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진 빠모 스님
텐진 빠모 스님
  • 법보신문
  • 승인 2013.11.13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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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로운 세상 원한다면 나부터 늪에서 벗어나라

8살 때 태국사원 보며
‘나는 불자다’ 처음 인식


숱한 종교·철학 찾았지만
가슴 속 공허함은 여전

 

불교 접한 후 환희 눈물
티베트 사원으로 곧 출가

 

12년간 히말라야 동굴서
생과 사 넘나드는 정진

여성도 당당한 깨달음 주체
비구니 스스로 길 개척해야

 

 

▲텐진 빠모 스님

 

 

“비구니 스님으로서의 자긍심을 가져합니다. 그리고 지금보다 더 정진하시기 바랍니다. 비구니 스님이 가야할 길은 비구 스님이 개척해 주지 않습니다. 스스로 고유 영역을 확대해 가야 합니다. 비구와 비구니의 역할이 조화를 이룰 때 진정한 승가가 구현되는 것입니다.”


텐진 빠모 스님의 일성이 조계종 국제불교학교 강단에 울려 퍼졌다. 누구인들 비구니 스님의 역할 증대를 역설하지 않았겠는가. 하지만 텐진 빠모 스님의 이 한마디는 ‘말’이 아닌 ‘뇌성’으로 들려온다. 그 뇌성이 가슴을 요동치게 한다. 혈관 속을 흐르는 피가 더욱 붉어지는 듯하다.


어린 시절부터 스님은 범상치 않았다. 텔레비전에 비춰지는 태국 사원을 보는 순간 ‘나는 불자’라 스스로 인식했다. 그 때가 8살이다. 10대에 접어들며 인식의 폭은 더욱 넓고 깊어졌다. ‘인간은 원래 완벽하다. 본성이 완벽하기 때문이다. 산다는 건, 자신이 진정 누구인지를 발견하기 위해서다. 온전한 본성을 발견할 때까지 잠시 방황할 뿐이다.’ 하지만 스스로 물었다. ‘어떻게 완벽해지는가?’ 그 답을 찾기 위해 기독교 성서는 물론 코란에도 손을 뻗어 보았다. 그 결과가 궁금하다. 스님이 내놓은 ‘마음공부’를 엿보자.


‘대부분의 종교는 영혼과 창조주 사이에 놓인 관계를 기본 전제로 한다. 창조주가 만들어 놓은 진정한 영혼을 찾아가는 길이다. 헌신을 담보로 한다. 그런 길은 나에게는 별 의미가 없다. 나에게 있어 하나님이나 절대 신은 산타클로스보다 조금 더 위대한 존재다.’


성현으로서는 충분히 인정하나 자신이 던진 질문에 해답을 주지는 못한다는 의미다. 18세에 사르트르와 카뮈의 책을 읽었다. 실존주의에 혹 의문의 답이 있을까 하는 기대감에서였다. 신통치 않았다.


도서관에서 사서로 일하고 있을 때 ‘흔들림 없는 마음’이라는 작은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영국 출신의 저널리스트가 태국에서 보낸 추억에 관해 쓴 책이다. “완벽한 본성을 찾아가는 길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모든 것을 포용하는 ‘큰 마음’이 너무도 매력적이었습니다.”


사성제, 팔정도를 본 것이다. 전지전능한 창조주나 신이라는 개념 없이 우리 자신을 내면으로 이끄는 길을 제시한 부처님에 감사하며 눈물을 흘렸다. ‘욕망을 버리자!’ 화장을 멈췄다. 옷을 내다 버렸다. 그리고 남자친구와도 헤어졌다. 영원한 스승 캄트롤 린포체를 만나 서양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티베트 교단에서 사미니계를 받았다. 수백 명의 수행자들이 운집한 곳에서의 텐진빠모는 홍일점이었다. 하지만 일생에서 처음으로 좌절감을 맛보았다.

 

 

▲텐진 빠모 스님은 비구니 국제불교학교 강연에서 “비구니 스님이라는 자긍심을 갖고 더 정진해 달라”고 당부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공동체 생활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티베트 불교계는 지금도 비구니계를 주지 않는다. 비구니 승단이 아예 없다. 텐진 빠모 스님이 여성 수도원 ‘동규 갓찰 링’을 운영하며 인재양성에 매진하면서도 티베트 불교계에 비구니 계단을 설치에 힘쓰는 건, 여성으로서 겪어야만 했던 절박함과 절망을 몸소 절감했기 때문이다.
12년의 승원 생활을 접었다. 1만2000미터의 히말라야 동굴로 향했다. 하루 3시간만 잠을 자는 정진은 그렇게 시작됐고 12년 동안 이어졌다. 텐진 빠모 스님은 부처님이 유일하게 번복한 사건을 들었다.


“마하프라자파티(부처님 의붓 어머니)가 여승을 위한 수도원을 세우고 싶다고 세 번 요청했지만 ‘안 된다’는 답변만 들어야 했습니다. 절박함과 아쉬움에 눈물만 흘려야 했습니다. 그 때 아난다가 사연을 알고 부처님께 말씀 드립니다. ‘여성들이 거룩한 수행의 삶을 살고 궁극적인 자유를 얻는 것이 가능합니까?’ ‘물론이다.’ ‘그렇다면 왜 여성들의 소망을 가로막으십니까?’ 결국 붓다는 여성들의 출가를 승낙했습니다. 비구님 스님이 지켜야 할 계율이 이를 방증하고 있지 않습니까? 수세기 동안 수많은 여승들은 아난다 존자에게 깊은 감사를 표해왔습니다.”


텐진 빠모 스님은 비구니 스님들에게 의미 깊은 일언을 다시 전했다.


“수행이란 기쁨이어야 합니다. 시련이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나를 넘어 다른 이를 위한 수행이어야 합니다. 이 점을 망각한 수행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습니다.” 고독한 수행을 즐거움으로 승화시킬 수 있다는 말인가?

 

 

▲텐진 빠모 스님은 서울대 강연에서 “욕심에 휘둘리는 삶에서는 행복을 찾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12년간 수행을 해온 그 동굴은 울퉁불퉁한 천장 아래로 몸을 꾸부정하게 웅크린 채 서 있어야 하는, 차라리 벽장이라고 할 정도의 크기 밖에는 되지 않았다. 산사태, 맹수의 위협, 극심한 추위, 육체적인 질병 등 심각한 재난 속에서 그녀는 혼자 맞서야 했다. 산사태는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간 재난이었다. 당시 스님도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고 탄식했었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스님은 자신을 관조하며 마음을 추슬렀다. 스님의 정신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실감케 한다.


그럼에도 스님은 ‘동굴 수행 여정은 자신에게 더 없는 행복한 나날의 연속’이었다 술회한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마친다면 언젠가 다시 그 동굴로 돌아갈 것이라는 고백에서 스님의 진정성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당시 체득한 그 무엇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과정이 행복했다 해도 결과가 좋지 않으면 불행했다 인식하지 않는가?
“절체절명 순간, 저는 윤회를 떠올렸습니다. 윤회가 있기에 다음 생에도 여전히 행복한 것을 추구하는 것일까요? 왜 행복을 바라는가? 만일 행복이 거기 있다면 그런 것이고, 행복이 없다면 또 그런 것일 뿐입니다. 이런 모든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느끼는 순간 중압감은 사라져 버렸습니다. 희망만 있을 뿐이었습니다.”


텐진 빠모 스님은 ‘수행을 하려는 진정한 이유가 수행의 결과를 결정한다’고 강조한다. 나 자신만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인가? 그만한 이유가 있다. 스님이 내 놓은 ‘마음공부’를 좀 더 살펴보자.


‘명상을 하기 위해 방석 위에 앉으면 세상으로부터 고립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수행하는 사람들은 세상과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밟고 있는 땅, 마시는 물과 공기를 비롯해 모든 것을 공유하고 있다. 일반적인 생물뿐 아니라 훨씬 더 높고 존귀한 존재들과도 연결되어 있다. 그 고귀한 존재들이 바로 우리 옆에서 성원을 보내준다. 우리는 세상 모든 것을 함께 나누고 있다.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윤회와 인과를 통찰한 스님만의 메시지가 아닐 수 없다.


“업은 현세뿐 아니라 다음 생에도 이어진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저 역시 똑같은 텐진 빠모로 돌아오지 않습니다. 다른 어떤 존재가 이 곳에 있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나의 정신과 의식의 흐름, 그리고 그 에너지는 그 어떤 존재의 일부분으로 다시 함께 존재할 것입니다. ‘무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면 이 세상 모든 존재가 무한한 생에 있어 자신의 아이고 소중한 부모이며, 친구이고, 남편이나 아내입니다. 이 하나만이라도 깨닫는다면 어떻게 그들을 고통 속에 그냥 내버려둘 수 있겠습니까? 사소한 일이라도 무한하게 뻗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텐진 빠모 스님이 여성 수행자를 위해 마련한 인도 따시종 지역의 ‘동규 갓찰 링’.

 


우리의 일상 언행 하나도 조심해야 한다고 설파하고 있다. 나아가 수행 역시 연기법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는 뜻이리라. 나와 가까운 누군가를 위해 선행을 베푸는 게 아니라 온 세상을 위해 선행을 베풀어야 한다는 뜻의 다름 아니다.


스님은 불교적 선행이란 고귀하고 가치 있는 것을 헌납하는 것이라 단언한다. 무엇을 헌납하는가? 의외의 답이 돌아온다.


“우리의 깨달음, 우리의 행복, 우리의 미덕을 다른 사람에게 바쳐야 합니다. 이런 태도가 마음속에서 자라기 시작하면 이해의 씨앗에서 작은 싹이 트면서 모든 것을 바꿔 놓는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세상 만물은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스님은 세상을 최선의 상태로 만들려 노력해도 일순간 바뀌는 건 가능하지 않다고 짚었다. 그보다는 자신의 의식을 바꾸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 결과는 정말 놀랍습니다. 자신의 모든 것이 바뀝니다. 자신의 인생을 조금 더 명확하게 보게 되면 마음도 더 관대해집니다. 그 마음을 나누어야 합니다. 그 마음을 바쳐야 합니다. 그러면 세상은 조금씩, 아주 조금씩이나마 최선의 상태를 향해 변화할 것입니다.”


스님은 달라이라마를 만나본 적 있느냐고 물었다. 친견한다면 ‘달라이라마가 오직 당신만을 위해 존재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라 한다.


“달라이라마 성하는 사람을 만날 때 마음과 마음으로 만납니다. 달라이라마로서 사람을 만나는 게 아니라 그저 소박한 승려로 사람을 만납니다. 대통령, 의사, 노동자라 하는 가면은 허용치 않습니다. 그저, 그 사람 그 자체와 이야기를 나눕니다. 친하고 가까운 사람들을 만날 때에도 전에 한 번도 만나지 않은 사람인 것처럼 다가서 보세요.”


텐진 빠모 스님은 한국 불자들에게 전하는 당부의 한마디도 잊지 않았다.


“자신이 늪 속에 있는 한, 아무리 다른 사람을 돕고 싶어 한들 도울 수 없습니다. 자신이 먼저 단단한 땅에 발을 내딛어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수행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채한기 상임논설위원 penshoot@beopbo.com




텐진 빠모 스님

텐진 빠모는 1943년 런던에서 한 생선 장수의 딸로 태어났다. 10대 때 불교를 접하며 동양의 고독한 수행과 인간의 완전성을 동경하며 성장했다. 20대에 내면의 소리를 좇아 인도행 배에 단신으로 몸을 실었고, 그곳에서 영적 스승 캄트롤 린포체를 만나 그의 유일한 여승제자가 되었다.  스님은 ‘지금 자신이 선 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행복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를 세상 사람들에게 권하고 있다. 스님은 자신처럼 수행하기를 바라는 수많은 여성들을 위해 ‘동규 갓찰 링’ 수도원을 설립해 인재양성에 힘쓰고 있다.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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