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룸텍 다르마 차크라 센터-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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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수연 기자
  • 승인 2013.09.12 19: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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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라한 순례자에게 베푼 친절, 시킴에 꽃핀 까규파의 씨앗 되다

18세기 시킴의 지룸드국왕
신분 감추고 티베트로 순례
13대 까르마파 환대에 감동
시킴에 꺄규파 사원 건립


16대 까르마파 인도 망명 후
까규파의 새로운 총본산 돼


남걀티베트학연구소서 만난
낯선 직원의 친절한 안내는
방대한 자료보다 더 인상적

 

 

▲ 룸텍사원 입구에는 방문객들의 신분을 확인하는 무장경찰 외에도 소지품 등을 검색하기 위한 금속탐지기가 설치돼 있다.

 

 

티베트 불교 4대 종파 가운데 하나인 까규파가 시킴과 인연을 맺은 것은 꽤 오래 전의 일이다.


1700년대 초 시킴왕국의 네 번째 왕이었던 쇼갈 지룸드가 티베트로 성지순례를 떠났다. 왕의 신분을 감추고 평민의 복장으로 길을 나선 지룸드왕은 티베트 라싸를 거쳐 툴룽 계곡의 출푸사원에 도착했다. 당시 까규파의 총본산이었던 출푸사원에는 13대 까르마파가 주석하고 있었는데 그는 평민 복장을 한 이 순례자를 보는 순간 그가 평범한 인물이 아님을 단박에 알아차렸다. 까르마파는 순례자를 왕에 버금가는 예우로 극진히 대우했다. 까르마파의 환대에 감동한 지룸드왕은 결국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시킴으로 돌아가면 까규파의 사원을 세우겠다고 약속한다. 까르마파는 그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허공에 곡식 낱알을 뿌리며 왕을 축복했는데 신기한 일이 일어난 것은 이때부터다. 허공으로 뿌려진 그 곡식 낱알들이 히말라야를 넘어 시킴으로 날아온 것이다. 낱알들은 현재 시킴 남중부의 작은 마을 라방라에서 6km 떨어진 라롱이라는 지역에 떨어졌는데 곡식들이 떨어질 때 마치 비가 오는 것과 같았고 하늘에는 무지개가 떴다고 한다. 티베트 순례를 마치고 돌아온 지룸드왕은 까르마파와의 약속을 지켜 낱알이 떨어진 라롱 외에도 룸텍과 포당 등에 까규파 사원을 건립했으며 이때부터 티베트불교, 특히 까규파는 시킴의 국교가 되었다.


이렇게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시킴과 까규파의 특별한 인연이 있었기에 인도로 망명한 16대 까르마파 랑중 릭페 도르제는 인도에 도착하자마자 시킴으로 걸음을 옮긴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 비록 17대 까르마파가 룸텍사원에 있는 자신의 법좌에 오르지 못하고 있음에도 이곳 룸텍사원에는 까규파의 총본산이라는 자부심이 가득하다. 룸텍사원 안에 자리하고 있는 교육시설은 그러한 자부심의 상징이기도 하다.

 

 

▲ 2.중심 법당은 400여명의 스님들이 동시에 법회를 봉행할 수 있을 만큼 넓다. 3.룸텍사원의 작은 법당에서는 재가불자들을 위한 법문이 수시로 열린다. 4.법회를 마치고 도반들과 함께 잠시 한담을 나누고 있는 룸텍사원의 스님들. 5.중심 법당 뒤편에 자리하고 있는 까르마 스리 날란다 불교연구소로 시킴 지역 티베트불교 교육의 심장부다. 6.룸텍사원에서 스님들은 소소한 일들을 직접 처리한다.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자 한 스님이 옥상에 널어 놓았던 빨래를 서둘러 챙기고 있다.

 


룸텍사원의 중심 법당 뒤편에는 법당보다 더 웅장하고 화려하게 장엄돼 있는 건물 한 채가 우뚝 서있다. 이 건물의 정식 명칭은 ‘까르마 스리 날란다 불교연구소’로 이곳에는 시킴을 발판 삼아 까규파를 티베트불교의 세계적인 중심으로 만들고자 했던 16대 까르마파의 원력이 담겨있다. 불교연구소는 1980년 건립되기 시작해 이듬해인 1981년 11월 문을 열었다. 시킴 뿐 아니라 인도 전역과 인근 부탄, 네팔 등지의 티베트불교계 스님이라면 누구나 이곳에서 공부할 있도록 문호를 활짝 열어놓고 있는 불교연구소는 인도 바라나시에 있는 삼푸라난다 산스크리트 대학의 부속학교이기도 하다. 전통적인 티베트불교, 특히 까규파의 전통에 입각한 교육이 이뤄지고 있는 명실상부한 시킴 불교 교육의 심장이다. 룸텍사원에는 총 400여 명의 스님이 있는데 이 가운데 절반인 200여 명이 이곳에서 공부하고 있는 학승이다. 15살부터 입학이 가능하며 10학년 제로 운영되고 산스크리트어와 티베트어 외에 영어수업에도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졸업생들이 전 세계에 티베트불교를 알리는 포교사가 되길 바라는 뜻에서다.


이러한 원력을 세웠던 16대 까르마파는 지금도 불교연구소 가까이에서 학승들의 독경과 대론 소리를 듣고 있다. 그의 유해를 봉안한 사리탑이 바로 연구소 맞은편에 있기 때문이다.


16대 까르마파는 1981년 미국 일리노이주 시온에서 입적했다. 일찍이 70년대 중반, 해외 포교에 나선 까르마파는 가는 곳 마다 이적을 보였다고 한다. 바위 위에 발자국을 남기는가 하면 날카롭게 날이 선 여러 개의 칼을 가느다란 실로 엮기도 했다. 오랜 기간 가뭄이 들었던 아리조나에서는 까르마파가 방문하자 비가 내렸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신기한 것은 까르마파가 입적할 당시의 상황이다. 병원에 입원해 있던 까르마파는 명상에 든 자세 그대로 입적했는데 숨이 멎은 후에도 사흘 동안 그 모습이 흐트러지지 않았다. 특히 며칠 동안 심장 부근의 온기가 사라지지 않았는데 이 놀라운 현상은 당시 지역 신문에 보도되기도 했다. 당시 까르마파의 입적을 확인한 의사는 “의학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이후에 전해지는 이야기들은 더욱 신비롭기 그지없다. 까르마파의 다비식을 진행하는 동안 법체에서 심장이 튀어나왔는데 그 심장은 불길 속에서도 타지 않았으며 다비 후 수습된 사리 역시 작은 불상의 모습이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1대 까르마파였던 두슘 켐빠 린포체의 다비식 때 보였던 여러 이적들과 같은 모습이었다니 환생이라는 티베트 불교의 전통이 더욱 신비할 뿐이다.


타지 않고 남은 심장과 불상 모습으로 출연한 사리를 수습해 봉안한 골든스투파는 그래서 룸텍사원 안에서도 손꼽히는 성소이다. 입구에는 총을 든 무장 군인이 보초를 서고 있고 내부에서의 사진 촬영은 엄격히 금지돼 있다. 골든스투파는 작은 법당 안에 조성돼 있는데 갖가지 보석으로 장엄한 스투파 앞에는 16대 까르마파인 랑중 릭페 도르제의 사진이 정성스럽게 놓여있다.


환생을 빼 놓고 티베트불교를 이야기하기란 쉽지 않다. 현재 남아있는 많은 사원과 유적, 그리고 의식, 관습 등이 환생과 관련돼 있기 때문이다. 시킴과 룸텍사원의 인연 또한 마찬가지다. 13대 까르마파가 시킴의 국왕을 극진히 환대한 것이 인연이 되어 이곳 시킴에 까규파의 사원이 세워졌고 그 결과 고난의 시기에도 까규파는 자신들의 법륜을 이어나갈 수 있게 된 것이다. 13대 까르마파는 자신의 미래, 즉 수차례의 환생 후 겪게 될 고난과 티베트불교의 미래를 예견한 것이었을까. 허름한 순례자의 복장으로 찾아 온 시킴의 국왕을 한 눈에 알아본 것이며 그를 극진히 환대하고 사원을 세울 자리까지 선택한 것은 자신의 미래, 그리고 까규파의 미래를 위한 선택과 준비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작은 친절과 선행이 후일 우리에게 어떤 선업으로 이어질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 갱톡 시내 인근에 위치하고 있는 남걀티베트학연구소. 모스크바의 티베트박물관과 중국의 티베트연구소에 이어 가장 많은 티베트불교 관련 자료를 보유하고 있다.

 


룸텍사원을 방문하기 전 일행은 갱톡 시내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는 남걀티베트학연구소를 방문했다.

 

1957년 2월 달라이라마에 의해 기초가 놓이고 이듬해인 1958년 10월 당시 인도 총리였던 자와 할랄 네루에 의해 문을 연 남걀티베트학연구소는 모스크바의 티베트박물관과 북경의 티베트연구소에 이어 세계 최대 규모의 불교 서적 및 필사본을 소장하고 있는 티베트불교 연구소다. 이곳 연구소의 1층에 마련돼 있는 전시관에는 라싸에서 가져온 티베트경전 외에도 다양한 티베트불교의식 기구와 탕카, 그리고 불상 등이 전시돼 있는데 그 중에는 우리나라의 경전도 포함돼 있다. 전시관의 입구 쪽에 마련돼 있는 한국 경전 전시코너에는 12세기 우리나라에서 제작된 반야심경, 화엄경, 대보적경 등을 포함한 19개의 경전 두루마리가 보관돼 있다. 언제 어떤 경로를 통해 우리나라의 경전이 이곳에 전해졌는지에 관한 자세한 설명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이곳에 전시돼 있는 유물의 대부분이 티베트 라싸로부터 가져온 것이라고 하니 이 두루마리 경전들 또한 티베트로 전해졌던 것이라 추정해 볼 뿐이다. 2층에 마련돼 있는 도서관에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경전들이 잘 보관돼 있어 감탄을 자아낸다. 각각의 경전은 사용된 언어와 시기, 종류 별로 구분돼 있는데 어느 것 하나 흐트러져있는 자료가 없다. 얼마나 잘 관리되고 있는지 한 눈에 보아도 알 수 있다.


전시관 내부에서의 사진 촬영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는 것에 비해 2층 도서관은 비교적 자유롭게 연람이 가능하다. 다만 우리가 방문한 날이 휴일이라 도서관을 개방하지 않는다는 것. 망연자실해 직원에게 사정을 설명하니 기꺼이 문을 열어준다. 이곳에서 근무한지 약 6년째라는 케상 도르제 씨는 자신의 휴식 시간을 기꺼이 포기하고 묵직한 열쇠 뭉치를 들고 와 우리를 도와준다. 도서관 구석구석을 안내하며 기꺼이 문을 열어주고 일행이 내부를 모두 둘러볼 때 까지 묵묵히 기다려 준다. 이런 저런 소소한 질문에도 정성을 다해 설명해준다. 그 친절함이 방대한 분량의 자료가 주는 감탄 보다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

 

 

▲ 연구소 2층에 마련돼 있는 도서관. 티베트불교 관련 자료들이 언어, 시대, 지역, 종류 별로 상세하게 구분돼 있다. 일반인도 열람이 가능하다. 

 


길에서 만난 인연은 짧다. 우연히 만나고 금방 헤어지면 언제 다시 만나리라는 기약이 없다. 그러니 그들에게 친절을 베푼다는 것은 아무리 선행이라 해도 그 보답을 기약할 수 없기 마련이다. 물론 친절과 선행이라는 것이 대가를 바라지 않는 행위여야 하지만 실천은 늘 어렵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런 친절을 만날 때, 더구나 모든 것이 낯선 타지에서 만나는 작은 친절은 더욱 각별한 기억으로 남는다. 티베트로 순례를 떠났던 그 옛날 시킴의 국왕 쇼갈 지룸드가 13대 까르마파의 친절한 환대에 느꼈을 감동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 작은 선연이 오늘날 시킴에서 새롭게 꽃피운 까규파의 거름이 된 것은 분명하다. 오래 전 인도 라다크를 방문했을 때 만났던 한 라다키의 인사가 떠오른다. “나를 찾아온 모든 손님은 부처님이 보내주신 소중한 인연입니다.” 진리는 어느 때, 어느 곳에나 변함없이 흐르고 있다.


인도 룸텍=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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