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노력
44. 노력
  • 법보신문
  • 승인 2013.11.26 18:0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긴장 끈 놓은 마음엔 번뇌만 들끓어

결과에 담담해질 노력으로
목표 정해 수행에 집중하면
의심·잡념 등 맘 혼란 소멸
해탈 성취의 훌륭한 자양분

 

수능시험 마친 학생을 만나서 “시험을 보고나니 기분이 어떤가요?” 물어보게 되었다. 학생은 “홀가분하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합니다” 하였다. ‘홀가분하다’는 말은 아마도 시험 준비의 압박에서 벗어났기 때문일 것이고, ‘불안하다’는 것은 결과를 자신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준비하면서 충분하게 노력하는 경우가 드물다. 충분하게 노력하였다면 그 다가오는 결과를 담담하게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아쉬움이 남는 노력으로 아쉬움이 남는 결과를 맞게 되면 마음이 불안하다.


또 충분하게 노력하는 사람은 자신을 믿을 수 있고, 아쉬움이 남는 정도의 노력을 하는 사람은 자신을 충분하게 믿을 수 없다. 결심한 만큼 살아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노력을 적게 하면 그 순간은 편안할 수 있다. 그러나 다음 순간은 불안정한 상황에서 지내야 한다. 노력이 충분하면 계속 노력하든 다른 길을 찾든 담담하게 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세상에서 살거나 출가해서 살거나 노력은 마찬가지로 필요하다. 정행품 경문을 보자.


“앉았던 자리에서 일어설 때에는, 중생들이 마음에 해탈을 얻고 흔들림이 없는 경지에 안주하기를 발원해야 한다.”


‘앉았던 자리에서 일어난다’는 것은 집중적인 노력을 바탕으로 역량을 기르는 과정에서 휴식을 취하는 모습이다. 우리의 몸과 마음은 긴장과 이완을 적절하게 섞어 주어야 건강한 상태를 유지한다. 특별하게 신경 써서 노력하지 않으면, 너무 긴장되거나 이완되기 쉽다. 어느 한 쪽에 치우쳐도 병을 얻게 된다. 집중하고 노력하는 사이에, 자신이 원하는 목표를 이루거나 그 목표에 순탄하게 다가가면, 알맞은 휴식은 다음 성장의 자양분이 된다. 그리고 수행에 성취를 이룬 사람이 다음과 같은 발원을 하게 된다.


‘중생들이 마음에 해탈을 얻고 흔들림이 없는 경지에 안주하기를 발원해야 한다’에서 ‘마음에 해탈을 얻는다’는 말은 수행의 과정에서는 ‘충분한 이해를 얻어 마음에 장애가 없다’는 말이다. 몸과 마음과 생활환경에 대하여 충분하게 이해가 되지 않으면, 삶의 목표와 방향을 정할 수가 없다. 설사 목표와 방향을 정하더라도, 견해가 바뀌게 되면 다시 목표와 방향을 재설정하게 된다. 여러 번 반복하는 사이에 인생이 다 지나가버린다. 충분한 이해가 받침 되어야 올바른 목표 올바른 방향으로 지속적인 노력을 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마음의 혼란이나 갈등을 벗어나 정확하게 목표와 방향을 잡고 노력하는 사람은 ‘마음에 해탈을 얻는다’고 할 수 있다.


‘흔들림이 없는 경지에 안주한다’는 말은 수행의 과정에서 ‘충분한 실천을 통해 정진에 장애가 없다’는 말이다. 신구의(身口意) 3업을 청정하고 평등하게 그리고 자비롭고 지혜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업그레이드하는데 성공을 하였다는 것이다. 일정 수준 이상의 경지에 올라야, 흔들리지 않고 물러나지도 않으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성장의 경지에 들어가게 된다. 나무로 비유를 하면, 땅에 뿌리를 내리고 그 뿌리가 땅으로부터 영양을 힘차게 흡수하여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과 같다. 수행의 과정에서 기울인 노력이 자양분이 되어서, 몸과 마음에 생기와 활기가 돌아, 다시는 의심도 잡념도 끼어들지 않는 확고한 경지에 진입하게 된다. 다음 경문을 보자.


“발걸음을 뗄 때면, 중생들이 생사의 바다에서 빠져나와 모든 선법이 갖추어지기를 발원해야 한다.”


‘발걸음을 뗀다’는 것은 중력을 거슬러 몸을 움직이는 것이다. 몸은 물리적인 중력의 영향을 받으니, 몸이 약해지면 무겁게 느껴지고 건강하면 가볍게 느껴진다. 마음은 집착이라는 중력의 영향을 받으니, 집착이 커지면 마음이 구속을 많이 받는다. 중력의 영향이 크면 몸과 마음이 자유롭지 못하게 된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커다란 구속에 매여서 고생하게 된다.


‘생사의 바다에서 빠져나온다’에서 욕계·색계·무색계를 아우르는 3계는 생사윤회하는 영역이 된다. 이 영역은 넓고 깊기 때문에 바다에 비유된다. 우리가 끊고 넘어야 할 번뇌는 크게 3가지다. 견사(見思)·분별(分別)·무명번뇌(無明煩惱)가 그것이다. 이 가운데 견사번뇌는 탐내고 성내며 어리석고 오만한 기운이 대표가 된다. 그 중심 에너지는 집착이다. 집착이라는 번뇌는 3계에서 벗어날 수도 없게 하고 벗어날 생각도 할 수 없게 만든다. 3계를 벗어난 부처님의 가르침이 아니면, 우리가 스스로 3계를 벗어나는 방법을 알아내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 된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 실천하고 인연이 성숙하면 우리는 3계를 벗어날 수 있다.

 

▲도암 스님

‘모든 선법이 갖추어진다’는 말에서 선한 법의 근본은 3선근(善根)에 있다. 3선근은 탐내지 않고 성내지 않으며 어리석지 않는 것이다. 범부중생은 낮은 수준에서 갖추고 있고 부처님은 완전한 수준에서 갖추고 있다. 완전하고 원만한 수준이 되면 ‘모든 선법이 갖추어졌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의 성취는 물론이고 일체중생이 모두 똑같이 좋은 결과를 얻도록 발원하고 돕는 마음을 내어야 한다. 부처님은 그렇게 하라고 권하고 있다.

 

도암 스님 송광사 강주 doam1991@hanmail.net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