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작자미상, ‘모란병풍’

기자명 법보신문

여러 빛깔 모란꽃처럼 개성 있게 피어난 부처님 제자들

불교의 가르침 따르면서도
각자 개성을 지닌 제자들
붓다 품서 화려하게 꽃피워

 

조선의 궁중병풍 속 모란
서로 빛깔 뽐내며 배치돼

 

세상에는 많은 즐거움이 있다. 먹는 즐거움, 자는 즐거움, 멋진 옷을 차려입는 즐거움 등 삶의 기본적인 욕구에서 비롯된 즐거움이 있다. 누군가를 만나 얘기하고 교감하고 친교를 맺는 사회적 즐거움도 빠질 수 없다.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할 수 있는 일에서의 성취감과 취미생활도 중요한 즐거움이다. 돈을 벌고 명예를 얻고 권력을 쥐는 즐거움도 매우 크다. 보통 사람이라면 이 정도 즐거움이 보편적일 것이다. 현인(賢人)이나 철학자들은 어떻게 생각했을까.


‘맹자’ ‘진심’편에는 ‘군자삼락(君子三樂)’이 나온다. 군자의 세 가지 즐거움이란 뜻이다. 첫째는 부모가 모두 살아계시고, 형제가 아무 탈 없는 것이요. 둘째는 하늘을 우러러 부끄럽지 아니하고, 굽어 남에게 부끄럽지 않는 것이요. 셋째는 천하의 영재(英才)를 얻어 이를 교육하는 것이다. 맹자는 ‘천하에 왕 노릇하는 것은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단호하게 결론을 내린다. 맹자가 말한 즐거움은 너무나 평범하다. 하나마나한 소리를 들을 것 같다. 매혹당할 특별함이 전혀 없어 평소 생각해본 적도 없는 내용이다. 그 즐거움이 왕이 되는 것보다 더 값지단다.


‘군자삼락’은 젊어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즐거움이다. 나이 들면 안다. 맹자의 말이 얼마나 울림이 큰 진리인가를. 아마 맹자도 이 얘기를 했을 때는 상당히 나이가 들었을 때였을 것이다. 모든 진리가 다 그렇다. 사람은 항상 너무 늦게 깨닫는다. 즐거울 때는 그게 즐거움인줄도 모르고 무심코 보내버리고는 지나놓고 나서야 바닥을 친다. 물론 사람에 따라 다를 수도 있다. 공자는 세 부류의 사람에 대해 얘기했다. ‘태어나면서부터 아는 사람’과 ‘배워서 아는 사람’ 그리고 ‘곤란을 겪고 나서 아는 사람’이다. 거기까지 가서도 알지 못한 사람은? 답이 없다. 깨우칠 때까지 계속 곤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사람이 똑같은 문제로 거듭 넘어지는 이유다.

  
‘삼락’ 중 세 번째인 ‘영재를 얻어 가르치는 즐거움’은 가르치는 입장에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사항이다. 스승이 강의를 할 때 눈을 반짝거리며 열심히 들어주는 제자가 있다면 강의 준비하느라 힘들었던 고단함을 순식간에 잊어버린다. 뿌듯함과 벅찬 보람을 느낀다. 제자의 공부가 깊어져 스승의 수준을 넘볼 단계가 되면 스승은 자신보다 키가 커진 자식을 바라보듯 흐뭇해진다. 이윽고 제자가 자신의 경지를 뛰어넘었을 때 스승은 이제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 정도로 넉넉해진다. 이름 없는 시골학교의 평교사로 정년퇴직을 한다 해도 여한이 없다. 이런 영재를 기르는데 한 부조했으니 그것으로 의미 있는 인생이다. 오늘도 많은 스승들이 그런 희망을 품고 교단에 선다. 


부처님께서도 훌륭한 제자를 얻었을 때 무척 기뻐하셨다. 사리불과 목련 그리고 마하가섭을 만났을 때 부처님의 반응이 어떠했는지를 살펴보면 영재를 얻은 스승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사리불과 목련은 어렸을 때부터 친구였다. 각각 다른 집안에서 같은 날 태어난 그들은 아무런 부족함을 느끼지 못하고 자랐다. 사리불은 커가면서 인생에 대한 의문을 느꼈다. 역시 같은 문제로 고민하던 목련과 함께 산자야의 제자가 되었다. 산자야는 육사외도 중 한 사람으로 회의론자였는데 500명의 제자를 거느리고 있었다. 사리불은 비록 산자야의 제자였으나 그의 가르침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그래서 목련과 함께 한 가지 약속을 했다. 누구든지 먼저 참된 스승을 만나면 서로에게 알려 주자는 약속이었다.


그런 어느 날 사리불은 탁발 나온 앗사지의 범상치 않은 모습을 보고 그의 스승이 누구이며 어떤 가르침을 배웠는지 물었다. 앗사지는 사리불에게 부처님이 스승이라는 것과 연기설을 얘기했다. 연기설을 듣고 지혜의 눈이 열린 사리불은 그 길로 목련에게 달려가 기쁜 소식을 전해줬다. 두 사람은 부처님을 찾아가기로 결정하고 스승 산자야에게도 함께 가자고 권했다. 그러나 산자야는 거절했고 대신 그를 따르던 제자 250명이 사리불과 목련을 따라 죽림정사로 향했다.


그때 부처님은 많은 사람들에게 설법을 하고 있었는데 멀리서 사리불과 목련이 한 무리의 사문들을 데리고 오는 것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비구들이여, 두 친구가 온다. 두 사람은 나의 큰 제자가 될 것이다.”


이렇게 해서 사리불과 목련을 따라 온 250명이 모두 부처님의 제자가 되어 아라한과를 얻었다. 이제 부처님의 제자는 기존의 1000명에 250명이 더해졌다. 여러 경전에서 부처님의 제자를 1250명이라 하는 유래가 여기에 있다.
부처님이 마하가섭이라는 제자를 만난 사건은 더욱 극적이다. 마하가섭은 출가 전에 핏파리라 불렸다. 핏파리는 마가다국의 바라문의 마을에서 부유하게 태어났다. 핏파리가 스무살이 되자 부모는 며느리를 맞아들이려고 했다. 핏파리는 출가할 계획이었기 때문에 결혼에는 뜻이 없었다. 그는 부모님의 뜻을 단호히 거절했다. 거듭되는 부모님의 성화에 못이긴 핏파리는 한 가지 꾀를 냈다. 아름다운 황금여인상을 만들어 부모님께 보여드리며 이런 여자라면 결혼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예기치 않은 일이 발생했다. 부모의 얘기를 들은 바라문이 수소문 끝에 마가다국의 거리에서 황금여인상과 비슷한 아가씨를 발견했다. 코샤 집안의 바드라 카필라니라는 아가씨였다. 할 말을 잃은 핏파리는 어쩔 수 없이 결혼식을 치렀다. 두 사람은 부모님의 성화로 부부가 되었지만 몇 해 동안을 부부의 정을 나누지 않고 수도자처럼 살았다. 세속 생활을 ‘불난 초가’처럼 생각했다. 이윽고 부모님이 돌아가셨다. 두 사람은 가진 재산을 전부 노예들에게 나눠주고 수도자가 되기 위해 길을 나섰다. 함께 길을 가던 두 사람은 출가자가 같은 길을 가는 것이 옳지 않다고 여겨 오른쪽과 왼쪽으로 헤어져 길을 갔다. 왼쪽 길로 들어선 바드라는 기원정사 근처의 동산에서 다른 수행자들과 함께 수행했다. 오른쪽 길로 들어선 핏파리는 마가다국 수도 라자그리하를 향해 걸어갔다.


그때 부처님은 죽림정사에 계셨는데 갑자기 지진이 발생한 것을 느꼈다. 부처의 눈으로 살펴보니 핏파리와 바드라가 굳은 결심을 하고 헤어져서 다른 길을 걷고 있는 것이 보였다. 부처님은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죽림정사를 나왔다. 핏파리가 지나갈 거리의 나무 밑에 앉아 제자를 기다렸다. 부처님은 이때만큼은 탁발하러 나갈 때의 평범한 모습이 아닌 여래의 존귀한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이윽고 핏파리가 나타났다. 핏파리는 부처님을 보고 한눈에 자기가 찾는 스승님이라는 것을 알았다. 핏파리는 부처님께 엎드려 머리를 발에 대고 예배했다. 부처님은 핏파리를 옆자리에 앉게 한 다음 그를 위해 진리를 설했다. 오랫동안 진리에 목말라 있던 핏파리는 짧은 시간에 부처님의 말씀을 금세 이해했다. 핏파리는 부처님의 제자자 된 지 여드레째 되는 날 아라한이 되었다. 부처님은 핏파리를 가섭이라 부르셨다. 한편 기원정사 근처에서 수행하던 바드라는 5년 쯤 지나 부처님의 양어머니인 마하프라자파티를 따라 여승이 되었다.


가섭이 부처님의 제자가 되어 라자그리하로 돌아오던 길이었다. 부처님이 나무 아래 앉으려고 하자 마하가섭이 자신의 겉옷을 벗어 네 겹으로 접은 뒤 그 위에 앉게 했다. 부처님은 마하가섭의 옷을 손으로 만지시며 옷이 부드럽고 좋다고 칭찬하셨다. 마하가섭은 그 옷을 부처님께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대신 자신에게는 부처님이 입고 계신 낡은 분소의를 주시라고 청했다. 분소의(糞掃衣)는 무덤 같은 데 버려진 헝겊 조각으로 만든 누더기로 청빈한 수행자의 옷을 일컫는다. 수행자가 탐심(貪心)을 여의고 검소함을 닦기 위해 입는 ‘법의(法衣)'다.


마하가섭이 부처님을 처음 만난 자리에서 부처님의 누더기옷을 물려받았다는 사실은 중요한 종교적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마하가섭은 평생을 엄격하게 검소하고 청빈한 삶을 살았다. 편안한 집에서 사는 대신 거친 산과 들에서 잤다. 바리때에 들어 있는 음식 외에는 먹지 않았다. 입는 것은 다 떨어진 누더기옷이었다. 분소의에 맞는 사람의 모습이다. 그러나 분소의를 입은 마하가섭의 내면에는 그 어떤 사람보다 더 높은 덕이 자리하고 있었다. 흔히 스승이 후계자를 정할 때 ‘의발을 물려준다’는 표현을 쓴다. 마하가섭이 부처님의 분소의를 받은 것이 그에 해당된다. 그 옷이 아무리 낡고 떨어진 옷이라도 상관없다. 스승님의 뜻이 제자에게 전해졌음을 의미하는 상징이라는 것이 더 중요하다. 마하가섭이 부처님의 수제자였음은 만남에서부터 특별하다. 부처님은  마하가섭을 처음 만날 때 직접 나가 맞아들이고 며칠을 같이 지내셨다. 예외 없는 일이었다. 사리불과 목련은 물론 다른 제자들을 처음 만날 때도 그런 일은 없었다. 이미 전생에서부터 스승과 제자 사이였음을 알 수 있다. 종교적인 신비성이 아니면 이해할 수 없는 만남이다. 마하가섭은 부처님이 살아 계실 때도 부처님을 대신할 정도의 큰 인물이었다. 마하가섭은 ‘위대한 가섭’이라는 뜻이다.


부처님이 세 명의 제자를 만난 일은 모두 죽림정사에 계실 때였다. 스승과 제자가 만날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해준 빔비사라왕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 지 새삼 확인할 수 있는 일이었다.

 

 

▲작자미상, ‘모란도10곡병’, 18세기, 비단에 색, 194×580cm, 국립중앙박물관

 

 

10폭 병풍 가득 모란이 피었다. 모란(牧丹)은 ‘꽃의 왕(花王)’이라 불릴 만큼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결혼식이나 회갑잔치 등 경사스런 날에는 항상 모란병풍을 둘러쳤다. 모란은 늦은 봄날 천지를 화려하게 수놓는다. 주먹만한 꽃송이들이 겁도 없이 세상에 불쑥 튀어나온 보습을 보면 왜 사람들이 모란을 사랑하는 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풍성한 꽃들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안기는데 남루한 슬픔에 빠져 있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색깔 또한 흠잡을 데 없이 환하다. 붉은색, 분홍색, 흰색, 황금색의 꽃이 고혹적으로 피어난다. 모란꽃은 성격도 화끈하다. 우루루 피었다 우루루 떨어진다. 꽃에게 허락된 시간만큼만 살다 갈 뿐 허락되지 않는 시간에 대해서는 미련을 갖지 않는다. 제 몫의 인생을 다 살고서도 더 살기 위해 이승 앞에서 어슬렁거리는 사람이라면 모란에게 배워야 한다. 떠나갈 때가 언제인가를 알고 있는 이의 뒷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 지를. 피어 있을 때도 떠나갈 때도 아름다운 꽃 모란은 그래서 부귀와 고귀함의 상징이 되었다.


‘모란도10곡병’은 여러 색으로 활짝 핀 모란을 10폭 가득 그렸다. 여기서 10폭으로 나눠진 병풍은 큰 의미가 없다. 그저 많은 모란을 그릴 공간이 필요해서 여러 폭이 덧붙여졌을 뿐이다. 그런데 ‘괴석모란도8곡병’은 조금 다르다. 8폭 모두 같은 형식의 모란을 그렸지만 각 폭의 모란은 이웃한 모란과 섞이지 않는다. 독립적이다.

 

 

▲작자미상, ‘괴석모란도8곡병’,19세기, 비단에 색, 각231×54.5cm, 서울역사박물관

 

 

조선시대 궁중에서 사용한 모란병풍은 두 가지 형식으로 분류할 수 있다. 첫 번째는 하나의 주제를 각 폭의 구분 없이 병풍 전체에 연속적으로 그리는 형식이다. ‘모란도10곡병’이 대표적인 예로 10폭의 경계를 뛰어넘어 모란이라는 한 가지 주제가 넓은 화면에 펼쳐진다. 이런 형식을 연폭(連幅)형식 혹은 왜장병풍(倭裝屛風)형식이라 부른다. 두 번째는 각 폭마다 다른 주제를 그리는 형식이다. ‘괴석모란도8곡병’이 대표적인 예로 8폭 각 폭을 모두 독립적인 주제로 그렸다. 이런 형식을 각폭(各幅)형식 혹은 각장병풍(各裝屛風)형식이라 부른다. ‘괴석모란도8곡병’에서는 같은 그림이 번갈아 등장했지만 8폭이 모두 다른 그림으로 채워질 때도 있다.


연폭형식으로 된 ‘모란도10곡병’이 마치 실제 자연 속에 핀 꽃을 그린 듯 사실적이라면 각폭형식으로 된 ‘괴석모란도8곡병’은 두 가지 패턴의 모란 그림을 반복해서 배열하여 사실성이 떨어진다. 인위적이며 도식적이다. 그러나 동일한 형식의 모란을 반복적으로 수직 배치함으로써 깔끔하게 정리된 듯한 질서정연함이 느껴진다. 모란 병풍은 궁중에서 의식과 의례가 행해지는 장소에는 빠짐없이 사용되었다. 화조병풍이나 십장생병풍 등이 가례나 길례 등 경사스런 장소에서만 사용되었다면 모란병풍은 국상을 당했을 때의 흉례 때도 두루 쓰였다. 격식이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모란병풍이 있었다.


연폭으로 그렸거나 각폭으로 그렸거나 상서로움을 담은 모란의 의미는 훌륭하게 반영됐다. 어떤 형식으로 그렸더라도 모란은 모란이다. 모란의 특징과 상징성이 잘 전달되었으면 충분하다. 백인백색의 개성을 가진 부처님의 제자들도 병풍 속에 펼쳐진 탐스러운 모란꽃이다. 10폭 병풍에 여러 빛깔의 모란꽃이 주렁주렁 달려 있듯 부처님의 제자들도 여기저기서 몰려들었다. 그들은 저마다 붉은색, 분홍색, 노란색, 하얀색 등 자신만의 색으로 빛난다. 모란꽃이 비록 색깔이 다르더라도 모두 작약과에 속하는 낙엽관목이라는 점에서는 똑같듯 제자들 또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른다는 점에서는 똑같다. 번뇌를 없애고 검소한 생활을 택한 두타제일(頭陀第一)의 꽃 마하가섭, 부처님 법문을 가장 많이 듣고 기억한 다문제일(多聞第一)의 꽃 아난존자, 지혜가 가장 뛰어난 지혜제일(智慧第一)의 꽃 사리불존자, 공(空)의 이치를 가장 정확히 분별한 해공제일(解空第一)의 꽃 수보리존자, 부처님의 법을 가장 조리 있게 가르쳐 준 설법제일(說法第一)의 꽃 부루나존자, 신통력이 뛰어난 신통제일(神通第一)의 꽃 목련존자, 교의에 대한 논의가 가장 뛰어난 논의제일(論議第一)의 꽃 가전련존자, 육신의 눈은 멀었으나 마음의 눈이 열려 천상세계를 잘 본 천안제일(天眼第一)의 꽃 아나율존자, 계율을 지키는 데 타의 모범이 된 지계제일(持戒第一)의 꽃 우바리존자, 남의 눈에 띄지 않게 배운 바를 실천한 밀행제일(密行第一)의 꽃 라훌라존자. 이 열 송이의 꽃을 부처님의 십대 제자라 부른다.

 

▲조정육

조금 지나면 여기에 다른 색깔의 꽃이 첨가될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모란은 아니더라도 수자타 장자, 제타태자같은 다른 종류의 꽃과 나무도 부처님의 품 안에서 화려한 꽃을 피울 것이다.

 

우리는 그들을 제가신자라 부른다.

 

조정육 sixgardn@hanmail.net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