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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포교원장 성열 스님

기자명 법보신문

대상 비추는 거울처럼 변화 그대로 인식해야

부처님에 대한 바른 이해가
올바른 불교 공부의 첫 걸음
고정불변 없음 바르게 알고
주관으로 보는 습관 버려야

 

 

▲성열 스님

 

 

저도 옛날 노장님들께 처음 불교를 배울 때 그저 중노릇 잘하는 법만 배웠습니다. 그런데 실상 포교는 재가자를 상대로 하는 것이니 중노릇 잘하는 법과는 상관이 없었습니다. 중노릇하는 법은 혼자 사는 법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도 스님이야기를 듣다 보면 들을 땐 고개를 끄덕끄덕 하지만 정작 나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는 이야기인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나라 불교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스님들이 출가자로 사는 공부와 신도들을 위한 공부를 함께 해야 하는데 그 두 가지가 제대로 안 돼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본래 출가자는 경제생활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부처님 재세시 부처님을 비롯한 모든 출가자들은 하루 한 끼를 탁발해 먹고 옷은 남이 버린 것을 주워서 꿰매 입으면 됐습니다. 그러니 경제문제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재가자들은 그렇지가 않은데도 절에 가보면 그 문제는 이야기를 안 합니다. 그러니 불교를 공부하면서 현실과 맞지 않는다는 말을 많이 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부처님이 재가자들에 대해 말씀하지 않으신 것은 절대 아닙니다. 항상 재가자들을 만나 설법하셨습니다. 자연스럽게 경제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많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재가자가 훌륭한 불자가 되기 위해서는 경제생활을 잘 해야 합니다.


이와 함께 오늘 여러분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씀은 불교를 제대로 알고 제대로 된 불자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가입니다.


첫째, 불교 공부의 시작과 마지막은 석가모니라는 인물에 대한 연구입니다. 그 분이 어떤 분인지, 어떻게 살았는지를 연구해야 합니다. 불교는 결국 석가모니부처님의 사상을 본받아 그처럼 살기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정작 우리에게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없습니다.


우선 고타마 싯다르타라는 역사적 인물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부처님이라는 분이 어느날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고타마 싯다르타가 출가하기 전 아버지 정반왕은 아들이 붓다가 되는 것을 바라지 않았습니다. 그보다는 유능한 석가족의 지도자가 되어 석가족을 강력한 나라로 만들기를 바랐습니다. 출가하고 부처가 된 이후에도 정반왕은 카필라성을 방문한 부처님에게 다시 석가족을 다스리라고 부탁했습니다. 하지만 부처님께서는 자신은 진리를 다스리는 법왕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분이 아버지인 정반왕처럼 세속의 왕이 되었다면 오늘날 우리는 그분을 기억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고타마 싯다르타는 왜 출가를 하셨을까요. 오늘날 우리는 사찰 벽에 그려져 있는 팔상도를 보면서 마치 그것이 부처님 생애의 전부인 것처럼, 부처님 생애를 우리가 다 아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특히 초기불교의 경전을 보면 부처님은 몸이 아프기도 하고 목이 마르기도 합니다. 하지만 여러분 머릿 속에 있는 부처님은 이미 신격화된 부처님입니다.


부처님을 가슴 깊이 느끼기 위해서는 초기불교에 나타나는 부처님을 봐야합니다. 아함경을 보아야 합니다. 불교사를 보면 석가모니부처님 시대, 부처님 열반 후의 부파불교 시대, 그리고 부파불교를 비판하며 나온 대승불교의 시대로 연결됩니다. 대승불교에는 재가불자의 입장이 많이 반영됐습니다. 한국불교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재가자들이 출가자들을 비판하고 출가자들과 논쟁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철저히 공부하고 수행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재가단체는 출가자를 비판하지 않습니다. 유마거사와 같은 역할이 어느 때보다 필요합니다.


불교를 제대로 신행하기 위해서는 부처님에 대한 이해와 함께 불교에 쓰는 말을 바르게 이해해야 합니다. 불교에서 많이 쓰는 말 중에 ‘여(如)’가 있습니다. ‘그렇다’는 뜻입니다.


부처님은 깨달음을 이루신 분이니 우리가 궁금해 하는 것은 뭐든 답해주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전유경’을 보셨나 모르겠습니다. 여러분께서도 잘 알고계실 ‘독화살의 비유’를 통해 가르침을 주신 경전입니다. 이교도가 부처님께 10가지 질문을 합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는 대답을 안 하셨습니다. 부처님은 오감을 통해 경험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만 대답을 하셨습니다. 경험 영역을 벗어난 영역은 대답을 안 합니다. 누가 이야기하든 타당한지 아닌지를 따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이 이야기하신 것은 객관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것만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라는 것은 오감으로 경험하는 세계에는 고정된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비유하자면 바다가 항상 출렁이지만 바람이 있으면 파도가 높아지고 바람이 없으면 파도가 낮아질 뿐입니다. 하지만 항상 출렁입니다. 그것을 기억하기 위해 사진을 찍는다면 그것은 출렁임의 한 순간의 기록일 뿐입니다. 현실은 끊임없이 흘러가는데 우리는 멈춰진 사진으로 기억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처럼 변화무쌍한 것을 표현할 수 없으니 ‘그렇더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세상을 의(意)라고 하는 주관적이고 이기적인 자기 입장에서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방에서 ‘방하착’ 즉 내려놓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자라온 환경, 그리고 처한 입장, 현재의 자신 상태에 따라 세계를 봅니다. 모두가 똑같이, 객관적으로 보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우리는 자기가 상상하는 세계 속에 살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신이 객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변화무상한 것을 변화무상한 대로 직시해야 한다는 것이 ‘여’입니다. 거울처럼 보는 것입니다. 거울은 비치는 대로 봅니다. 그러니 고정된 것이 없습니다. 석가모니부처님도 고정된 시선을 내려놓는데 6년이 걸리셨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어떻겠습니까. 어려서부터 자기중심으로 보는 것이 습이 되고 익숙한 기질이 돼 있습니다. 이것을 다 떨어뜨려야 되니 쉽지 않습니다.


또 하나 법(法)이라는 말입니다. 이 법이라는 말은 구분해서 써야 합니다.


법이라고 할 때 그것이 지칭하는 범위가 색법(色法)이냐, 아니면 심법이냐 입니다. 색법은 우리에게 보이는 물질적인 것이고 그것에 대한 주관적인 판단이 심법입니다. 꽃은 색입니다. 그러니 색법 자체에는 선도 악도 없습니다. 다만 있을 뿐인데 보는 사람이 마음에 들면 좋다하고 그렇지 않으면 나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꽃을 바라보는 각자의 마음은 다 다릅니다.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주관적인 생각을 개입해서 봅니다. 그처럼 생각이 들어가서 판단하는 것이 심법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말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일체유심조입니다. 일체의 모든 것을 마음이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속에 색법까지 들어가면 머리가 아파집니다. 백길 낭떠러지 앞에 서서 모든 것이 마음에 달렸다며 한 발 내 딛는다면 이건 골치가 아파집니다. 여기서 일체의 범위는 심법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즉 주관적 판단을 할 때를 말합니다. ‘달마어록’ 중에 ‘안심법문’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거기에 보면 ‘예쁘다, 밉다에 객관적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밉다고 생각하는 순간 미운 것이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심법은 내가 마음먹기에 달려있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 이법(理法)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연기법입니다. 연기로서의 이치라는 뜻입니다. 부처님이 태어나셨느냐 아니냐와는 상관없이, 또 뉴턴이 만유인력을 발견했든 못했든과는 상관없는 법입니다. 즉 연기를 알든 모르든 세상은 이치대로 흘러간다는 것입니다.


이 밖에도 몇 가지 더 있기는 하지만 적어도 이 세 가지를 구분해야 합니다. 이것을 모두 법이라는 말로 통칭해 쓰니 심법인지 색법인지 이법인지가 헷갈리게 됩니다. 이 세 가지를 구분해야 오해를 덜하게 됩니다.


오늘 세 가지를 말씀드렸습니다. 석가모니부처님에 대해 바르게 알고 세상에 고정된 것이 없음을 바르게 이해하고 법의 의미를 정확히 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을 바탕으로 철저히 공부하고 수행하셔서 우리나라의 재가불교가 더욱 굳건해지길 바랍니다.

 

정리=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사진=최호승 기자 time@beopbo.com


이 법문은 12월4일 대전 보현문화회관에서 열린 ‘한밭벌 야단법석I’에서 진행된 강남포교원장 성열 스님의 법문을 요약 게재한 것입니다.

 


성열 스님

1972년 마곡사에서 일현 스님을 은사로 득도했다. 1978년 동국대 불교대학을 졸업하고 1979년 쌍계사에서 비구계를 수지했다. 1980년 조계종 포교원 포교국장을 역임하고 1982년 강남포교원을 창건했다. 조계종 포교대상 공로상을 수상했으며 현재강남포교원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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