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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법적·제도적 과제는

기자명 이수정

전수조사 통한 개별 절터의 이력서 작성 급선무

1. 절터는 어떤 곳인가
2. 왜 보존해야 하나
3. 법적·제도적 과제는
4. 보존 관리 주체는
5. 복원만이 능사인가

 


5400 곳 중 사적지정 0.6%뿐
그나마도 시대·지역적 편중

비교우위 따지는 지정제도의
본래 취지에도 전혀 맞지않아

 

통합 DB구축의 제도화 필요
문화재법상 지정기준 보완도

 

 

▲불교문화재연구소는 문화재청과 함께 지역별 절터를 조사하고 있다.  불교문화재연구소 제공

 

 

절터는 살아 있다. 땅 속에서 조용히 숨을 쉬고 있다. 이들이 밖으로 나오도록 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이들을 덮고 있는 흙을 걷어내고 땅 속에 있는 절터의 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리고 그 주변을 잘 정리해 주면 절터는 보다 좋은 환경에서 상쾌한 모습으로 우리와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 추정하고 있는 5400여개의 절터를 발굴하려면 긴 시간필요하고, 많은 사람들이 동원되어야 한다. 문화유산이 절터만 있다면 한번쯤은 모두 발굴하는 것을 생각해 봄직도 하지만, 우리가 보존·관리해야 할 문화유산의 종류와 양이 너무 많다. 게다가 수많은 절터가 지금은 개인소유의 땅이기 때문에 그 위에서 농사를 짓고 있거나, 절이 사라진 후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그 위에 들어선 건물에 짓눌려 있어서 현실적으로 세상 밖으로 끌어낼 수 있는 절이 많지 않다. 그래서 이런 한계에 맞서 수많은 절터를 보존하려면 합리적인 법제도와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보존관리제도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현재의 법과 제도는 앞으로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

먼저 현재 절터가 의지하고 있는 보존관리제도와 법적 측면을 보자. 문화재청은 모든 문화재를 보존·관리·활용함에 있어 총지휘를 맡고 있는 국가기관으로 ‘지정’된 문화재를 보호한다. 수많은 유산들 중에서 일정한 가치 있는 문화유산을 골라 지정하는 것으로 우선적으로 보존해야 할 대상을 정해 놓고, 이들 지정문화재만큼은 훼손되지 않고 잘 보존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절터의 보존관리방식에 대해 좀 더 이해하기 위해서는 조금은 고리타분하더라도 문화재보호법과 시행령을 볼 필요가 있다.

절터는 ‘사적’이라는 이름으로 국가지정문화재가 되는데, 사적으로 지정되는 유적은 ① 선사 또는 역사시대의 사회·문화생활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정보를 가지고 있거나 ② 정치·경제·사회·문화·종교·생활 등 각 분야에서 시대를 대표하거나 희소성과 상징성이 뛰어나거나 ③ 중대한 역사적 사건과 깊은 연관성이 있든지 ④ 저명한 인물의 삶과 깊은 연관성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측면들은 대부분의 절터가 일정부분 지니고 있는 요소들이기 때문에 절터가 사적으로 지정될 수 있는 후보로서의 자격은 충분하다. 그런데, 지정 문화재에 대해서만 국가가 보존을 전적으로 책임지는 선택적 보호 제도를 택하고 있는 우리의 제도로는 모든 문화재에 국가적 혜택을 베풀 수는 없다. 지정제도는 후보지 간에 경쟁을 시켜 ‘비교우위’를 지닌 유산을 가려내어 국가적 보호대상을 선별적으로 골라내는 방식이므로, 상대적 가치가 높아야만 지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적으로 지정될 수 있는 전통사찰이나 향교, 근대 건축물 등이 절터와 비교우위를 재는 저울대에 오르면 극소수의 절터만 선택된다. 현재 사적으로 지정된 문화재는 모두 491곳인데, 이 중에서 절터는 35곳이다. 현재까지 파악된 절터가 5400여개인 점을 감안하면 국가의 손에 맡겨진 곳은 불과 0.6퍼센트에 불과한 것이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가치를 지녀야 절터가 사적으로 지정될 수 있는지 보아야 한다. 현재 문화재청의 사적분야의 전문위원인 김철주 위원이 2011년에 분석한 바에 의하면, 사적으로 지정된 절터가 공통으로 지니고 있는 가치는 역사적·사회적·정치적 대표성, 희소성, 상징성,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과의 연관성 등이다. 그리고 이 중에서 특히 중요한 기준은 희소성과 대표성이다. 예를 들어 경주의 황룡사는 신라시대의 대표적인 불교적 정신을 구현했다는 측면에서 시대적 대표성을 지니고 있고, 그 시대의 다른 사찰과는 다르게 일탑삼금당 형식, 즉 경내에 한 기의 탑과 세 동의 금당이 있는 독특한 형식을 하고 있어 희소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되어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그런데 현재 사적으로 지정된 절터는 일부 시대와 지역에 편중되어 있다는 문제점이 있다. 김 위원에 의하면 현재의 사적은 그 일부가 일제강점기에 지정된 고적 목록을 사적으로 가지고 오는 과정에서 지정되었고, 일제강점기 당시에 조사를 집중적으로 했던 경주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그리고 시대도 삼국시대, 통일신라시대, 그리고 고려시대에 집중되어 상대적으로 조선시대의 절터는 거의 지정되지 않았다는 문제점이 있다. 이는 비교우위를 따지는 지정제도의 본래 의도와는 맞지 않는다. 즉, 비교우위를 따져서 가치가 높은 절터를 지정하려면 전수조사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하는데 현재의 사적지정은 전수조사를 토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현재 문화재청과 불교문화재연구소에서 하고 있는 절터에 대한 지역별 전수조사는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또한 ‘한국의 사지’와 같이 조사 후에 조사내용을 책으로 발간하여 기록물로 내 준 것은 더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보다 많은 절터가 사라지기 전에 절터에 대한 기초자료를 확보하려면 현재 두 기관이 하고 있는 사업에 대해 협력체계를 구축하여 빠른 시간 내에 일제히 전수조사를 완료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되고, 이에 대한 충분한 예산이 확보되어야 할 것이다.

 

 

▲불교문화재연구소가 절터 조사 후 발간하고 있는 ‘한국의 사지’.

 


기초조사에서 반드시 명심해야 할 것은 짧든 길든 개별 절터별로 이력을 작성하는 것이다. 즉, 절터의 유구 현황, 기록에 나타난 역사적 사실, 절터가 지닌 가치에 대한 서술, 절터가 역사적으로 걸어온 길, 지도, 도면, 사진 등을 모두 하나의 파일에 담아 한 절터의 이력서를 작성해 주어야 한다. 이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문화재의 보존관리를 총괄하고 있는 문화재청에서 조사단계에서 수집해야 하는 정보목록과 보존상태 점검목록, 그리고 조사의 절차와 방법에 대한 명확한 지침을 마련해주어야 한다. 물론 문화재청이나 불교문화재연구소 모두 조사자를 위한 기본지침은 어느 정도 있지만 한 번의 조사에서 필요한 정보를 꼼꼼하게 수집하고, 수많은 절터에 대해 일관성 있는 조사를 하려면 이제라도 조사에 대한 명확한 지침이 있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조사내용을 ‘지리정보시스템’을 통한 하나의 통합된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하는 것을 제도화하여야 한다. 국가예산으로 조사한 절터에 대한 이력과 정보 모두를 국민이나 관련분야 전문가와 공유한다면, 절터에 대한 연구와 국민적 관심이 크게 늘어나 절터의 보존관리에 대한 당위성을 인정받고, 보호를 위한 국민적 지지 기반을 확보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나서 절터에 대한 기초정보와 자료를 토대로 절터의 개별적 가치와 보존 상태를 검토하여 해당 절터의 중요성을 평가하여야 한다. 비교우위를 따지는 지정문화재 제도에 한 곳의 절터라도 더 올리려면 반드시 필요한 작업일 뿐 아니라 보존과 관리, 그리고 매입이나 지정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데 있어서 어떤 절터가 더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 가려내고, 왜 중요한지 명확한 논리에 근거하여 설명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절터가 지니고 있는 다양한 가치들을 먼저 파악해야 하고, 개별의 절터가 그중 어떤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 그리고 다른 절터와 비교하여 그 가치들이 얼마나 중요한지 파악해야 할 것이다. 개별 절터에 대해 조사 후 얻은 각종 정보와 가치를 함께 서술한다면 곧 이 자료는 그 절터를 지정, 보존, 관리하는 데에 반드시 기준으로 삼아야 할 핵심적인 DNA 지도가 될 것이다.

▲영국정부가 제작한 성당터 안내책자.
 
이를 위해서는 문화재보호법 시행령에 명시된 현재의 지정기준을 좀 더 보완할 필요가 있다. 영국 정부는 고대 기념물 법에 근거하여 성당터를 지정할 수 있는 기준을 매우 상세하게 제시하고 있고, 가치를 평가하는 방식에 대한 안내서를 일반 국민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러므로 문화재청에서는 사적의 다양한 유형별 특성을 고려하여 지정기준을 제시하고, 그 중에 절터를 종교유적지로 별도 분류하여 세부 기준을 제시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지정으로 가는 중간 단계로서, 유네스코의 세계유산등재 이전에 후보지를 잠정목록에 올리는 제도나 우리나라에서 서서히 도입하고 있는 예비문화재 제도를 도입하는 것을 절터에도 적용해 볼 필요가 있다. 즉, 사적으로서의 지정가치가 높은 절터를 모아 향후에 문화재로 지정될 후보자로 예비 문화재목록을 작성하는 것이다. 그리고 근대문화재를 위한 등록제도와 같은 제도를 운영하여 예비문화재목록에 올라간 절터를 보존 관리한다면, 지정도 되기 전에 이들이 사라지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예비 문화재에 올라간 절터에 대해서는 주기적으로 그 지정가치를 검토하여 지정기준에 부합하는 경우, 이를 지정하여 국가의 보존관리 품으로 끌어안는다면, 조사에서부터 지정까지 매우 체계적이고 효과적인 제도를 통해 절터를 보존하게 될 것이다.

절터의 보존관리의 가장 기초적 기반은 이를 담보할 수 있는 법과 제도이다. 절터에 대한 활용에 앞서 기본에 충실한 제도와 법의 개선에 소홀히 한다면 절터는 땅 속에 숨어 우리와 함께 숨 쉴 수 없게 될 것이다.

 

▲이수정 박사
 
현재와 같은 개발지향주의에 휩쓸린다면 보존가치 충분한 절터들이 오래지나지 않아 영구히 제 빛을 보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현재 지정된 문화유산도 중요하지만 미래에 지정될지도 모를 문화유산 후보지도 면밀히 조사하고 보호할 수 있는 기틀을 한시 바삐 마련해야 한다. 여기 미래의 지정문화재로서 ‘절터’가 있다.

 

이수정 박사 slee70@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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