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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아사리

기자명 법보신문

부처님 뜻 몸·말·행동으로 가르치는 스승

부처님 가르침 배운 아사리
혼자 읽으면 오해 십상 경전
모범적인 일상생활로 가르쳐
부모도 아사리 역할 해내야

 

미국에서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보상미루기’ 실험이었다. 아이들에게 마시멜로를 하나씩 주면서 말했다. “이 마시멜로를 지금 먹어도 되지만, 몇 분 후에 먹으면 하나를 더 주겠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마시멜로를 받은 후 바로 먹었다. 아주 소수만이 몇 분 후에 두 개의 마시멜로를 먹었다. 이 실험의 목적은 당면한 욕망을 억제하고, 나중에 얻을 수 있는 더 많은 보상을 기다릴 수 있는가를 알아보기 위한 것이다. 만약 아이들이 보상을 미루는 능력을 갖고 있다면, 세월이 지나 더 성공적으로 경력을 쌓을 수 있다는 믿을 만한 근거가 된다고 한다.


우리가 무엇인가 배우고 익히면 삶이 더 좋아질 것이라는 것은 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적인 욕망이나 게으름 그리고 여러 가지 사정 때문에 좋은 것을 배우는데 실패를 한다. 또한 우리의 많은 습관은 우리의 삶의 흐름을 장애한다. 좋지 않은 습관인줄 알면서도 그대로 방임하면서 살아간다. 그래서 때로는 크고 때로는 작은 문제와 늘 마주치게 된다.


익숙함이 주는 편리함에도 그 순간에 욕망이 함께한다. 순간의 편리와 욕망을 넘어서는 방법을 어떻게 하면 배울 수 있는가. 정행품 경문을 보자.


“아사리(規範師)의 가르침을 받을 때면, 중생들이 위의를 갖추고 실천하는 것 모두가 진실하기를 발원해야 한다.”


‘아사리(規範師)의 가르침을 받을 때면’에서 ‘아사리’는 인도의 범어를 소리로 번역한 말이다. 우리말로는 ‘바른 행동을 가르치는 작은 스승’이 된다. 작은 스승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고금의 조사나 대덕들도 포함된다. 큰 스승은 당연히 부처님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경장과 율장에 들어있다. 그러나 우리 평범한 사람들은 경전을 직접 혼자 읽으면, 경전의 의미를 올바로 원만하게 이해하기 어렵다. 경전의 내용 중에는 듣고 이해를 하면 되는 것도 있지만, 대부분은 몸과 말과 마음의 행위로 실천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삶 속에서 소화를 해 내면, 우리는 그것을 증득이라고 한다. 이론을 현실적으로 생활 속에서 실천을 하려면, 좋은 스승의 지도가 있어야 한다. 행동으로 좋은 스승의 역할을 하는 분이 ‘아사리’다.


‘아사리의 가르침’이란 다른 사람 다른 수행자에게 살아가는 모습으로 모범을 보여주는 것이다. 말로 가르치면 말로만 배우고, 몸으로 가르치면 몸으로 배우는 것이 사람의 특징이다. 말로만 가르쳤는데 몸으로 배운다면, 그는 선근이 깊은 매우 드문 사람이다. 아사리는 삶의 모습으로 모범을 보여서, 다른 사람들이 의식 또는 무의식적으로 보고 배우며, 삶과 행동에 기준을 삼을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즉 우리가 모방하고 배울 모범적인 삶을, 몸과 말과 마음의 행동으로 보여주고 가르쳐주는 것이 ‘아사리의 가르침’이다.


아사리는 인도 범어이고 인도에서는 일반명사로 쓰인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에서 몸과 말과 마음의 행위로 다른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는 사람은 누구나 아사리로서의 역할을 한다고 보아도 된다. 가정에서는 부모가 그 역할을 하고 학교에서는 선생님이 그 역할을 하게 된다. 좋은 스승이 좋은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부모가 아이 보는 앞에서 늘 스승을 공경하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 부모는 아이의 존경과 모방의 대상인데, 부모가 존경하고 공경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다. 아이들은 부모의 눈을 통해서 사람과 세상 보는 법을 배운다. 부모가 존경하면 같이 존경하고 부모가 무시하면 같이 무시한다. 좋은 스승을 만나도 공경과 존중의 마음이 없으면 배울 수가 없다. 어느 누가 자신이 무시하는 사람에게 좋은 것을 모방하며 배우겠는가.


‘중생들이 위의를 갖추고’에서 ‘위의’라는 것은 요즘 말로는 위치에 맞는 예의다. 부모는 부모의 처지에서 책임과 의무 그리고 처신을 반듯하게 하는 것이다. 선생님은 선생님의 처지에서 책임과 의무 그리고 처신을 반듯하게 하는 것이다. 아이들은 자식으로서 혹은 제자로서 자신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고 처신을 반듯하게 하는 것이다. 책임과 의무를 다하고 자신의 위치에 맞게 처신하는 법은, 오랜 시간 부모와 스승의 모범적인 생활 모습을 보면서 닮아가는 것이다. 칭찬과 격려를 받으면서 힘들고 어색한 것을 점점 익숙하게 해나가게 된다.


‘실천하는 것 모두가 진실하기를 발원해야 한다’에서 우리의 삶은 실천의 연속이다. 다만 무엇을 실천하는가가 다를 뿐이다.

 

우리가 실천하고 행동하는데 몸과 말과 마음의 행동이 일치하면 진실하다고 한다. 몸과 말과 마음의 행동이 일치하지 않으면 진실하지 않은 것이다. 그 순간의 행동이 거짓이 된다.

 

▲도암 스님

거짓이 누적되면 삶 전체가 거짓이 된다. 나중에 문제가 발생이 될 때 손을 쓸 수가 없게 된다. 다른 사람에게 영향력이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은 누구나 아사리로서의 역할을 하게 되니, 많은 사람들이 당신을 모방하고 있다는 것을 명심하자.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말이다. 모든 사람이 모든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관계가 되기를 발원한다.

 

도암 스님 송광사 강주 doam199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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