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45. 응답하라 1933, 티베트-2

중국 한족 유입으로 ‘문화적 혼종’ 심화

샹그릴라는 中도심 풍경
노년층의 전통 고집에도
젊은 층 한족 문화 수용
문화적 혼란 갈수록 극심

 

 

▲티베트에서 노년층은 외부세계, 즉 한족 혹은 이방인에게 여전히 경계심을 갖고 자기만의 정체성을 강조하려 하지만 젊은 층(어린아이 포함)은 부모가 생각하는 것에 상관없이 외부인(한족, 관광객 포함)을 적극적으로 접촉하고 받아들이고 있다.

 


국가나 민족의 정체성과 고유의 전통문화가 어떤 경로를 통하여 변화했는가를 알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여기에 대한 답변 중 하나는 외부의 몇몇 개념(요소)들이 강력하게 경계를 허물고 침투해 들어와 이전 개념, 즉 국가나 민족의 정체성, 객관적 문화특질(언어, 복식, 풍속, 종교적 사유체계)들을 대체하거나 변화를 요구하며 갈등을 유발하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1950년대 중국 영토내의 변강(邊疆)민족들은 저마다 ‘지리적 경계선’이 민족의 경계선으로 작용하였다. 외부와 차단된 거주공간이 배양해낸 문화적 특질들은 지리적 경계선이 무너지지 않는 한 온전히 유지되고 계승될 수 있었다. 따라서 해당민족의 문화적 특질과 정체성은 자신들의 경계선을 한정시키고 구성원간의 유대감을 끈끈하게 묶어놓았다. 근대이전까지 중국 안의 변경민족들은 지리적 경계선의 기능에 혜택을 입었다. 물론 근대이전에도 중원과 변강 민족과의 역사적 정치적 관계는 존재했지만 변강의 지리적 조건은 중원의 물질과 정신적 문화를 수용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따라서 고대 중원의 변강 전략은 ‘이변이치(以邊以治)’의 효율적인 방법이 주로 적용되었다.


그러나 중국정부의 치밀한 변강전략과 정책에 힘입어 변강의 지리적 경계선은 와해되기 시작했다. 반세기에 걸친 중국 강역의 확장과 소통작업은 결국 변경민족의 지리적 경계선을 허물었다. 도로가 개설되고 청장열차가 고원을 달리는 작금의 현실에서 지리적 경계선은 변강 민족들에게 더 이상 의미를 주지 못한다. 지리적 경계선 무너진 다음은 무엇일까? 그 다음은 사회적 경계선이다. 이는 해당민족의 문화특질과 정체성을 아우르는 경계선을 의미한다. 그런데 민족과 집단의 사회적 경계선마저 무너지거나 합병된다면 그 속에 내재하고 있던 정체성과 문화적 특질들은 어떻게 될까? 이것에 대한 해답은 오늘날 샹그릴라현의 문화특질과 정체성의 변화에서 찾을 수 있다.


중국은 1950년대 이후 민족간의 지리적 경계선이 점진적으로 무너지면서 디칭자치주 샹그릴라현의 티베트인들은 대량의 한족 진입과 정책을 받아들여야 했으며 현실적으로 우세한 사회 지위와 신분을 획득하고 있는 한족의 위상을 감지할 수 있었다. 사실상 티베트인들은 한족문화의 선진성과 역사의 유구함에 관한 애국주위 교육과 홍보에는 별반 관심이 없었다. 다만 현실적으로 감지되는 한족과 정감의 불편함과 문화의 충돌을 애써 외면할 뿐이었다. 그러면서 자신들의 문화특질을 강조하거나 숨김으로써 현실에 적응하였다.


그러나 민족경계의 탈(脫)현상은 민족 정체성과 문화의 변화를 유도하였다. 일반적으로 정체성의 변화는 두 가지 유형으로 진행된다. 즉 외부로부터의 압력을 받아 마지못해 변화하는 경우와 내부로부터의 주체적인 변화이다. 샹그릴라의 티베트인들은 처음 외부세계의 진입(한족)과 접촉을 반기지 않았으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현실적 흐름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현지에서 관찰한 바에 의하면 티베트인들의 언어와 복식의 선택은 접촉하는 대상의 신분과 상황에 따라 바뀌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티베트인들이 정체성을 이용하기도 하며 스스로 변화를 주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또한 ‘심리구도(schema)’를 관찰하면 그들이 외부인(한족)과 현재의 상황을 어떻게 인식하는지를 알 수 있다. 심리구도는 과거의 경험과 현 세계에 대한 인상의 결집이다. 모든 사회집단은 어떤 특정한 심리 경향을 갖고 있다. 이런 심리 경향은 그 집단의 개인들에게 영향을 주는데 개인마다 외부의 상황을 관찰하고 과거 기억들과 결합시켜서 자신들이 외부 세계에 갖고 있던 인상을 확인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개인의 경험과 인상은 또다시 개인의 심리구도를 형성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샹그릴라의 티베트인들은 과거 한족에 대한 역사나 이야기를 들었을 때 한족인에 대한 경계심을 가지게 되었다. 지리적 경계를 강압적으로 허물고 들어온 한족인들은 티베트인들에게 심리적으로 불안감을 조성하기에 충분했다. 이러한 기억은 오늘날 한족의 행위와 정책을 바라보는 티베트인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 즉 자신의 기억과 구전으로 들었던 한족에 대한 형상과 언행에서 이질적인 것들을 찾아내어 그 민족은 역시 ‘한족인’이며 우리와 다른 타민족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려 하는 것이다. 결국 이렇게 관찰하여 얻은 경험과 기억은 다시 티베트인들의 마음속에 한족에 대한 인상의 일부분이 되는 것이다. 샹그릴라에서 노년층과 여성들은 이런 경향을 주로 보여주고 있는 반면 젊은 층이나 한족과의 교류가 빈번한 티베트인 공무원은 그렇지 않았다. 후자의 경우 기억은 과거를 구성해서 현재의 인상을 합리화시키는 수단에 불과함을 보여준다. 즉 일부분(노년층과 여성층)은 한족의 부분적인 과거를 강조하고 부각시켜서 구전(口傳)하고 경계심을 보이고 있는 반면 일부분(공무원과 젊은층)과거와 전혀 상관없이 지금의 한족을 접촉하고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지상낙원’의 의미를 간직하고 있는 ‘샹그릴라’(香格里拉). 하지만 중국 속의 티베트 샹그릴라, 이곳은 중국이 진입한 이후 지속적으로 공간적으로나 지리적 심지어 문화적으로도 탈경계의 작업이 꾸준히 진행되어온 공간이다.

 

특히 1998년 기존의 ‘중덴’(中甸)지역을 새로이 ‘샹그릴라’라는 지역 명으로 바꾸면서부터 이 지역은 본격적으로 외부와의 민족적, 문화적 정체성의 경계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시내 곳곳은 상점과 식당 등 현대화된 중국 도시의 모습으로 전환되었고 이러한 개발붐과 더불어 한족의 유입이 증가하면서 티베트의 전통적인 문화와 정체성은 혼란을 경험하고 있다. 경계를 넘어 진입해온 현대화와 내부에 존재하던 전통문화간의 충돌, 마찰이 본격적으로 발생하면서 혼종의 전형적인 공간으로 바뀐 것이다. 오늘날 이곳은 티베트인들의 결혼 관념이나 복식, 언어, 상장의례, 직업관, 특히 그들을 오래 동안 하나의 영혼공동체로 묶어주었던 종교의식과 가치관은 과거와 다르게 심각한 변동의 폭을 보이고 있다. 중요한 사실은 티베트인들의 객관적 문화특질뿐만 아니라 그들의 ‘주관적 정체성’(예를 들어 공동의 역사기억과 사회기억)마저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현실적으로 우세한 지위와 신분을 부여받고 티베트사회에 진입한 한족이 그들만의 물질문화와 제도로써 결국 티베트사회를 혼란스러운 ‘혼종공간’으로 변화시키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현상은 좋은 일인가? 아님 나쁜 일인가? 

 

심혁주 한림대 연구교수 tibet007@hanmail.net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