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응답하라 1933, 티베트-1
44. 응답하라 1933, 티베트-1
  • 법보신문
  • 승인 2013.11.19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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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화로 퇴색되고 있는 ‘샹그릴라’

‘지상의 낙원’으로 불리던
중국 운남성 티베트자치주
한족·관광객 대거 유입으로
티베트 탈정체성 급속 확산

 

 

▲티베트인들의 언어와 복식은 그들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유지하는 방법 중의 하나이다. 하지만 샹그릴라현의 티베트인들은 경계를 허물고 들어오는 외부인들의 영향으로 그들의 언어와 복식을 벗어던졌고 심지어 정신적 토대인 불교사원마저도 외면하고 있다. 사진 속의 티베트인은 앞으로 사원에 보시 하지 않고 저축을 하여 개인 관광사업을 하고 싶다고 했다.

 

 

상상을 해보았다. 당나귀와 얼룩말은 서로 사랑할 수 있을까? 사랑해서 새끼를 낳는다면 그 종은 어디에 속하는 것일까? 말도 안 되는 상상이다. 그런데 최근 이런 상상 속의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이탈리아에서 암컷 당나귀와 수컷 얼룩말 사이에서 암컷 ‘얼나귀’가 태어난 것이다. 그것도 인위적으로 감행한 것이 아니다. 이탈리아 동물보호소는 울타리 하나를 두고 당나귀와 얼룩말을 서로 격리해 보호했으나 어느 날 얼룩말이 울타리를 훌쩍 뛰어 넘어 당나귀와 짝짓기를 했다는 것이다. 울타리라는 경계를 뛰어 넘은 것이다. 아무래도 얼룩말이 짝사랑을 한 것 같다. 다행히 이 ‘얼나귀’는 어린아이처럼 잘 뛰어다니며 놀고, 다른 당나귀들도 이 ‘얼나귀’를 같은 종으로 생각해서인지 크게 배척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런 이종교배와 같은 일이 최근 티베트에서도 일어나고 있다면 이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시작은 193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933년 영국의 소설가 제임스 힐튼(James Hilton)은 ‘잃어버린 지평선을 찾아서(Lost Horizon)’에서 ‘샹그릴라’라는 이상세계를 세상에 처음 소개했다. 그리고 이 원작을 바탕으로 1937년 프랭크 카프라(Frank Capra)감독은 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전쟁을 피해 비행기에 오른 네 명의 사람들이 히말라야 티베트 산 속에 불시착했는데 그곳에서 그들은 지상낙원을 보았고 그곳을 떠난 후에도 그곳을 잊지 못한다는 내용이다.

 

이 소설로 인해 ‘샹그릴라’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꿈꾸는 최후의 ‘낙원’, ‘이상향’을 상징하는 상상의 유토피아로 급부상했다. 당시 제1차 세계대전의 후유증과 경제적인 대공황, 제2차 세계대전의 암운이 드리워지기 시작하던 정세 속에서 서구인들에게 샹그릴라는 마음속의 유토피아가 되었다. 따라서 동명의 영화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이후, 이 단어는 도처에서 사용되기 시작했다. 5성급 호텔의 이름으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하와이의 진주만에서 일본군에게 격침된 거대한 군함 이름으로, 미국 육군항공대의 비밀기지 이름으로, ‘샹그릴라’는 매우 고급스럽고 호화로운, 또는 ‘은밀한 곳에 위치한 신비로운 장소’ 등의 묘한 선망과 향수를 자아내는 신비한 뉘앙스를 풍기며 서구인들에게 가장 어필하는 단어 중의 하나가 되었다.


중국 운남성(雲南省) 디칭티베트자치주(迪庆藏族自治州) 샹그릴라현(香格里拉)은 매년 전 세계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지역 중의 하나이다. 디칭은 중국 운남성의 서북부에 위치한 유일한 티베트자치주이다. 티베트어로 ‘행운이 깃드는 곳’이란 뜻을 가지고 있고 평균 해발 3300m의 칭장고원(靑藏高原)지대에 위치하고 있다. 가장 높은 지역은 6740미터의 만년설산인 매리설산(梅里雪山)으로 티베트불교의 4대 신산(神山)중 하나로 티베트인들에게 성스러운 산으로 추앙받고 있다. 또 진사강(金沙江), 난찬강(澜沧江)), 누강(怒江)등 세 개의 큰 강이 주변을 흐르는 독특한 생태환경을 가지고 있다. 많은 여행책자에서 이 지역을 ‘윈난의 티베트’로 소개하기도 한다. 디칭은 1990년대 중국정부의 주도로 1998년 중뎬현(中甸县)을 샹그릴라현(香格里拉县)으로 이름을 바꾸고 이방인들이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도록 개방했다. 그리고 이 지역의 관광업 부흥을 위해 인프라구축도 착수했다. 1999년 ‘샹그릴라’공항을 완공했고, 이 지역의 대표적 여행지인 리장(麗江)과 연결하는 도로를 만들었다. 중국이 중뎬을 샹그릴라로 개명한 것은 ‘샹그릴라’라는 소설 속 허구의 세계가 현실 세계에서 구체성을 가진 새로운 도시로 탄생한 획기적인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샹그릴라’의 개명은 자연스럽게 전 세계적으로 홍보 효과를 발휘했고, 관광업 촉진에도 확실한 기여를 했다. 이는 매년 샹그릴라를 방문하는 여행객의 폭발적 증가와 다양한 이방인들의 이주가 이를 증명한다.


그런데 이 지역이 정말 우리가 상상하던 샹그릴라일까? 도시의 이름(샹그릴라)처럼 이 지역이 지구상에서 최후의 이상세계를 간직하고 있는 생태환경과 인간 세계를 간직하고 있을까? 내심 궁금해서 이 지역을 다녀왔다. 하지만 이 지역은 기대했던 상상과 달리 전혀 다른 공간이었다. 세속적인 사람들로 거리는 북적이고 황홀한 네온사인이 밤마다 사람들을 유혹한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찾아갔던 티베트 불교사원에서는 사진 찍는 관광객들로부터 최선을(?) 다해서 돈을 받으려는 라마승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내가 살고 있는 문명의 세계와 다르지 않았다.


디칭티베트자치주는 1950년 중국이 이 지역을 무력으로 점령한 이후 탈경계의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특히 1998년 기존의 중덴(中甸)지역을 새로이 샹그릴라(香格里拉)라는 지역 명으로 개명하면서부터 이 지역은 본격적으로 외부와의 민족적, 문화적 정신적 정체성의 경계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시내 곳곳은 상점, 식당 등 현대화된 중국 도시의 모습으로 전환되었고 이러한 개발붐과 더불어 한족의 유입이 증가하면서 티베트의 전통적인 문화와 정체성은 타격을 받기 시작했다. 이러한 현상은 오늘날 서구학계가 주목하고 있는 탈경계, 탈영토화, 혼종화, 혼종문화의 샘플 사례로서도 관심을 받고 있다.


‘혼종화’라는 개념은 ‘혼종문화’안에서 두 개의 서로 다른 대상들을 지시하고 있다. 하나는 문화 영역을 나누는 전통적인 분류 방식의 해체를 의미한다. 즉 대중문화, 민중문화, 고급문화 등이 서로 뒤섞이고 새롭게 ‘재(再)전환’되는 과정을 설명하고, 이를 통해 전통과 근대, 고급문화와 대중문화 등의 전통적인 이분법을 해체하기 위한 개념으로 사용된다. 다른 하나는 중국안의 한족과 소수민족 지역과 같은 선명한 경계지역에서 진행되고 있는 이른바 ‘탈영토화’과정과 관련되어 있다. 이곳은 생태환경과 역사적 조건을 달리하는 서로 다른 사회의 문화적 구성물들이 뒤섞이고 있는 곳이다. 이러한 혼종화를 통해 이곳에서는 더 이상 자민족의 정체성을 지켜내지 못하고 제3의 민족(=얼나귀) 혹은 경계문화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문화의 진정성이 아니라 ‘가식적인 환상’이 중요한 가치로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계속)

 

심혁주 한림대 연구교수 tibet007@hanmail.net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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