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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옹고집 노지장자

기자명 법보신문

구두쇠 노릇하던 노지, 가짜로 몰려 쫓겨나

제석천이 변신한 가짜에 속아
식구들조차 알아보지 못해
욕심부린 잘못 뉘우치고 참회
우리나라서 ‘옹고집전’으로


 

 

 

 

교살라국 첫째가는 부자 노지장자는 구두쇠에 옹고집이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노지장자의 재산이 셀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노지장자가 북방의 비사문(다문천)만한 재산을 가졌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노지장자는, 그렇게 많은 재산을 두고도 마음이 옹졸했습니다. 입은 옷은 때가 묻어 꾀죄죄하고, 비린내가 났습니다. 쌀을 쌓아 두고, 피와 기장과 나물로 끼니를 이어 가고, 낡고 찌그러진 수레에 비쩍 마른 말을 메서 타고 다녔습니다.


명절이 닥쳤습니다. 성안 사람들은, 채색과 그림으로 창문과 대문과 집 안팎을 꾸몄습니다. 집 앞에 비단과 번과 일산을 내걸었습니다. 거리를 유리로 장식하고, 곳곳에 꽃관을 달고, 땅에는 금병에 담은 향수를 뿌렸습니다. 그 위에 꽃을 뿌렸습니다. 사람마다 악기를 들고 나와 음악을 즐겼습니다. 구두쇠 노지가 생각했습니다.


‘나에게는 옷과 영락과 재보가 그득하다. 남들이 저렇게 명절을 즐기는데 나도 그냥 있을 수는 없지.’


장자는 열쇠로 창고를 열어 돈 다섯 푼을 꺼냈습니다. 돈이 아까워 발발 떨면서 겨우, 찐보리 가루와 술과 소금 한 줌을 샀습니다. 이것을 집에 가지고 가면 가족에게 나누어줘야 합니다. 길가에서 먹으려니 거지가 달려들까 겁이 납니다. 나무 밑에서 먹으려니 까마귀가 빼앗아 갈까 겁이 납니다. 무덤 사이에 가니 개가 돌아다닙니다. 새도, 짐승도, 사람도 안 보이는 곳에 가서, 노지는 혼자 술을 마시고 소금을 찍어 먹었습니다. 보릿가루를 물에 타서 마셨습니다. 그리고 취해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얼씨구 좋구나. 기분 좋게 취했다! 비사문보다도 내 팔자가 우뚝. 제석천보다도 내 팔자가 우뚝. 얼씨구 좋다!”
하늘에서 제석천이 노지장자의 주정을 들었습니다. “저 구두쇠가 감히 나, 제석천을 모욕하네. 오늘은 부처님 처소에 가지 말고 저자의 버릇을 고쳐줘야겠다.”


제석은 노지와 똑같은 모습으로 몸을 바꾸었습니다. 노지의 집으로 가서 가족을 모으고, 노지장자의 어머니에게 말했습니다.


“어머님. 이전까지 저의 앞뒤에 간탐(慳貪)귀신이 따르고 있었습니다. 몹시 탐하고 인색한 귀신이지요. 그 귀신 때문에 재물을 두고도 가족을 굶겨 왔습니다. 오늘 한 도인을 만났는데 주문으로 간탐귀신을 쫓아주었습니다. 이제 겨우 귀신에서 해방이 됐지요. 그런데 그 감탄귀신은 나와 똑같은 모습입니다. 나를 침범하러 또 올지도 모르니, 대문에 들어오거든 하인들이 내쫓도록 해주세요.”


노지 모습이 된 제석은 창고를 활짝 열고 곡식과 재물을 내어서 맛있는 음식을 차리게 하였습니다. 좋은 옷감을 내어서 노지의 어머니와 아내, 아들딸과 하인들에게 나누어주고 새 옷을 지어 입도록 하였습니다.


“부모를 모실 줄 아는 아들이구나.”


“이렇게 인심 좋은 남편을 공연히 구두쇠 영감이라 했네.”


“이처럼 좋은 아버지를 왜 옹고집 아버지라 했을까?”


온 가족이 기뻐하며 제석 노지를 따랐습니다. 제석 노지는 노지의 보물창고를 열어 영락을 꺼냈습니다. 제일 좋은 영락을 어머니의 목에 걸었습니다. 아내와 식구들과 하인들에게 고루 영락을 하나씩 나누었습니다. 악기 창고에서 악기를 꺼내어 가족과 하인들에게 나누어주고 같이 연주를 하게 하였습니다. 악기를 처음 만지는 사람도 음악이 잘 어우러졌습니다.


“어머님. 여태 간탐귀신 때문에 친척과 이웃과 마을 사람들과도 인정을 나누지 못했습니다. 우리 재산 얼마쯤을 친척과 이웃과 마을에 나누어 줄까 합니다.”


“좋은 생각이다. 베풀면 복을 받는다.”


제석 노지와 어머니가 이야기를 하고 있는 사이에, 술에서 깬 진짜 노지장자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안에는 풍악이 울리고 마을 사람이 모여 와서 재물을 얻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자기와 똑같은 사람 하나가 창고를 열어놓고 곡식, 옷감, 보물을 나누어 주고 있었습니다.


“웬 놈이냐! 남의 재산에 손을 대다니?”


“감탄 귀신이 다시 왔구나. 저 귀신을 붙잡아라!”


하인들이 달려들어 노지를 붙잡았습니다. 어머니도 아내도 형제도 자녀도 그가 진짜 노지인 줄은 몰랐습니다. 하인들이 달려들어 노지의 발을 거꾸로 끌고, 몽둥이로 쳐서 대문 밖으로 내쫓고 말았습니다.


“억울하다. 억울하다. 가짜한테서 진짜가 내쫓기다니!”


노지장자는 목을 놓아 울었습니다. 울다가 지친 노지는 국왕에게 가서 사정을 호소하기로 했습니다. 그러자니 선물이 필요했습니다. 친구한테서 돈을 꾸어 값비싼 모직을 샀습니다. 그리고 친구 몇 사람과 같이 바사닉왕을 찾아갔습니다.


대궐 수문장이 왕에게 말했습니다.


“제가 30년 대궐문을 지켰습니다만 이런 일은 없었습니다. 구두쇠로 이름난 장자가 대왕께 바칠 것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 말을 듣고 왕은 생각했습니다.


‘오늘은 명절이라 백성이 올 일은 없을 것. 노지는 아끼는 사람이라 바칠 것을 가지고 올 리는 없을 것. 수문장이 나에게 농담할 리도 없을 것. 그럼 무슨 일일까?’


그런데 노지장자가 커다란 선물 꾸러미를 들고 왕 앞에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선물을 내려놓자마자, 모직이 풀단이 되고 말았습니다. 제석이 조화를 부린 거였습니다. 노지는 크게 부끄러워했으나 “비록 풀단을 가져왔어도 괴로워할 것은 없다”하고 왕은 노지의 호소를 들어주었습니다.


노지의 이야기를 들은 왕은 숙구(宿舊)라는 신하와 같이 이 어려운 문제를 풀어보기로 했습니다. 먼저 두 노지를 한곳에 세워 놓고 조사를 했습니다. 모습·나이·웃음·말씨·얼굴빛을 조사했으나 한 곳도 다른 데가 없었습니다.


“너는 누구냐?”하고 제석 노지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대왕님 나라의 백성에게 어찌 누구냐고 물으십니까? 저는 진짜 노지입니다.”


제석 노지의 대답이었습니다.


“아닙니다. 제가 진짜입니다. 그래서 호소를 하러 대왕께 온 것입니다.”


진짜 노지의 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만 가지고 구별을 할 수는 없었습니다. 집안의 비밀을 물어봐도 똑같이 잘 알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를 불러 신체 특징을 조사하게 했습니다. 왼쪽 갈비뼈 밑에 팥알만 한 사마귀가 있는 것까지 똑같았습니다.


“이 일을 판단하실 분은 부처님뿐이다.”


왕은 진짜 가짜 두 사람을 데리고 사위성 밖 기원정사로 부처님을 찾아 갔습니다. 숙구를 비롯한 여러 신하와 백성들이, 풍악을 잡히는 왕의 수레를 뒤따랐습니다. 제석 노지는 부처님 앞에 간다는 것이 아주 기뻤습니다. 진짜 노지는 부처님 앞이 두려워 아주 초췌한 모습이었습니다.


부처님 앞에 이르러 모두들 오체를 땅에 던졌습니다. 바사닉 왕은 두 노지를 데리고 부처님 앞에 앉았습니다. 부처님을 이미 모든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며칠 동안 제석이 내 처소에 오지 않더니 노지 한 사람을 구하였구나.”


“예, 그렇습니다. 노지장자의 재산은 하나도 줄지 않은 채 그대로 있습니다.”


“장한지고. 모든 일은 노지의 간탐 때문이었다. 욕심을 너무 부렸어. 제석은 노지 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방편을 쓴 거다.”


그러자, 제석은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와 부처님께 합장을 했습니다.


“저는 부처님 말씀을 믿습니다. 모든 탐욕이 지금 사라졌습니다.”

 

▲신현득

노지장자의 말이었습니다. 탐욕이 사라진 노지장자는 그 자리에서 수다원과를 얻게 되었습니다. 구두쇠라니요. 노지장자는 이제 당당한 도인인 걸요. 부처님이 들려주신 노지장자 이야기가 고대소설 ‘옹고집전’이 되었대요.
 

출처:노지장자인연경(盧至長者因緣經)
아동문학가·시인 shinhd702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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