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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허 스님

기자명 법보신문

50년대 말 스님과 첫 인연
‘불교입문’ 등 강의하시며
삶으로 가르침 전한 도인

 

사람이 한 평생을 살면서 잊을 수 없는 사람이 한두 명이겠느냐마는 그 중에도 삶에 큰 의미를 주고 오랫동안 기억되는 사람은 운허 큰스님이시다. 운허 스님과의 인연은 크게 세 가지라고 할 수 있다.


첫째 스님으로부터 불교입문을 수강했다. 그때가 1950년대 말이었다. 무엇을 하는 데는 처음이 중요하다. 처음이 바르게 시작돼야 끝도 바로 갈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내 불교공부의 시작은 스님께서 잡아주신 것이다. 그 후 ‘능엄경’ 강의도 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스님의 강의가 아닌 다른 불교를 만났다면 지금의 나는 아니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둘째는 스님께서 한국 최초로 ‘불교사전’을 편찬하실 때 불러주셔서 한때나마 스님을 모실 수 있었다. 말이 사전편찬을 돕는 일이지 많은 것을 배우고 또 스님의 높은 인품을 알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세 번째는 내가 군법사 1기로 입대했다가 제대한 후 동국역경원으로 오게 되었고, 그때 스님은 동국역경원장으로 계셨다. 원장이시기에 매일 출근하거나 행정을 보시지는 않았다. 그러나 스님을 또 다시 모실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이 같은 인연으로 스님의 높으신 인품과 불교적 삶, 국가에 대한 애국심 등 스님의 많은 것들을 느낄 수 있었고, 그것은 말 없는 가운데서 내 삶의 거울이 되었다.


스님은 일찍이 열세 살에 중국어 원문의 ‘삼국지’를 읽으셨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스님의 말씀이 아니고 주위에서 들은 이야기다. 그 후 독립운동을 위해 만주에서 활동하시다가 큰 사명을 띠고 국내에 들어왔고, 왜경의 추격을 피해 산으로 들어간 것이 출가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스님은 강사로 계실 때 학인들이 소포에 간단한 편지를 넣어 보내는 것을 아시고는 “사소한 일 같지만 국법을 어기는 일”이라고 꾸중하셨다. 한 번은 시험을 칠 때, 커닝을 한 학인이 성적이 잘 나오지 않았다고 스님께 정정을 요청한 일이 있었다. 스님께서는 커닝한 것을 다 알고 계셨다. “네가 성적이 좋지 않게 나올 때 알아야지 나한테까지 오다니, 참으로 둔근(鈍根)이구나”라고 하셨다.


스님은 동국역경원장을 하시면서 남양주 봉선사에서 버스로 의정부까지, 의정부에서 서울 수유리까지, 수유리에서 충무로 4가 대한극장 앞까지 와서 걸어서 학교까지 오셨다. 이때가 1970년대 초이니까 스님의 나이 80여세였다. 이처럼 스님께서는 배운대로, 아는대로 행동으로 옮기신 어른이시었다. 스님은 말로써 우리를 가르친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삶으로 가르침을 보이셨다.


우리나라에 누구누구 하는 큰스님들과 많은 도인들이 있다지만, 스님 같은 도인은 볼 수가 없었다. 도는 몸 안에 감춰있는 것이 아니라 몸 밖으로 나와 행동으로 보여져야 한다. 그래서 누라도 보면, ‘아 저 분이 도인이구나’ 할 수 있어야지 도 따로 사람 따로의 도인은 도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런 점에서 스님은 진정한 도인이셨다. 스님께서는 한 번도 화를 내거나 욕심을 부리거나 누구를 미워하는 낌새를 느낄 수 없었다.


나는 스님께 강의를 듣기는 했지만 전강(傳講)을 받지도 않았고, 스님 문중의 일원도 아니다. 그러나 스님을 잊을 수 없는 것은 바른 불교의 길을 가게 해주셨고, 바른 불교적 삶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신 어른이시기 때문이다. 스님은 한국 최초로 ‘불교사전’을 편찬하고 대장경을 번역하셨으니, 그 큰 업적은 구마라집이나 현장 삼장에 버금간다. 이 같은 어른과 한때만이라도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은 내 인생에 있어서 크나큰 복이 아닐 수 없다.

▲권기종 명예교수

스님께서 좀처럼 글을 쓰시지 않는데 내게 글 한 폭을 써주시어 가보로 보관하고 있다.

 

동리적막일지국(東寂寞一枝菊)
불입왕손취후배(不入王孫醉後盃)


동쪽 고요한 울타리 밑의 한 가지 국화는 권력 있는 왕손들의 국화주 술잔 속으로 들어가서는 안 된다.”


동국대 권기종 명예교수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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