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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하늘 위의 아이들-1

기자명 법보신문

“여행의 추억은 아이에 줄 위대한 유산”

험한 티베트 여행 함께한
가족의 일화를 되새기면
자식에 남길 최고 유산은
부모와 동행한 추억일 뿐

 

 

▲ 티베트의 고원에서 아이들은 아침에는 야크와 양, 저녁에는 별과 달을 친구삼아 즐겁게 논다.

 


영국의 세계적인 4인조 록밴드인 비틀스의 멤버였던 존 윈스턴 레논(John Winston Lennon)은 이렇게 회고 했다.


“내가 다섯 살 때 어머니는 ‘행복’이 인생의 열쇠라고 말씀하셨다. 학교에 들어갔을 때, 커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묻는 문제에 ‘행복한 사람’이라고 답을 적었다. 학교에서는 내가 숙제를 잘못 이해했다고 했지만, 나는 그들에게 인생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부모가 자식에게 물려주는 유산 중 최고는 무엇일까? 달콤한 재산일까? 다양한 책일까? 아니면 멋진 스포츠 차일까? S씨가 ‘당신이 가장 사랑하는 게 뭔가요?’라고 물었더니 J씨는 그때부터 돈을 그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J씨는 돈을 가장 사랑했으므로 자식에게도 돈을 자랑스럽게 물려주었을 것이다. 그런데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아이가 어릴 때부터(가능하다면 커서도) 손을 잡고 힘든 ‘오지’를 낑낑 거리며 동행하는 것이 최고의 유산이라고 생각한다. 몹쓸 병이 들었거나 죽음에 임해서야 마지못해 종이 한 장에 이것저것 정리해서 주는 것보다 살아있을 때 무언가를 남겨 주자는 것이다. 뭐 오지가 아니더라도 다른 나라 혹은 민족의 유적과 유물 문화를 같이 바라볼 수 있다면 그것으로 그 어떤 유산보다 소중한 선물이라는 말이다.


이런 낭만적인 생각이 든 이유는 몇 년 전, Y은행의 지원으로 일반인들과 함께 티베트를 여행하면서 직접 목격한 현장의 심득(心得)이 있기 때문이다. 전혀 뜻밖의 기관에서 티베트 여행을 추진하고 나에게 여행 자문과 해설을 부탁한 것 외에도 대학생과 교사, 회사원, 대학원생 등으로 구성된 15명 동참자의 여행 경비를 전액 지원해준다는 소식에 나는 고무돼 있었다. 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그런데 공항에서 좀 놀랐다. 이 여행을 기획하고 추진한 K과장이란 분이 부인과 6살 정도의 아들을 데리고 나타났기 때문이다. 우리가 가는 코스가 관광코스가 아닌데, 견뎌낼 수 있을까? 고산증세가 오면 어쩌려고? 걱정이 앞섰다.


중국 사천(四川)의 평지에서 시작된 우리의 티베트 코스는 하루가 지날수록 고원을 향해 서서히 진격했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온 참가자들 이어서 그런지 육체적 고통을 티베트 고원의 풍경과 초원 위의 양들, 야크 그리고 처음 보는 색깔의 하늘과 바꾸어 버린 듯 보였다. 그런데 유독 두 사람만 허덕거리며 질질 끌려오는 수준으로 따라오거나 아니면 차에서 거의 실신하고 있었다. 바로 K과장과 부인, 아들이었다. 보다 못해 K과장에게 한마디를 했다. “아니 왜 사서 고생을 시켜요? 과장님만 오시지요?” K과장은 웃기만 할 뿐, 대답이 없었다. 그렇게 일주일이 넘어갔다. 그런데 8일째 되는 날, 재미있는 풍경이 발견됐다. 바로 티베트사원 앞에서 K과장의 아들이 혼자서 건축물과 불교벽화를 유심히 보고 있는 장면이었다. 대단히 심취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흥미롭게 한동안 서서보고 이동하면서 새로운 장면이 나타나면 한동안 지켜보곤 했다.


여행을 며칠 하다보면 길 위의 풍경도 재미있지만 동행한 사람들과의 관계를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며칠이 지나면 어느덧 동행자들의 스타일과 웃음소리 심지어 먹성까지도 자연스럽게 파악된다. 어떤 사람은 초원에서 양을 바라보며 마시는 커피에 황홀해 하고 또 어떤 이는 가끔 먹는 김치에 열광한다. 그리고 어떤 일행들은 온 종일의 힘든 여정보다도 밤마다 숙소에서 같이 온 지인들과 술자리와 인생에 관한 이야기로 즐거워한다. 이를 바라보고 심지어 같이 참여하는 것도 여행에서의 즐거움이다. 그런데 그 여행에서도 비슷한 상황은 발생했다. 아이는 어느덧 변해있었다. 처음 경험해본 고산증세와 기름기가 좔좔 흐르는 중국 음식들에 힘들어 하는 같은 또래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오지 속의 길 위에서 바람과 호수 그리고 비를 맞으며 아이는 신기하게도 받아들이고 즐기기 시작했다. 차 안에서는 아빠와 이야기꽃을 피웠으며 밤에는 수박만한 별을 보며 ‘우와’하는 감탄사를 연발했다. K과장은 하루 종일 찍은 사진을 아들과 함께 보며 정리하는 즐거움에 흠뻑 빠졌고 부인은 그런 그들을 바라보며 혀를 끌끌 찼다. 어느 덧 우리의 마지막 일정이 끝나고 삼겹살과 소주로 그동안의 여정과 각자의 노고를 격려하는 시간을 가졌다. 분위기가 한 참 무르익을 무렵 아무 말도 없이 소주만 마시던 부인이 테이블의 중간으로 성큼 나가더니 마이크를 잡았다. 다들 놀라는 표정이었으나 나는 내심 기대감도 있었다. 그래,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부인이 말했다. “여러분, 그동안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저만 빼고 즐거우셨죠? 우리 남편에게 내년에는 유럽 여행 좀 가게 조언을 해주세요. 매년 인도, 몽골, 티베트, 부탄 등지로 휴가내고 저와 아들을 데리고 이렇게 고생을 시키는데 이제 그만 좀 하라고요. 부탁드려요.” 다들 웃어 넘어갈 지경이었다. 듣고만 있던 K과장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답변했다.


“(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저는 아이에게 물려줄 돈과 책, 멋진 차가 없습니다. 제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것은 그저 틈날 때마다 이렇게 같이 여행하며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다음 여행지는 역시 유럽이 아닐 겁니다. 지금 생각으로는 다음 여행지는 미얀마가 어떨까 싶어요.” 모두들 웃었다. 하지만 나는 감동받았다. 그래, 저것이 진정으로 의미 있고 오래가는 유산일지 몰라. 비록 지금은 아이가 힘들다고 투정을 부릴지는 몰라도 그래도 가슴에 남는 기억과 추억이 오래가는 것일 거야. 사실 부인도 애교 섞인 투정을 했지만 매번 따라오는 걸 보니 싫지 않은 것 같았다.


그렇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사랑을 주어야 하고 아이들은 사랑을 먹으면서 성장해야 한다. 그 사랑은 위대한 종교도 아니며 어떤 대단한 이데올로기도 아니다. 그저 부모와 함께하는 동행이고 그 속에서 뿌리내린 ‘희노애락’(喜怒哀樂)의 추억일 것이다. 함께 별을 보고, 양들을 어루만진 그 시간 속에 위대한 유산이 숨어있는 것이다.

 

매년 돌아다니는 티베트, 하늘위의 아이들은 어떨까? 하루를 어떻게 보내며, 부모와는 어떤 관계를 맺고 있으며 어떤 놀이문화가 있을까? 이곳에도 과연 교육이라는 것이 있을까? 이제 오래 동안 보아온 초원의 아이, ‘다와’(해와 달의 의미)의 하루 일과를 여기에 소개하고자 한다. 그 아이의 아침부터 잠자기 전까지의 하루 동선을 졸졸 따라서 같이 다녀본 적이 있는데 매우 재미있고 우리와는 전혀 다른 하루가 있었다. 자 그럼, 하늘위의 아이 다와를 소개할까요? 

 

심혁주 한림대 연구교수 tibet00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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