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내가 만난 활불들-8
41. 내가 만난 활불들-8
  • 법보신문
  • 승인 2013.10.08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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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활불 의미 퇴색시키는 가짜 활불 기승

활불은 종교적 영성 계승자
세속적인 이유로 가짜 출현
고급승용차 타며 정치 활동
한 가정서 2~3명 나오기도

 

 

▲오늘날 티베트 전역에서 가짜 활불의 출현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그들은 중국 정부와의 긴밀한 밀월관계 속에서 적지 않은 부와 명예를 축적하고 있다.

 


생전에 무소유의 길을 전파하셨던 법정 스님은 “내 소망은 단순하게 사는 일”이라며 “우리는 욕심의 땅에 서 있다. 그러니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고 돈과 권력에의 집착을 경계했다. 그런데 얼마 전 몇몇 스님들이 말년에 ‘돈’ 이 없으셔서 병을 치료도 못하시거나 심지어 비참하게 자살까지 한다는 안타까운 사연을 접하면서 ‘스님은 과연 돈이 없어야 하는 걸까? 최소한 있어야 한다면 얼마 정도를 비축(?)해 놓아야 말년에도 건강을 지키면서 굳건히 수행을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출가한 스님들은 ‘소유욕’이 없어야 한다고 한다. 불교를 잘 모르는 내가 단순하게 생각해봐도 의사는 책임감 있는 진료를, 판사는 공명정대한 판결을, 그리고 스님이면 스님답게 수행을 하고 처신을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소유욕이란 무엇일까? 적명 스님은 “소유욕은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이 실체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데서 비롯된다. 모든 게 실체가 없음(제법무아)을 꿰뚫으면 집착이 없어져 머물지 않게 된다”고 말씀하셨다. 아마도 대부분의 스님들이 이러한 출가의 기본 원칙을 생명처럼 받들고 지키고 살고 있을 것이다. 여기에 관하여는 티베트 스님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청정한 삶을 추구하며 수행에 목숨을 건다. 그런데 간혹 가짜 티베트 스님이 출현할 때가 있다. 세속의 돈과 권력을 추구하는 스님들이다. 그것도 티베트에서는 큰 스님이라고 존경받는 ‘활불’이 말이다.


아침 일찍부터 활불을 따라나섰다. 오늘은 옆 동네 ‘죽절사’(竹节寺)에서 종교행사가 며칠 동안 진행되는데 보고 싶으면 따라나서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기 때문이다. 사원에 거주하게 되면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아침에는 따뜻한 커피가 아쉽고 저녁에는 삼겹살과 화려한 TV생각에 눈물이 난다. 사실 TV만 있어도 하루가 정말 쉽게 갈 텐데하는 생각을 종종한다. 대부분의 티베트 사원이 산중 산골이라 스마트폰도 고산증세가 있는지 먹히질 않는다. 언젠가 수업 중에 한 학생이 나에게 했던 말이 있는데, 그 학생은 수업이 아무리 지루해도 교실의 맨 뒷자리를 차지하고 와이파이만 터지면 버틸 수 있다고 했다. 그 말이 어떤 의미인지 이제는 알 것 같다. 오전은 그럭저럭 가는데 저녁 시간은 달팽이다. 어제도 몸이 비비 꼬여가고 있을 때, 마침 활불의 시봉이 내 방에 놀러왔다가 언질을 주었다. 내일 아침 종교행사 관련으로 건너가는데 구경 가려면 준비하시라고. 그래서 ‘좋아라!’하고 일찍 누웠다.


여기 니종사는 2명의 활불과 1명의 켄보(堪布: 사원의 교학담당자) 그리고 50여명의 라마승이 사원에서 전통적인 수양방식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다. 사원은 28세의 젊은 청년 쒀바(索巴)활불이 책임지고 있으며 중국 정부와의 소통도 담당하고 있었다. (쒀바)활불은 3세 때에 전세가 인정되어 5세 때 라싸에서 이곳으로 이주해와 18세 때까지 불학전반에 관한 체계적인 교육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일상생활에서 사원의 재정과 건축(建寺) 켄보의 안배와 죽번(竹奔, 동굴수행의 라마승)의 안전과 관리에 치중하였으며 대외적으로 초도(超度, 죽은 망자를 위해 경을 읽어줌)와 병자를 위해 동분서주한다. 오늘날 옥수지역은 1만의 라마승과 1천여 명의 활불이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이 지역은 티베트불교신자가 다른 지역에 비해 많은 편이다. 그리고 다른 티베트 지역에 비해서 중국정부의 관리도 융통성이 있는 편이다. 물론 사원마다 ‘사원관리위원회’와 매년 중앙정부의 한족이 내려와서 감사를 실시하고 있으나 다른 지역, 예를 들면 사천이나 티베트자치구보다는 매우 형식적이었다. 이 지역은 치안을 담당하는 공안도 일부분은 장족(藏族)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폭동이나 시위도 거의 없었으며 발생하더라도 원만하게 해결되는 수준이었다. 활불에 대한 신뢰도와 존중감도 매우 높다. 수시로 사원에 찾아오는 신자는 헤아릴 수 없으며 길거리에서 활불을 발견하면 바로 무릎을 꿇고 예를 표시한다. 하지만 활불의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다. 사원 소속의 라마승들이 환속하지 않고 수행에 정진할 수 있도록 사원의 환경을 개선시켜주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좋은 켄보를 모셔야하고 1년에 한 번씩 사원의 라마승들에게 공양(돈과 양식)을 해 주어야 하는 책임감도 있다. 사실 이것보다도 더 큰 고민은 과거와 다르게 출가승의 숫자가 많지 않기 때문에 종파의 법통과 교법을 전수하고 법회를 진행하기에 날이 갈수록 힘이 든다는 것이다. 쒀바 활불은 1년에 6개월 정도 인도와 네팔에서 열리는 본 종파(백교)의 홍보와 법회를 위해서 출장을 가기 때문에 개인적인 수양의 시간도 많지 않음을 고백했다. 또한 최근에 빈번하게 문제가 되고 있는 가짜 활불의 출현에 대해서도 염려를 하셨다. 티베트 전세활불의 가장 큰 목적은 순수한 종교적 영성을 계승하고 유지하고자 함인데, 오늘날은 종교적 이유보다 현실적인 이유로 활불이 출현한다는 것이다. 한 가정에서 전세된 활불은 반드시 1명이 존재해야 하는데 2명이 나오기도 하고 3명이 나오기도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탄 차는 초원을 지나 죽절사를 향해 달려갔다. 초원에서 풀을 뜯는 야크들을 볼 때면 한 폭의 그림과도 같았으나 말보다 오토바이를 몰고 다니는 어린 목동을 볼 때면 왠지 이상했다. 초원에 오토바이라? 이거 그림이 이상하지 않은가? 현장에 다 왔는지 광활한 대초원에는 커다란 불상이 조성 중에 있었고 티베트인들이 천막을 치고 음악을 들으며 쉬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사원의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뜻밖에도 말로만 듣던 가짜 활불을 알현(?)하게 되었다. 죽절사의 큰 스님(라마승)이라는 분인데 우리들과 인사를 나누고 바로 어디론가 가야 한다고 차를 가져왔는데 크고 섹시한 BMW차량을 유유히 몰고 왔다. 나는 내심 너무 놀라서 말을 못했다. 초원에서는 말과 양, 야크만 달리는 줄 알았는데 저 멋진 차 주인이 큰 스님이라니…. 믿을 수가 없었다. 이 차를 어떻게 몰게 되었는지 매우 궁금했지만 실례가 될까봐 물어보지 못하고 겸연쩍게 바라만 보았다. 나중에 쒀바 활불에게 들은 이야기이지만 이 스님은 자신은 환생자이며 활불이라고 주장하지만 ‘가짜’였다. 그는 쌍둥이 형제인데 어떻게 형제가 모두 전세활불이 될 수 있단 말인가? 전세와 환생이라는 티베트 특색의 사유와 문화구조를 올바로 활용하고 있지 않다고 쒀바 활불은 걱정을 했다. 그리고 쒀바 활불은 가짜활불을 한 눈에 알아보는 법도 알려줬다. 우선 가짜활불의 특징은 행색과 스타일에서 대충 알 수 있는데 배가 발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나오고 얼굴에 기름이 좔좔 흐른다. 또한 그들은 정부와의 긴밀한 협조에 능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한어(漢語)를 구사 할 줄 알며 하루가 바쁘다. 그리고 걷기보다는 어마어마한 차를 타고 다닌다는 것이다. 반 농담 반 진담이라고 하신다. 칼릴 지부란(Kahlil Gibran, 1883~1931)은 “한 사람의 종교는 결국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과 조물주 사이의 문제일 뿐”이라고 말했지만 이 고원의 티베트인들에게 그 말은 유효하지 않다. 자신과 조물주 사이에 활불이라는 인간신이 존재하고 있다고 이들은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가짜이든 진짜이든 말이다. (계속)

 

심혁주 한림대 연구교수 tibet007@hanmail.net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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