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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성륜산 용덕사

기자명 법보신문

적옥빛 신심 물고 승천 기다리는 용의 천년 공덕이 살아 숨 쉬다

신라 문성왕때 염거선사 창건
효심에 승천 미룬 용의 전설
대웅보전 뒤 굴에 서려 있어
한 가지 소원 성취되는 도량

 

 

▲좁은 바위굴 위, 하늘 길로 통하는 비밀스러운 틈으로 늦가을 바람이 든다. 바람 타고 온 손님이 용인 성륜산 굴암 용덕사 용굴의 어둠을 사른다. 하늘서 내려온 한 줄기 빛은 관세음보살님 용상에서 미끈한 어깨를 타고 내려와 몸 전체를 감싼다. 관세음보살님, 백옥 같은 웃음 피운다.

 

 

성륜산에 머물던 가을이 몇 발짝 비켜섰다. 단풍으로 산을 수놓던 가을은 생기 잃은 채 시무룩한 표정이다. 물러선 가을 곁에 성큼 겨울이 다가왔다. 체로금풍이다. 나무들은 바람에 맨살 드러내며 겨울을 맞이할 채비다. 비바람 막아주던 잎사귀들을 대지로 돌려보냈다. 꽃과 나뭇잎, 열매로 치장했던 겉모습을 내던지고 본체 그대로 시린 겨울을 나겠다는 의지다. 용덕사(龍德寺)는 입동(立冬)과 성륜산 언저리에 있었다.


조계종 제2교구본사 용주사 말사인 굴암 용덕사(주지 탄탄 스님)는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면 묵리로, 즉 용인 남쪽 부근인 안성과의 경계 성륜산 자락에 자리했다. 일주문 지나 가파른 길을 따라 용덕사에 들었다. 가지마다 말라가는 잎을 달고 있는 나무가 그늘을 짙게 드리웠다.


그늘 밖 종무소 앞 3층 석탑에 마음이 머물렀다. 고생을 많이 한 모양이다. 세월에, 각종 전란에 시달리고 구박받은 듯 온 몸이 상했다. 탑은 가난하고 남루했다. 용덕사를 중창한 도선 국사가 세운 탑이랬다. 도굴되고 파괴됐던 탑을 후대에 조합해놓은 것이라고 했다. 이 탑도 차가워진 늦가을 바람 온 몸으로 맞았다. 곧 다가올 겨울을 시리게 기다리고 있었다. 신라 말엽 도선 국사가 세웠으니 천년도 넘게 그랬으리라.

 

 

▲금빛 은행나뭇잎이 극락보전 향하는 길을 수놓다.

 


용덕사는 신라 문성왕 때 염거(?~884) 선사가 창건했다. 이후 도선(824~898) 국사가 3층 석탑 1기와 보살상, 철인 3위를 조성하면서 중창했다고 알려졌다. 용덕사는 1990년 본래 사찰이 자리했던 산 아래 대웅보전을 지으면서 위채와 아래채로 전각이 나눠졌다. 대중 대부분은 아래채에 기거하고 있으며 위채에는 극락보전, 삼성각, 굴암 등이 있다.


아래채를 둘러보니 종무소 위엔 대웅보전, 대웅보전 뒤 진신사리탑, 미륵전, 종각이 나란히 앉았다. 종각 옆 탑 잔해 위에 기도객들이 하나씩 놓은 돌도 차곡차곡 나란히 위로 쌓여 탑을 이뤘다. 가지런했다. 미륵전엔 석조여래입상(지방문화재 111호)이 모셔져 있었다. 지금은 도솔천에서 천신을 위해 설법하시리라. 석가모니 부처님이 입멸하신 뒤 56억7000만년 지나야 우리 곁에 오신다던데…. 아니다. 이미 용화수 아래서 성불하신 뒤 설법하시며 우리 마음속에서 미륵불국토를 완성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짙은 안개처럼 중생심으로 가려져 있을 뿐.

 

 

▲미륵전 석조여래입상.

 


‘한 가지 소원을 들어주는 용굴 가는 길’ 푯말을 따라 걸음을 재촉하다 동자승을 만났다. 법당 앞에 웅크리고 앉았다. 대웅보전 편액 양옆에 여의주 물고 있는 용과 같은 곳을 응시했다. 무슨 생각하시려나. 대웅보전이 극락정토로 중생들을 싣고 가는 반야용선이니, 아마 뱃머리에 앉아 바닷길을 살피는 게다. 푸른 늦가을 하늘에 시선을 고정시킨 동자승에게 감사 합장했다.


상념에 젖다, 종무소 앞에 진열된 용 그림 새겨진 기와가 떠올랐다. ‘한 가지 소원을 들어주는 용굴’이라더니, ‘용의 공덕(龍德)이 서린 절’이란 이름도 머리를 스쳐갔다. 굴에 웅크린 용처럼 의구심이 똬리를 틀었다. 천년 전설이 호기심을 뒤흔들기 시작했다.


“안됐도다. 조금만 더 침착했더라면….”

 

 

▲대웅보전 지붕 위로 쌀쌀해진 늦가을 하늘.

 


성륜산 산 중턱에 작은 선방 문틈으로 한숨이 새어 나왔다. 수행에 접어든지 5년째, 저녁예불을 드린 뒤였다. 노스님 눈매에 짙은 구름이 깔렸다. 노스님은 어린 행자승을 불러다 일렀다. 여인 하나 지나가면 때가 아니니 며칠 쉬고만 가라는 말을 전하랬다. 행자승은 영문을 알 수 없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놀랍게도 마침 여인을 만난 행자승이 노스님 말씀을 전했으나 그녀는 간곡히 거절했다. 병환 깊은 부친을 위해선 용굴에 있는 용이 간직한 적옥빛 여의주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끝내 여인은 노스님 당부를 물리고 용에게 사정했다. 하나 용은 단호히 거절했다. 승천하기위해 생명처럼 아끼는 여의주를 생면부지의 여인에게 건넬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여인은 목숨을 바치겠노라 청했다. 결국 여인의 효심은 용을 감명시켰다.


“이 여의주를 그대에게 준다면 앞으로 1000년 뒤에나 승천할 수 있지만, 효성이 지극해 이 여의주를 줄 터이니 병환을 꼭 치유하길 바라오.”


용은 여의주를 여인에게 전해주기 위해 입을 벌렸다. 그 때였다. 바람을 가르는 날카로운 소리가 두 번 허공을 갈랐다. 활은 급소인 용의 두 눈에 박혔고, 피는 멈추지 않았다. 여의주도 녹아내리고 말았다. 골자기 저 편에서 사냥꾼이 쏜 활에 용의 목숨이 끊기고 말았던 것이다. 여인은 그 자리에서 3일 동안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용의 명복을 빌었다. 또 부친의 병환이 완쾌되길 간절히 기도했다. 절절한 기도는 생명을 양분 삼아 부처님께 닿았고, 부친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얼마 뒤 노스님이 참선하던 선방은 행자승 부주의로 불타 없어졌다. 훗날 복원을 위해 한 불자가 목재를 선방터에 놓고 갔는데, 하룻밤 사이에 용굴 앞으로 옮겨져 있었다. 이 신이한 일에 사람들은 놀랐고 여인의 부친을 걱정한 용의 공덕이 부처님 마음을 움직였다며 탄복했다. 선방 복원을 책임졌던 한 불자는 애틋한 사연에 감복해 스스로 머리카락을 깎았다. 그리고 옛 선방 자리가 아닌 용굴 앞에 선방을 짓고 여인의 명복과 용의 덕망을 기리기 위해 한 평생 부처님 앞에 기도했다. 세인들은 그 불자를 염거 선사라 칭했고, 이후 선방은 용덕사라 불렸다.


마음이 용굴로 달음박질쳤다. 진신사리탑 뒤 남매처럼 다정히 놓인 돌탑 두 개를 뒤로하고 가파른 산길을 올랐다. 용굴을 다녀간 길인지 부부가 손 맞잡고 길을 내려왔다. 길옆으로 여기 저기 쌓은 돌탑을 벗 삼아 10여분 오르니 노란 은행나뭇잎이 지천이었다. 이대로 쭉 가면 극락보전이, 오른쪽으로 틀면 삼성각이, 왼쪽으로 오르면 용굴이었다. 희망의 종과 관음누각을 지나 용굴에 다다랐다. 낮았고 좁았다. 한 두 사람 허리 숙이면 굴 안이 꽉 찼다. 용굴 밖 관음누각이 기도하는 곳이라는 게 실감났다. 용굴엔 용 대신 관세음보살님이 가부좌를 틀었다. 허리 굽혀도 용상이 보이질 않았다. 108번 쉼 없이 무릎 꿇고 이마 바닥에 맞대야 비로소 108번 친견할 수 있었다.

 

종은 비워야 그 소리를 멀리 보내듯 마음속에 나를 비우고 낮춰야만 관세음보살님은 객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잠시 앉아 있으니 좁은 바위굴 위, 하늘 길로 통하는 비밀스러운 틈으로 늦가을 바람이 든다. 바람 타고 온 손님이 용굴의 어둠을 사른다. 하늘서 내려온 한 줄기 빛은 관세음보살님 용상에서 미끈한 어깨를 타고 내려와 몸 전체를 감싼다. 관세음보살님, 백옥 같은 웃음 피운다.

 

 

▲대웅보전 뒤 진신사리탑 뒤엔 돌탑 2개가 다정하다.

 


산사는 도심보다 하루가 짧았다. 그래서 새벽부터 도량석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몸도 마음도 산사에서는 부지런 떨지 않으면 금세 무뎌지고 어두워진다. 떨리는 무릎 부여잡고 바삐 용굴을 나섰다. 오를 땐 고약한 냄새뿐이던 은행나뭇잎들이 금빛으로 길을 수놓았다. 마음이 부리는 조화가 심술궂다.


종무소에서 일하는 보살을 만났다. 수원에서 새벽마다 용굴에 올라 매일 기도했던 보살이 병명도 모르고 앓던 자녀 병을 고쳤다고 했다. 직장 잘 다니던 자녀가 시름시름 아파 여기저기 수소문 끝에 꿈속에서 용굴 관세음보살님을 본 50대 보살님도 이곳에서 기도한다고 했다. 끝으로 60대 노보살이 했던 말을 전해줬다. “용덕사 부처님은 정성을 드린만큼 돌려주신다.”


성륜산에 깃들던 가을은 시름시름 생기를 잃은 게 아니었다. 초목은 언제나 마지막 가을처럼 생을 불살랐고, 그 간절함을 대지 위에 붉게 떨구고 겨울 삭풍과 눈보라 견딜 수 있도록 몸을 단단히 하는 것이리라. 그렇게 봄이라는 대지의 약속을 기다려왔다.

 

 

▲용굴 앞 희망의 종과 관음누각.

 


용굴에 깃들었던 용도 여인의 지극한 효심에 승천보다는 천년의 기다림을 택했다. 용덕사는 도량에서 숨 쉬는 용의 공덕으로 그리움을 키워왔다. 용이 적옥빛 신심을 여의주 대신 물고 서방극락정토로 승천하는 순간을 꿈꾼다. 성륜산 서쪽으로 하루해가 기운다. 또 하루가 겨울로 다가간다. 용덕사, 곧 어둠에 안겨 잠들리라.


승천의 천년 전 약속, 아직 몽중에 있다. 031)332-0426

 

최호승 기자 time@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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