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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마음조절

기자명 법보신문

제멋대로 노니는 마음 먼저 꿇어 앉혀야

번뇌 결합된 습관 탓에
마음은 이리저리 헤매
염불·독경 등 수행으로
선정 닦아 안정시켜야

 

“아이가 말을 잘 듣지 않습니다.” 어느 거사님이 말했다. “당신은 당신의 말을 잘 듣습니까”라고 했더니, 한참을 생각하고는 아니라고 답했다. 나는 거사님에게 “아이만 당신 말을 듣지 않는 것이 아니라, 당신도 당신의 말을 잘 듣지 않고 있네요”라고 했다. 한참을 더 생각하더니 아이에 대한 불만이 많이 가라앉은 것 같아 보였다.


내가 누군가의 말을 듣기 이전에, 내가 내 말을 들을 줄 알아야 한다. 내가 나의 조절범위 안에 들어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우리는 번뇌와 결합된 습관에 끌려 다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보통 우리의 습관은 우리의 조절범위를 벗어나 있거나 벗어나려고 하고 있다. 나도 내 마음대로 하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을 내 마음대로 하려고 한다. 다른 사람도 자기 스스로 자신을 마음대로 조절하지 못하여 헤매고 있는데도 말이다. 기대는 높은데 현실은 항상 아래에서 노닐고 있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정행품 경문을 보자.


“선정을 닦을 때면, 중생들이 선정으로써 마음을 항복시키고 남김이 없는 구경에 이르기를 발원해야 한다.”


‘선정을 닦을 때면’에서 ‘선정’이라는 것은 몸과 말과 마음의 행위를 편안하게 안정시키는 수행방법이다. 선정의 수행을 선종에서만 전문적으로 하고, 다른 종파에서는 하지 않는 것으로 아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어느 종파라도 선정을 닦지 않는 곳은 없다. 다만 선정을 닦는 방법이 다를 뿐이다. 선정을 효율적으로 닦아야 지혜를 열 수 있다. 각 종파는 지혜를 열 수 있는 다양하고 효율적인 방법 가운데서, 하나의 체계를 선택해서 중심 수행방법으로 활용하고 있다.


‘선정으로써 마음을 항복시킨다’는 것은 선정의 효과가 된다. 수행의 결과에서는 선정과 지혜를 함께 이야기하고, 수행의 과정에서는 지(止)와 관(觀)을 말한다. ‘관’은 알아차리고 인정하는 행위다. ‘지’는 일체의 번뇌와 동요를 내려놓고 그침으로써, 자성의 본래 청정하고 평등하며 지혜롭고 자비로운 모습을 회복하는 행위다. 지관(止觀)이 완성이 된 상태가 선정과 지혜다. 그러면 지관 가운데 지(止)의 작용을 살펴보자.


먼저 정토종의 입장을 살펴보자. 정토종의 수행법에는 세 가지 핵심 요소가 있다. 첫째 서방극락세계와 아미타불의 존재를 확실하게 믿는다. 둘째 서방극락세계에 태어나 아미타불의 교화를 받길 발원해야 한다. 셋째 지극한 마음으로 아미타불의 명호를 염한다. 명호를 염하는 사이에 잡념이 끼어들지 않도록 집중해서 간절하게 한다. 잡념이 들어오면 잡념이 들온 것을 알아차리고 알아차린 순간 다시 명호에만 집중한다. 절대로 잡념과 다투지 않는다. 명호를 염하는 순간 오직 명호만 있고 다른 잡념이 없는 경지를 일심분란이라 한다. 이 경지에서는 몸과 마음과 그리고 생활환경에 대한 집착이 없어진다. 집착이 남아있다면 명호에 대한 집중이 순일하지 못할 것이다. 집착이 얕아질수록 명호에 대한 집중이 깊어진다. 이렇게 일체의 집착을 내려놓고 명호에 집중하는 선정으로써 마음을 항복시키는 것이다.


‘금강경’에서는 경전을 많이 수지독송(受持讀誦)하기를 권하고 있다. 이것은 경전을 독송하면서 선정을 닦는 방법이다. 경전을 믿고 이해하여 받아들이는 것이 수(受)가 된다. 받아들인 경전을 몸과 말과 마음으로 익히고 표현하는 것을 지(持)라고 한다. 수지(受持)라는 말은 믿고 이해하고 실천하여 생활화한다는 말이다. 경전의 가르침을 우리 삶속에 생활화하려면 독송(讀誦)이 필요하다. 독(讀)은 보고 읽는 행위다. 경전을 보고 반복해서 읽는다. 읽을 때는 문구의 뜻을 분명히 하면서 집중해서 읽는다. 경전을 읽는 사이에 다른 잡념이 들어오지 않도록 한다. 들어왔다면 그 잡념을 내려놓고 다시 경전에만 집중한다. 이러는 사이에 우리는 몸과 마음과 세계에 대한 집착과 분별과 망상을 벗어나 근본지를 여는 경지에 도달하게 된다.


송(誦)은 경전의 문구를 보지 않고 외울 수 있는 상태다. 경전을 많이 읽으면 자연히 외우게 된다. 경전 전체를 능숙하게 외우고 있으면 우리의 행주좌와에 경전의 안목으로 처신하며 우리의 신구의 삼업을 바꾸어 부처님의 신구의 삼업으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경전을 외울 수 있어도 하루에 일정시간 단정하게 앉아서 경전을 놓고 읽는 수행을 해 나가는 것이 수지독송 수행법이다. 우리는 수지독송이라는 선정 수행법으로 우리의 마음을 항복시킬 수 있다. 천태종의 천태지자대사도 ‘법화경’을 독송하다가 약왕보살본사품에서 깊은 선정을 체험하고 깨달음을 얻었다. 이렇게 각각의 종파는 자기에 맞는 수행법으로 선정을 닦는다.

 

▲도암 스님

‘남김이 없는 구경에 이르기를 발원해야 한다’에서 ‘남김이 없는 구경’이란 수행을 성공적으로 해나가는 과정에서 좋은 결과를 만나게 된다. 그 결과 가운데는 최종결과가 있고 중간과정에서 얻는 결과가 있다. 중간과정의 결과를 ‘닦을 것이 남아 있는 결과’라 한다. 아라한이나 벽지불 그리고 보살의 경지를 말한다. 최종의 경지인 부처님의 경지가 ‘남김이 없는 구경의 경지’가 된다.

 

도암 스님 송광사 강주 doam199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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