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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수행의 자리

기자명 법보신문

무쇠 벼리듯 선한 마음 꾸준히 닦아야

부처님 당시 앉는 곳마다
법문 듣고 수행하는 공간
일상 생활하는 곳곳에서
이타적 행위 점차 늘려야


세상에는 자리가 참 많다. 자리에 따라 책임과 의무 그리고 권리가 주어진다. 책임과 의무를 다할 수 있을 때 정당하게 권리를 누릴 수 있다. 그리고 어느 자리에 앉았는가에 따라서 신분이 달라진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자리가 주는 신분과 권리는 누리면서, 자리가 요구하는 책임과 의무를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다. 자리를 만들어놓고 사람을 그 자리에 앉혔는데, 자리가 사람과 맞지 않는 상황이 발생한다. 요즘은 이런 사람들이 뉴스의 사회면을 장식하고 있다.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이렇게 행동하면 그 나라의 국민들이 모두 함께 불행해질 수 있다. 부처님은 부처님 당시에 수행공간에서 만들어지는 자리에 어떻게 이름을 붙였을까. 정행품 경문을 보자.


“앉을 자리를 펼 때면, 중생들이 선법을 펼쳐서 참다운 실상을 보기를 발원해야 한다.”


‘앉을 자리를 펼 때면’에서 ‘앉을 자리’란 수행을 하는 자리다. 부처님 당시에는 강당이나 선당이라고 해도 지금과 같은 건물이 있는 것이 아니다. 부처님 당시는 수행자들이 유행을 많이 했다. 한 장소에 3일 이상 머무는 일이 없었다. 비가 많이 내리는 결제철에는 예외적으로 한 장소에서 3달을 지냈다. 부처님은 평지에 자리를 깔고 법문을 하였고, 제자들도 평지에 자리를 깔고 법문을 들었다. 설법 강의가 이루어지면 평지도 강당이 된다. 나무 아래나 동굴 등의 장소에서 햇빛과 이슬을 피하면서 삼매를 닦는다. 선정을 닦는 곳이 선당이 된다. 염불당도 마찬가지다. 일정한 장소를 지정해서 말한 것이 아니다. 그 기능을 하는 곳이면 그 이름을 쓸 수 있었다. 자리를 펼 때는 마른 풀을 깔고 그 위에 부드러운 풀을 덮는다. 그리고 그 위에 ‘니사단’이라는 자리를 만들 때 사용하는 천을 덮어 자리를 완성한다. 이렇게 만든 자리는 바닥의 냉기와 습기를 차단해 주어서 장시간 앉아 건강하게 정진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중생들이 선법을 펼쳐서’에서 중생들의 선법이란 여러 가지가 있다. 중생들이 무엇을 목표로 살아가는가에 따라서 선법의 내용이 달라진다. 불교에서는 6가지로 나눈다. 1)사람답게 사는 선한 방법. 2)천상의 세계에 태어날 수 있는 선한 방법. 3)인간과 천상 등을 포함하는 집착의 세계인 삼계를 벗어나 아라한이 되는 선한 방법. 4)아라한의 한계를 넘어 벽지불이 되는 선한 방법. 5)이승의 한계인 분별을 넘어 보살의 삶을 사는 선한 방법. 6)집착과 분별과 근본무명을 모두 넘어선 자리에서 부처님이 되어가는 선한 방법이 있다. 깨끗하고 지혜로운 정도를 점점 더 높여서 완성의 단계로 나아가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18k의 금을 제련하여 24k로 만들어가는 과정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반대로 악한 방법이 있다. 자신에게 선이 되고 이익이 될 것이라고 믿기에,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추구하는 악한 방법에 4가지가 있다. 1)남과 자신을 해쳐 일체의 환경을 지옥으로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2)욕심을 많이 부리면서 만족할 줄 모르는 아귀처럼, 자신과 주변사람을 허기지게 만드는 사람들도 있다. 3)생리적인 본능과 생존본능에 쫓기며 인륜의 도리와 인과의 도리를 생각할 겨를조차 없는 사람들이 있다. 4)자신의 존재를 강조하고 우월을 증명하려고 투쟁이라는 수단을 당연하게 선택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기적인 행동이 자신에게 이익을 가져다준다고 믿고 행동하는 것이 악한 방법이다. 다른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하고, 자신의 현재의 삶과 다음 생의 삶을 타락시킨다.


우리 자신의 삶의 모습은 이 여러 가지 단계 가운데 어느 한 곳을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선법을 펼친다는 것은 수행을 한다는 것이다. 강력한 악의 습관에서 약한 악의 습관으로 약한 악의 습관에서 그 습관을 끊는 방향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이것은 악을 끊어 나가는 선한 방법이다. 그리고 이타적인 선한 습관을 약한 단계에서 점점 강력한 상태로 이동을 해 나가는 것이다. 이것은 이타적인 선을 실천하는 선한 방법이다. 더 나아가서 이타적인 선한 행위는 그대로 지속하면서 자신의 선한 행위에 집착을 하지 않는다. 이것은 더 발전된 선한 방법이고 수행이다. 자신을 청정하게 하면서 복과 지혜를 늘릴 수 있다. 이것은 우리의 몸과 말과 마음의 행위를 관찰하면서, 알아차리고 수정하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진행할 때 얻어진다. 부처님과 성현의 말씀을 믿고 실천할 때 그 결과가 우리의 경험 속에서 사실로 증명된다.


‘참다운 실상을 보기를 발원해야 한다’에서 ‘참다운 실상’이란 최고의 경지 최고의 깨달음에 도달했을 때 만나게 되는 경계를 말한다. 최고의 경지는 수행이 완성된 상태다. 최고의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 우리는 우리 자신의 상태와 처지를 올바르게 알아야 한다. 자기가 자기에게 속지 말아야 한다.

 

▲도암 스님

그러면 우리는 올바른 출발점을 얻게 된다. 올바른 출발점에서는 현실적이고 효과적이며 올바른 목표와 방향을 설정할 수 있다. 근거리 목표와 원거리 목표를 종합적으로 파악하고 이해하면, 과정에서 생기는 작은 성취나 실패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다. 목적지에 도달할 때까지 꾸준히 노력할 뿐이다.
 

도암 스님 송광사 강주 doam199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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