요한 자료

 

 

▲ 중국 베이징 구관복미술관(舊觀復美術館) 소장 명대 협저불상은 지금까지 자료가 극히 부족했던 협저불상 제작기법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다.

 


2005년경 베이징시내의 화랑가를 배회하던 나는 어느 작은 미술관의 진열장 안에 놓여 있는 매우 독특한 느낌의 불상을 한 구 발견하였다. 전신에 개금이 되어 있는 중국불상이었다. 얼핏 보면 목불 같았지만 보면 볼수록 느낌이나 질감이 다른 것 같았다. 망설이던 나는 결국 미술관 안으로 들어가서 자세히 불상을 살펴보았다. 가까이서 직접 보니 역시 목불은 아닌 것 같아서 점원에게 불상의 재료를 물어보았다. 돌아온 대답은 의외로 “나무”였다. 호기심이 발동한 나는 양해를 구하고 불상을 들어보았다.


불상은 조금 과장해서 종잇장처럼 가벼웠다. 협저(건칠)불상이었다. 건칠(乾漆)이란 용어는 근대 이후 일본에서 만들어낸 것이고, 고대 중국에서는 협저(夾紵)란 명칭을 사용하였다. 즉, 흙으로 불상을 만들고 그 위에 삼베 같은 천과 옻칠을 반복 도포한 뒤 마지막으로 내부의 흙 불상을 제거하여 완성한 불상이다.


옻칠은 예로부터 여러 분야에서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는데 주된 용도는 도료이다. 옻칠은 도자기의 유약보다 먼저 사용된 도장도료이면서 방수와 방부에 탁월하기 때문에 고대부터 황제의 관, 식기, 제기, 가구 및 금속장신구에 두루 사용되었다. 또한 불상을 포함한 대부분의 불교의식구 제작에도 사용되었는데, 칠을 다루는 기술 중 가장 어렵고 뛰어난 기술이 협저기법이라 한다.


협저불상의 전통적인 제작과정은 상당히 복잡하지만 간단히 정리하면, 우선 천을 붙이기 위한 원형으로서 소조불상을 제작한다. 완성된 소조불상의 표면에 마포나 삼베 등 천을 여러 겹 붙이는데 이 때 접착제로서 옻칠을 사용한다. 천을 겹쳐 바를 때는 옻칠에 여러 재료를 혼합해 사용한다. 천의 눈금을 메우고 두께를 올려 작품의 강도를 높이기 위한 것이다. 칠이 건조되면 흙으로 만든 원형을 제거하고 표면을 정리한 뒤, 하지를 올리고 반복해서 연마한 후 채색이나 개금을 해서 완성한다.


협저불상은 완성하면 천과 옻칠만 남기 때문에 매우 가볍고 견고하며 병충해나 부식에 강해서 오랜 기간 보존이 가능하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한국과 일본에 비해서 가장 오랜 전통을 갖고 있는 중국의 상은 그리 알려지지 않았다.


지금까지 알려진 중국의 협저불상은 중국의 하남성 낙양 백마사에 몇 구가 전하고 있을 뿐이고, 그 밖에는 수나라 때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진 뉴욕의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소장 불좌상, 당나라 때 제작된 Cleveland Museum of Art의 보살좌상과 무용상, 일본 나라박물관 소장의 역사상 등이 알려져 있다. 그리고 Freer Gallery of Art에도 여래상이 한 구 있고, 하와이의 Honolulu Museum of Art에는 元符 2年(1098)이란 명문이 있는 승형좌상이 소장되어 있다. 인천시립박물관에도 시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협저불상이 한 구 있는데, 이 상 또한 중국의 명나라 때 조성되었다고 생각된다.


이처럼 상 자체가 매우 귀하고 협저불상을 전문으로 연구하는 사람마저 거의 없기 때문에 중국 협저불상의 제작기법이나 분포현황에 대한 연구는 전무하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이다. 그런데 그 귀한 중국의 협저불상을 베이징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다행이라고만 할 수는 없지만 상의 밑판이 훼손되어 있어서 내부까지 살펴볼 수 있었다. 행운이었다. 육안으로 살펴보았을 뿐이었지만 확실히 중국 명나라 때 제작된 협저불좌상이었다. 다시 한 번 점원에게 재료를 물어보았다. 역시 되돌아온 답은 “나무.” 그래서 내친 김에 가격도 물어보았다. 생각보다 비싸진 않았으나 그렇다고 내가 지불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아쉬운 마음으로 되돌아 나올 수밖에 없었다.


▲구관복미술관 소장 명대 협저불상의 X-선 단면도.
그로부터 3년 후 국내의 어느 골동품 애호가가 이 협저불상을 구입했다는 정보를 입수한 나는 소유자의 허락을 받고 본격적으로 조사할 수 있었다. 협저불상을 조사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X-선 촬영을 해서 제작기법을 파악하는 일이다. X-선 조사를 실시한 결과 이 불상은 소조로 불상의 형태를 완성하고 그 위에 칠과 마포를 겹쳐 바른 뒤, 내부의 소조상을 제거하고, 개금하여 마무리 한다는 일반적인 협저불의 기법을 따르고 있었다. 다만 소조상 위에 칠과 포를 올리는 과정이나 겹쳐진 마포의 층수가 우리나라나 일본의 상들과는 차이가 나는 것이 조금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이 상은 우선 내부 표면에서 아직도 흙이 군데군데 관찰되어서 이형제로 고운 황토분을 사용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 위에 밑칠을 하고, 초벌 토회칠(생칠+황토분)을 한 뒤, 굵은 마포를 두 차례 겹쳐 발랐다. 그리고 두 겹의 마포위에 본격적으로 회를 올렸는데 그 두께가 무려 1cm를 넘고 있다.


이 정도 두께를 일반적인 천바르기로 올리려면 천의 두께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략 7회 이상 동일공정을 반복해야 하는데 이 상에서는 천을 겹쳐 발라 두께를 올리지 않고 골회만으로 뼈대를 형성해 놓았다. 그리고 현재 이 골회층에서 떨어진 단편은 마치 흙가루처럼 부서져버리는데 이것은 칠과 기와가루를 혼합할 때 물을 필요이상으로 섞어서 나중에 그 수분에 증발하면서 질감이 푸석푸석해지고, 칠 성분 중 단백질이 분해되어버렸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불상의 보존 상태는 대체로 양호한 편이지만 상의 저부는 파손이 심하다. 현재 상의 높이는 70cm 이고, 대좌는 결실한 상태로 결가부좌를 한 채 허리를 곧게 펴고 앉아있다. 양 손은 단전 앞에서 포개 선정인을 결하고 있다. 약간 고개를 숙인 채 시선은 지긋이 아래를 향하고 있어서 고요한 참선에 들어 있는 단정한 느낌의 불상이다. 머리에는 육계가 원만하게 솟아있으며 머리중앙에는 크고 둥근 중심계주가 표현되어 있다. 머리카락은 나발인데 토제와 목제가 섞여 있는 등 곳곳에 보수의 흔적이 보인다. 얼굴은 방형에 가깝고 눈은 반개하였으며, 얇은 입술은 미소를 머금고 있다. 귀는 짧고, 귓밥이 두툼하다. 이마에는 백호가 없고, 짧은 목에는 삼도가 뚜렷이 표현되었다.


각진 어깨를 감싸고 있는 통견의 불의는 굵고 양감이 풍부한 부드러운 곡선으로 복잡하지 않게 표현하였다. 양 어깨에서 흘러내린 옷자락은 단순한 수직선들로 표현했으며 양쪽 팔꿈치 부근에서 모두 Ω형 주름을 만들고 있다. 이렇게 어깨에서 흘러내린 대의 자락이 팔꿈치 부근에서 Ω형을 이루는 것은 고려말 조선초 불상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지만 이 상처럼 양 어깨에 모두 새겨지는 경우는 아직 알려진 바가 없다. 전형적인 명대 불상의 특징으로 보여 진다. 손은 나무로 만들어 부착했는데 상에 비해 양감이 부족하고 손톱도 지나치게 길고 날카롭게 표현되어서 후대에 보수한 것으로 생각된다. X-ray 상에서도 손목부위에 근대의 못이 보이고 있다.

 

 

▲협저불상의 밑판이 훼손돼 있어서 내부를 살펴볼 수 있다.

 


이 상은 원대(元代) 불상의 근엄함이나 경직된 모습과는 사뭇 다른 인상으로 전체적으로 부드럽고 온화한 인상을 하고 있다. 두꺼운 법의의 표현도 단순하지만 볼륨 있는 선들로 처리하고 있어서 원대 이후 명, 청대까지 지속적으로 유행했던 라마양식의 불상들과는 다른 계열의 불상이라고 생각된다. 이런 양식적 특징과 함께 옷 주름을 좌우대칭으로 표현한 점 등은 명대 불상의 일반적인 특징들과 부합된다고 생각된다. 이 상의 원 소재지는 알 수 없으나 전 소장자는 중국 베이징의 관복미술관(觀復美術館)이었다고 한다.


중국의 협저상과 관련해서 ‘법원주림(法苑珠林)’ 권16에는 동진의 조각가 대규(戴逵)가 행상(行像) 5구를 조성했다는 기록이 보이는데, 이 행상이 건칠불이라 생각되기 때문에 적어도 남북조시대(南北朝時代)부터는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리고 양문제(梁文帝)(549~551)는 ‘백성을 위해 1장8척의 협저상을 만들었다’는 기록도 있어서 이른 시기부터 대형불상을 제작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 후 당나라와 송나라를 거치면서 더욱 기법은 발달하였으나 아쉽게도 유품이 많지 않고 연구자도 희소하여 그리 주목받지 못했다.

 

▲임석규 실장

이런 상황에서 구관복미술관(舊觀復美術館) 소장 명대 협저불상의 존재는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하겠다. 우선 지금까지 자료가 극히 부족했던 중국 협저불상 제작기법의 일단을 파악할 수 있었고, 이는 앞으로 중국 조각사 연구자들에게도 좋은 연구 자료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또한 이제 연구를 시작하는 단계인 고려나 조선시대 건칠불상 연구에 있어서도 중요한 비교자료를 제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임석규 불교문화재연구소 연구실장  noalin@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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